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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해슬 Oct 22. 2021

잃어버린 보물 1호

초등학교 때 살았던 아파트에서 처음으로 내 방이 생겼다. 이젠 내 돈 주고 산 물건들을 내 공간에서 보관이 가능해진 것이다. 내 책상에는 아끼는 만화 일러스트 엽서가 있었다. 당시 90년대는 순정만화 열풍으로 이미라, 이은혜 만화가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만화의 한 장면이나 캐릭터들이 엽서로 제작되어 문방구에서 판매되었다. 만화책과 별도 구매가 가능해서 정말 인기가 많았다.


순정만화 팬이어서 나도 100장 정도 구입해서 아끼고 아꼈다. 엽서 북에 끼워서 보관할까 하다가 접착식 앨범에 붙여 보관하기로 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예쁜 만화 캐릭터들을 보고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접착식 앨범까지 사두고 작업을 벌이기 전이었다. 엽서 북에서 일러스트 엽서들을 꺼내 두고 서랍에 넣어둔 채 얼마간 작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마음먹고 작업을 하려고 서랍을 연 순간, 오 마이 갓!


“내 엽서 어디 갔어?” 소리를 지르며 온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내 기세에 눌린 동생이 나중에 엄마 뒤에 숨어서 죄를 고백했다.


“교실에서 일일장터 열었는데 가져갈 게 없어서 누나 꺼 엽서 들고 갔어. 근데 그거 안 사려고 해서 헐값에 팔았어. 뭐, 돈도 안되더라.”


우아악~~ 입에서 불이 나오는 줄 알았다. 눈이 뒤집히고 고함을 지르며 용서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싸웠다. 그 일러스트 엽서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과 단 한순간도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을 울면서 지냈다. 그러면 뭐할 것인가, 돌려받을 수도 없는데.. 그렇게 내 보물 1호를 잃었다.


지금은 만화책이나 웹툰이  일러스트 엽서로 제작되어 단독 판매되는 일이 없다.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계속 가지고 있었으면 희귀템으로 짭짤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을 텐데..


20대엔 언젠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되돌아간다면 그때로 가서 엽서를 서랍이 아니라 다른 곳에 꽁꽁 숨겨서 동생이 발견하지 못하도록 하고 싶다고 간절히 바랐다. 그 생각만 하면 울화가 치밀어 가슴을 치기도 했다. 그것도 30년 지나니 이젠 추억이다. 동생은 기억도 못할 테고 나 혼자만 그땐 그랬지 하며 웃어넘길 수 있는 긴 시간이 흘렀다.


내 보물 1호야, 그때 팔려가서 지금도 잘 간직되고 있을까? 아니면 필요 없다고 진즉 폐지로 처분되었을까? 궁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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