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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록차 Jan 15. 2021

쾌락주의의 환원과 리더의 배임 [당통의 죽음]

by 게오르크 뷔히너


갑작스레 찾아온 독일의 극작가


본래 플레이팅 관련한 서적을 읽으려다가 너무 교과서 같은 지루한 책이라 중도에 포기하고 갈아탄 책, 당통의 죽음. 아내의 권유로 읽게 되어 어떤 사전 지식도 없었고 게오르크 뷔히너라는 (나는 처음 들어본) 독일 극작자의 19세기 희곡. 게다가 주요 사건의 배경인 프랑스혁명 이후 공화국이 배경이라 이해가 더 어려운 작품이었다. 어쩔 수 없이 책의 해설과 여러 사람들의 감상들을 추가로 읽어보고서야 이해된 책.


지은이 게오르크 뷔히너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하면, 독일의 권위 있는 문학상이 뷔히너 상이라고 하니 그 영향력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굉장히 젊은 나이에 천재성을 드러내 23세에 박사학위를 받고 24세에 강단에 선 인물. 그러나 24세의 나이로 열병으로 사망한... 엄청 폭풍 같은 인물이다. 그의 작품은 생전에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그렇게 말하기엔 너무 단명했지만. 그 당시 독일 문단에 없던 시선이, 영웅적 서사시를 조명하는 것이 아닌 영웅적 인물의 고뇌와 회피를 조명한 시선이 후대에 높은 평가를 받았고, 직설적이고 외설적인 언어들은 생생한 시대상을 담은 언어로 평가받았다. '당통의 죽음'은 그런 그의 데뷔작이다.


현대의 시점에서 바라보면 그렇게 외설적이거나 충격적인 언어도 아닐뿐더러 이후 특정한 영웅적 인물의 고뇌와 인간적인 이면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낯선 시선도 아니다. 아마 내가 게오르크 뷔히너와 동시대를 살았다면 그의 작품의 문학성에 깊은 감명을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여러 자극적인 매체와 정보들에 찌들어버린 현대인에게는 좀 밍밍한 맛이다.



당통과 쾌락주의로의 환원


내 감상을 끼적이기 위해 줄거리를 대강 요약하면, 프랑스혁명 당시 로베스피에르, 마라와 함께 프랑스 대혁명의 주요 인물이었던 '조르주 당통'이 죽기 직전 1개월의 이야기이다. 당통은 혁명 이후에도 빈곤한 민중의 삶과 로베스피에르와의 가치관 차이 등으로 로베스피에르와 대립하다가 동료들과 함께 체포당하고 결국 단두대의 이슬로 생을 마감한다.


당통은 혁명을 이끌었던 주역이지만 특정 순간에 회의감을 강하게 느꼈다. 그리고 그는 혁명을 통해 얻어낸 특권인 부와 향락을 거리낌 없이 누린다. 당통은 그 향락을 마음껏 누리면서 로베스피에르와의 논쟁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악덕 또한 부정하지. 이 세상에는 향락주의자만 존재할 뿐이네. 차이가 있다면 조야한 향락주의자인가 아니면 세련된 향락주의자인가 하는 점이지. 예수는 가장 세련된 향락주의자였어. 나에겐 이 점이 인간들을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증표라네. 누구나 자기 본성에 따라 행동한다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자기에게 편한 대로 행동한단 말일세. 그렇지 않은가, 청렴한 친구여? 자네의 발뒤꿈치를 이렇게 밟다니 내가 좀 지나쳤나?'


고대 그리스의 쾌락주의 에피쿠로스 학파의 관점이 진하게 담겨있는 주장이다. 그리고 나는 이 쾌락주의적인 입장과 시대변화라는 키워드에 집중했다.


위와 같은 당통의 주장은, 좀 더 나아가서 쾌락주의자의 주장들은 '모든 것을 쾌락에 의한 행동'으로 환원해버릴 수 있다는 전제에서 나온다.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자기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범죄자이건, 스스로에게 엄격한 종교의 족쇄를 걸고 사는 종교인이건, 자신의 신념에 따라 큰 고통을 감수하는 사람이건 간에 모두 그런 쾌락으로 환원하여 설명할 수 있다.


