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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초야 Oct 29. 2022

여름학교와 네모의 꿈

돌봄 교실 3

 돌봄 교실의 하루는 아침자습시간으로 시작했다.

나는 이 시간에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문제를 옆에서 도와주거나,

오늘의 숙제를 끝낸 학생들이 조용히 독서를 할 수 있도록 지도했학생들이 어렵다고 나에게 질문하는 문제마저도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라 매우 쉬웠다.


 아침 자습시간 후 색종이 접기와 같이 활동하는 수업을 하다 보면 금방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시간에는 2층 교실로 급식이 올라왔다. 나는 재희 선생님과 함께 학생들에게 급식을 배식했다. 

친구들과 돌아가며 급식당번을 하던 초등학생 시절 이후 누군가에게 배식을 한다는 게 너무 오랜만이었다. 무엇보다 배식을 하면서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이 먹는 양에 깜짝 놀랐다. 내 식사량의 절반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모든 학생들의 배식이 끝나면 나도 교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식판을 들고 자리를 찾을 때마다 여러 어린이들이 내 옆자리를 두고 싸워서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 실로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받아보는 인기 었다. 


나는 만화 속 주인공이 된 듯 매일 다른 초등학생 친구들과 점심을 먹었다. 

매우 생경한 경험이었다.



여름학교


 우리 돌봄 교실은 여름방학을 맞이하여서 '여름학교'이라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학교 운동장에서 물놀이, 물총놀이, 모래놀이, 비눗방울 놀이 등 각종 여름 놀이를 하는 거였다.

나는 오후에는 주로 '여름학교놀이를 준비했다. 


준비랄 건 별거 없었다.

놀이 용품을 창고에서 꺼내 세팅하고 놀이가 끝나면 다시 정리하면 되는 단순 노동이었다.

창고에서 고무튜브와 갖가지 장난감들을 옮기고, 튜브에 바람을 넣고, 물 받는 걸 기다리면 되었다.


고무튜브에 물이 채워지길 기다리 멍 때렸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상쾌한 바람이 내 볼을 스쳤고, 그때 나의 폰에서 레드벨벳의 power-up 이 흘러나왔다. 특별할 거 없는 순간이었지만, 나의 2018년 여름은 이 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어린 시절, 여름 그리고 물놀이는 너무 짜릿한 조합이다.

여름마다 학교 운동장에서 물놀이를 하는 상상을 자주 했는데,

어쩌다 보니 성인이 되어서 학교 운동장에서 물놀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때문에 '여름학교'를 준비하는 과정이 육체적으로는 고됐어도 마음만은 너무 신이 났다.


 놀이 세팅을 완료하고 나면 놀이시간에는 어린이들과 함께 놀았다.

우리 아름방은 인원을 절반씩 나눠서 물총놀이와 물놀이를 진행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라 몸집이 작다고 해도 모든 인원이 고무 풀장에 들어가는 건 무리였다.


 나는 주로 남자 어린이들의 물총 공격 대상이 되었는데, 나에게는 고무튜브에 물을 채워 넣었던 호스가 있어서 아이들에게 강력한 물대포를 선사했다.

물놀이를 하는 순간만큼은 대학생이 아니라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네모의 꿈


 여름교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집 가기 전 어린이들은 가장 말을 안 들었다.

나도 돌이켜보면 마지막 교시에 이미 마음은 학교 밖에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전에는 대부분 집중을 요하는 정적인 수업이 많았고 오후에는 어린이들이 직접 참여하는 활동적인 수업이 많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날은 선생님께서 동화책 줄거리를 설명하는 매우 정적인 수업시간이었다. 어린이들은 가만히 앉아서 설명을 듣는 게 힘들었는지 주의가 점점 산만해졌다.


 떠드는 어린이들의 옆으로 가서 조용히 해달라고 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 '조용히'라는 말을 100번쯤 말했을 때쯤에 겨우 수업이 끝났다.


 아직 수업시간은 몇 분 더 남았기 때문에 선생님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트셨다. 

네모의 꿈이었다.

'와 이 노래를 요즘 어린이들도 듣는구나 반갑네.'

어린 시절 나에게 네모의 꿈은 신이나 다가도 구슬프게 느껴지는 묘한 노래였다.


 네모의 꿈 반주가 흘러나오자 어린이들이 조용해졌다가, 곧이어 큰소리로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 비행청소년처럼 선생님한테 대들던 어린이들까지 네모의 꿈을 떼창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바로 떼창의 민족인 것인가.


 나는 어린이들의 네모의 꿈 떼창을 들은 순간 뭐라고 표현하지 못할 순수함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영문 모를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난 느꼈다. 나는 이제 진짜 어른이 되어버렸고 다시 돌아가질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네모의 꿈을 부른 어린이들이었다. 수업시간에 떠들어서 선생님께 혼나는 어린이였어도, 조용히 구석에서 딴짓하는 어린이였어도, 열심히 수업에 집중하는 어린이였어도, 수줍어서 노래를 부르기 부끄러워하는 어린이였어도 우리는 함께 그 시절을 보냈다.

그때의 순수했던 마음은 아직 우리 어딘가에 남아있을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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