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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초야 Oct 29. 2022

도도하게 걷는, 어른이란

돌봄 교실 4

 우리 아름방에는 말썽꾸러기로 유명한 어린이가 있었다. 그 어린이의 이름은 태양이다. 날이 갈수록 태양이를 중심으로 어린이들이 모여들어,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는 일이 빈번했다. 태양이는 특히 아름방 선생님들의 말은 거의 듣지 않았고, 하늬반의 희은 선생님 정도로 포스 있는 분들의 말만 통했. 그 어린이들은 잠깐 있다가 사라질 사람인 나의 말은 잘 듣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말썽쟁이 사촌동생들을 놀아줄 때 터득한 필살기를 이따금 사용했다. 이 필살기는 남자 어린이들에게만 통하는 것으로 일명 '계속 떠들면 선생님이랑 손잡는다~' 작전이다. 초등학교 남학생에게 여자 선생님과 손잡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조용히 했다. 손잡는 거에 아무 생각이 없는 유치원생들이나 머리가 커버린 중학생에게는 통하지 않는 공격이다.



도도하게 걷는


하루는 태양이가 점심을 먹다가 벌떡 일어나며 어제 날 봤다고 했다.


"선생님! 저 어제 집에 가는 선생님 봤어요! 아주~도도하게 걸으시던데요?"

라고 말하며 태양이는 고개를 빳빳이 들어 찰리 채플린처럼 걸어 보였다. 


맞다.

사실 어제 퇴근길에 어떤 비장한 노래를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 초등학교에서 지하철역까지 모델이 된 마냥 폭풍 워킹했던 기억이 다.

인정한다. 나 어제 도도한 척 좀 했던 것 같다.

'이 녀석.. 날 꿰뚫어 보다니 통찰력이 장난 아닌데..?'

 

 24살인 나도 태양이에게 놀림당하니까 살짝의 타격감이 느껴졌다.

'10년만 어렸다면 정말 창피했겠는걸? 호오... 하지만 난 어른이니까... 침착해.'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어 정말? 그래~ 태양이는 선생님 걷는 모습 봤을 때 어땠어? 키 커서 멋있었지? 태양이도 키 크고 싶으면 이거 야채 다 먹어야 해! 선생님은 야채 진짜 좋아해서 다 먹었거든!"


그러자 태양이는 다시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와우! 키 크게 낳아주신 엄마 그리고 아빠 감사합니다. 덕분에 태양이의 관심을 음식으로 옮길 수 있었어요.'


 평소 또래들보다 훨씬 적은 양을 먹던 태양이가 신기하게도 오늘은 급식을 더 받아먹었다. 태양이가 그날을 기억하며 다양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는 튼튼한 청소년이  소망했다.



어른이란


 어느 날 운동장에서 물놀이 준비를 마치고 교실에 돌아오니 태양이가 아름방 선생님에게 혼나고 있었다. 거짓말을 했는지, 선생님의 말을 심하게 안 들었는지는 몰라도 선생님께서 화가 난 말투로 "자꾸 그러면 아버지한테 전화할 거야!"라고 말했다.


태양이가 말했다.

"전화하세요~ 어차피 신경도 안 쓸걸요!!!"


가슴이 쿵했다. 태양이가 한 말 진심이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1학년 희은 선생님과 대화를 나눌일이 있었다. 선생님은 힘들게 하는 친구들은 없는지 물어봤다. 나는 태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다들 너무 귀엽고 좋아요! 근데 태양이가 수업에 집중을 많이 못하고 통제를 벗어나는 일이 많더라고요. 요즘은 태양이를 중심으로 다른 아이들도 말을 안 듣고 있어요."


곧이어 희은 선생님이 대답했다.

"맞아요~ 태양이는 사랑이 많이 필요한 아이예요."

덧붙여 작년 태양이가 1학년 반에 있을 때 선생님과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작년에 태양이는 관심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자주 반항을 했지만, 희은 선생님에겐 통하지 않았다. 희은 선생님은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줬고, 태양이도 그제야 그 선생님에게 맘을 열며 조금씩 말을 듣기 시작했다고 한다.


 태양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누가 자신을 예뻐하는지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를 본능적으로 아는 영리한 어린이인 듯했다. 앞으로 2주 뒤면 없어질 내가 감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남은 시간 동안 사촌누나처럼 놀아주며 어린이들에게 즐거운 기억을 심어주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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