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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초야 Oct 30. 2022

작별편지와 존댓말

돌봄 교실 5

작별편지


 돌봄 교실로 출근하는 마지막 날이 되었다. 유난히 지독했던 여름도 끝이 나려 하는지 오늘은 출근길에 땀을 흘리지 않았다.


 아름방에 도착한 나는 여느 때처럼 어린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어린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었다. 아침자습시간이 끝나고 나서는 함께 수업을 듣고 같이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여름학교 때 사용했던 용품들을 모두 말려서 창고에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창고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다가 아름방으로 돌아왔다. 절반 정도의 학생들이 방과 후 학교에 갔는지 교실이 휑했다. 이제 곧 작별인사를 해야 하는데, 친했던 어린이들이 많이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다.


 아름방 선생님은 남아있는 어린이들과 작별인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줬다.

"얘들아 잘 지내고! 많이 먹고! 선생님처럼 키 커져야 해!"

내가 발랄하게 작별인사를 마치자, 재희 선생님은 나에게 어떠한 종이들을 건넸다. 그 종이들은 편지였다. 내가 창고에서 일하는 동안 선생님께서 어린이들과 몰래 작별 편지를 준비한 거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편지를 읽었다. 삐뚤빼뚤하고 알록달록한 글씨와 그림들 나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편지에는 지운, 자은, 지음과 같이 정확한  이름인 '김지은'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2주 동안 함께 지냈는데 내 이름을 모르다니, 조금 서운했지만 귀여우니까 봐줬다.


 어린이들은 선생님이 시켜서 쓴 편지라 별 생각이 없었겠지만, 나에겐 너무 감동적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괜스레 마음이 따스워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꼈다. 이번 여름 돌봄 교실을 택하길 잘했다고.




존댓말


 얼마 전에 어린이와 관련된 에세이를 읽었다. 책 '어린이라는 세계'의 저자는 어린이들에게 존중을 표하는 의미로 항상 존댓말을 사용했다. 그리고 어린이들을 동등한 사람으로 대하기 위해 적당한 어색함과 거리를 유지했다. 나도 생각해보면 상대방에게 존대를 했을 때 심리적인 거리는 더 멀었지만, 특히 화가 나는 상황에서는 무의식 중에 상대방을 더 존중할 수 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아무렇지 않게 어린이들에게 반말을 해왔던 과거의 경험들이 생각나 부끄러웠다. 돌봄 교실에 출근한 지 2주 차가 됐을 때였다. 나와 같은 국가근로 대학생이 아니라 봉사활동을 위해 나온 대학생들이 돌봄 교실에 합류했다. 교육대학교를 다니거나 교직이수 때문에 봉사시간을 채워야 하는 대학생들이었다.


 하루는 봉사를 하러 온 대학생 한 명과 함께 오후 수업을 같이 보냈다. 나는 그때 그 대학생이 어린이들에게 존댓말을 하는 모습을 보고 아차 싶었다. 교육학에서 어린이를 대하는 법을 어떻게 알려주는지 잘 모르지만, 그 대학생은 존댓말을 통해 나보다 훨씬 아이들을 존중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어린 사람에게 말을 놓아버리는 어른에 불과했다


 20살 이상 차이가 나는 어른들의 세계에서도 초면에 반말을 하면 무례한 취급을 받는데, 어린이라고 반말을 들어도 된다는 법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수학 과외를 했던 중학생 유진이도 초면에 반말하는 어른을 만나면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반말을 듣는 게 너무 익숙했던 나는 당시에 기분 나빠하는 유진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가끔 존댓말을 사용하는 선생님들 외에는 어린이였던 나에게 존댓말을 하는 어른은 거의 없었다. 특히 길가다가 말을 거는 어른들은 대부분 반말을 했다. 청소년이 되어서야 '학생'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존댓말을 쓰는 어른을 조금씩 봤던 것 같다. 다행히 요즘은 사회인식이 많이 바뀌어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존댓말을 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난 것 같다. 


 귀한 대접을 받아봐야 남을 귀하게 대할 수 있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돌봄 교실에서 일하던 당시의 무지했던 내가 어린이들에게 반말을 한 것처럼, 의도치 않았던 나의 행동들이 어린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쳤을 까 봐 걱정이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미래의 나와 인연을 맺을 어린이들을 위해 어린이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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