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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해슬 Oct 17. 2021

개싸움의 추억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나만의 방이 생겼다. 그 전에는 방 한 칸에서 네 식구가 같이 자기도 했었는데, 방 3개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부모님이 남동생과 내게 각각 방을 내준 것이다.


내 방에는 5단짜리 서랍장과 책상 하나, 의자 하나가 있었다. 방 한구석에 요랑 이불, 베개를 두고 잘 때가 되면 펼치고 잤다. 5단 서랍장은 나만의 서랍장은 아니었다. 내 옷 전용 2칸에 가족들 겨울옷 3칸을 합쳐 썼다.


초등학생 때 남동생과 무던히도 싸웠다. 2살 차이인데 톰과 제리보다도 더한 앙숙이었다. 주인의 구슬을 바다에서 구해서 입에 물고 가던 개와 고양이의 옛이야기 속 결말처럼 부모님만 안 계시면 치고받고 싸웠다.



한 번은 동생과 말다툼을 했는데 서로 화가 잔뜩 났다. 갑자기 동생이 주전자를 챙기더니 내 방에 들어가 서랍장마다 물을 부어대는 것이다. 식구들의 겨울옷이며 내 속옷에 외출복까지 전부 물에 잔뜩 젖었다.


물불 안 가리는 동생을 보고 나도 참을 수가 없었다. 동생 방에 가서 책상 위 물건을 다 집어던졌고 이윽고 쫓아온 동생과 서로 소리를 지르며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가 힘에 밀려 내 방으로 다시 도망쳐 왔고 방문과 창문을 잠갔다. 내 방 옆은 주방 다용도실이라 세탁기를 밟고 올라온 내 동생은 잠긴 창문을 미친 듯이 두드리며 분통을 터뜨렸고, 나는 살짝 두려움에 떨면서도 통쾌해했다.



외출했다가 돌아온 부모님은 그 광경을 보시고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셨다. 나무 서랍장이라 썩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졸지에 겨울옷을 몽땅 세탁해야 했으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동생 방은 물건이 부서지고 초토화되었으니 말이다.


이 날 둘 다 비 오는 날 먼지 나듯이 혼났던 기억을 끝으로.. 또 싸우면서 지냈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엔 둘 다 사춘기라 말도 안 하고 지내게 되면서 사고 치는 싸움은 다신 일어나지 않았다. 스무 살 이후에는 둘 다 제정신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무난하게 지내고 있다.  






가끔 우리 꼬맹이들이 싸우는 걸 보면 예전 생각이 난다. 5살 7살 형제라 놀 때는 사이좋게 놀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둘이 다투고 있다. 아직 어려서 말싸움 위주이긴 한데 때로는 꼬집고 깨물고 때리기도 한다.


나름 심각한 싸움이 나면 중지시키고 서로 반성하게 한 뒤 반강제로 화해시킨다. 보통은 내 말대로 둘이 껴안으며 ‘미안해 사랑해’를 말하는데, 가끔은 툴툴거리면서 버틴다. 둘째가 형아가 밉다면서 빨리 사과를 안 하면 큰애는 동생은 사과 안 한다고 울상이고, 어떤 때는 둘 다 완강하게 버틸 때도 있다.


그러면서도 신기한 건 그렇게 싸운 뒤에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말을 걸면서 둘이 함께 논다. 하루는커녕 한 시간도 안 지나서 둘이 희희낙락한다. 아직은 순진한 꼬맹이들이네 하며 웃지만, 얘네들이 초등 들어가면 어떻게 변할지 앞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저 나 어릴 때처럼만 안 싸우면 좋겠다. 아들 둘이서 살벌하게 싸우면 감당도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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