미아 될뻔한 아찔한 순간
엄마들은 아이 키우면서 아찔했던 순간들이 있을 거예요. 저 역시 아이가 어렸을 때 가만있지 못해서 병원에 진료볼 때가 가장 곤혹스러웠어요. 아동병원은 늘 대기가 길었고, 기다리는 시간은 아이에겐 마냥 지루한 시간이었으니까요.
언젠가 접수하면서 직원분과 이야기하는 사이에 아이가 옆문으로 빠져나가 버렸어요. 접수를 마치고 아이를 찾는데 대기실에서 안 보이는 거예요. 그제야 병원 건물 밖으로 빠져나갔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더라고요. 건물 밖은 주차장이라 차들이 들락날락거리니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까 봐 아찔해졌어요. 병원 건물을 안팎으로 다니며 두어 바퀴 돌다가 아이를 마주한 순간에는 안도감에 눈물이 핑 돌 정도였습니다.
그 뒤 친정 부모님과 식사 자리에서 이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가슴 철렁했었다고 웃으며 말했었지요. 부모님은 저에게 아이 잘 챙겨야 한다고 거듭 당부를 하시며 이런 이야기를 꺼내시더라고요.
“너 어렸을 때도 갑자기 사라져서 잃어버릴 뻔한 적 있어.”
“네?”
금시초문이었어요. 살면서 이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내신 적 없으셨거든요.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제가 대여섯 살 때 일이었어요. 남동생은 2살 어렸고요. 그 당시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어요. 주택에 살면서 저희는 놀고, 엄마는 집안일을 하셨지요.
그날도 엄마가 빨래를 널고 있으셨다고 해요. 그런데 제가 남동생의 손을 잡고 집 밖으로 나갔습니다. 꼬맹이 둘은 아장아장 잘도 걸으면서 점점 집에서 멀어졌고요. 어느덧 버스 정류장까지 도착했어요.
그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희도 사람들 틈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었습니다. 그 정류장 근처 주택에 엄마의 지인분이 사셨는데, 우연히 그분이 꼬맹이 아이들을 보게 된 것입니다.
‘저 애들을 어디서 봤더라.. 어라, 그 엄마네 애들이네. 애 엄마는 어디로 가고 애들만 저리 서 있누?’
아무리 주위를 살펴봐도 아이들 엄마는 보이지 않고 애들만 서 있더래요. 지인분은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 저희를 예의 주시했다고 해요.
그러다가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이 올라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저희도 뒤따라 올라가려고 했대요.
“하이고~ 기사님, 이 애들은 안타요. 안타.”
지인분이 얼른 뛰어나와서 저희를 못 타게 붙잡고 버스 기사님께 말했답니다. 그리고 본인 집으로 데리고 간 다음에 저희 엄마에게 전화를 하셨어요.
그 시각, 빨래를 끝낸 엄마는 고요한 분위기에 멈칫했습니다. 아이들이 있는 집이 이상하게 조용해지면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순간이지요. 방을 돌아다니며 저희를 찾았는데 애들이 안 보이는 겁니다! 얼른 집 밖에도 내다봤는데 여전히 보이지 않았어요. 이때부터 엄마는 가슴이 철렁해지며 덜덜 떨리기 시작했어요. 언제 어디로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요. 엄마는 답답한 마음으로 집 주변을 살펴보다가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그 집 애들 여기에 있어!”
엄마는 울면서 저희를 찾으러 오셨대요.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한참인데, 애들 둘이서 겁도 없이 걸어 나가서 버스를 타고 가출까지 감행하려고 했으니까요.
제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가니 아주 까마득한 이야기이지요.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전혀 기억에 없었기에 “말도 안 돼요!”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엄마 아빠 두 분이서 “네가 동생 손잡고 나가서 버스 타려고 했어.” 이렇게 증언하시니 억울해도 할 말이 없네요.
그 뒤로 모여서 밥을 같이 먹을 때마다 애들 간수 잘하라면서 제가 어려서 동생이랑 같이 버스 타고 가출하려고 했던 사건을 꼭 이야기하셨어요. 신기한 건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해서도 들어본 적 없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비슷한 일을 겪고 나니 그제야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제 기억 속에는 없지만 부모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던 가출 사건. 만약 그때 제가 동생 손을 잡고 버스에 올라탔다면, 저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도 모르지요. 지금 이 자리에 있기는커녕 지금까지 살아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에요. 엄마는 또 얼마나 큰 죄책감을 안고 사셨을까요. 아이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지 못한 채 두 아이 모두 잃어버렸을 테니까요.
가끔 만약 버스를 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그 이후를 상상해 보는데 참 아찔해요.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요. 지금은 연락도 끊겼지만 저희의 은인이셨던 엄마의 지인분께 참 감사드려요.
아이를 놓치는 건 한 순간이 될 수 있으니, 조심 또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