내가 불편하더라도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나에게 1차적으로는 쾌락의 감소를 가져온다. 그러나 그로 인해 얻는 정신적 만족감, 양심에 찔리는 점이 없어진다는 상쾌함 등의 정신적-간접적 쾌락이 더 크기 때문에 자리를 양보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어떤 것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쾌락의 계산이 낳은 행동일 뿐이다. 양심 때문에 남의 돈을 훔치지 않는 사람은 '훔치지 않아 뚜렷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쾌락'을 '돈을 훔쳐서 사고 싶은 것을 사는 쾌락'보다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환원할 수도 있다. 무고한 시민들에게 자살테러를 하는 광신도들은 '살아서 누리게 될 쾌락'들보다도 '지금 이 순간 종교적 교리에 따라 희생하여 얻는 쾌락'이 크기 때문에(정확하게는 클 거라고 믿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환원할 수도 있다.


이러한 종류의 환원은 엄청나게 강력하다. 무슨 행동을 하건 '그건 당신이 그 쾌락을 선택해서 행한 것이다'라고 해버릴 수 있다. 조금 더 극단적인 예시로 가볼까. 수영을 못하는 아내랑 딸이 둘 다 물에 빠졌을 때 딸을 구하고 아내를 죽게 하는 선택을 하는 남편은 '아내가 죽었을 때의 상실감(=마이너스 쾌락)보다 딸이 죽었을 때의 상실감(=역시 마이너스 쾌락)이 더 크기 때문에 딸을 구한 것이다'라고 환원할 수도 있다. 모든 인간은 선택에서 계산을 하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더 본인에게 쾌락을 가져다주는 쪽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쾌락주의의 한계


위와 같은 예시까지 나오면 슬슬 거부감이 생겨난다. 쾌락주의는 어떤 행동을 '설명'하게 해주는 도구로는 기능할지 몰라도 그로 인해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자신의 쾌락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공공의 영역에서 규범이, 정치가 어떻게 형성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방향을 제시해주지는 못한다. 그나마 쾌락주의가 규범적으로, 사상적으로 의미를 갖게끔 확대된 형태가 익히 아는 공리주의. 공리주의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쾌락의 합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방향을 제시해준다. 그러나 당통이 이야기하는 쾌락주의는? 전혀. 공리주의로 넘어가기 전, 쾌락주의의 단계에서 사회적 규칙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1. 사회적 규칙은 한 사회의 구성원들의 행동양식을 규정한다. 사회의 구성원들은 사회적 규칙에 따라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지켜야 한다. 이로 인해 사회는 존속, 유지될 수 있다.

2. '행위자 모두는 개개인의 쾌락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여라'가 사회적 규칙이 된다고 상상해보자.

3. 한 사회에서 구성원 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다음 재개발 지역을 어디로 선정할지, 매립지를 어디로 선정할지와 같은 것들을 상상하면 편하다.

4. 충돌하는 구성원들은 모두 '개개인의 쾌락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인 것이니까 이미 사회적 규칙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5. 이 충돌이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되지 않는다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두 방향으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어느 한쪽이 해당 사회에서 떨어져 나가거나, 사회 내에서 한쪽이 힘으로 밀어붙여 쟁취하거나.

5-1. 어느 한쪽이 해당 사회에서 떨어져 나가면 더 이상 사회는 존속, 유지되었다고 할 수 없다.

5-2. 한쪽이 힘으로 밀어붙여 우위를 쟁취한 상태에서 규칙은 더 이상 필요 없다. 힘을 가진 집단은 다른 구성원들의 행동양식을 임의로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다른 구성원들에게 사회적 규칙은 '행위자 모두는 개개인의 쾌락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여라'에서 '힘 있는 집단의 제재를 받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개개인의 쾌락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된다. 이것은 야생이고 처음의 규칙과 다르다.


6. 사회적 규칙을 충실히 따랐더니 사회가 분열되거나 한쪽이 규칙이 아닌 힘을 통해 우위를 갖는 야생의 상태가 된다. 이것은 사회적 규칙이 아니다.


쾌락주의는 다만 '어떻게 규칙을 설계할지'에 대한 참조점으로는 기능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바를, 싫어하는 것들이 담긴 규칙은 그 이행에 있어 더 힘들 것이니 더 세심한 설계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원하지 않는 것들은 마냥 표면에 드러난 것만으로는 알기 어렵다는 것도 참고해야 할 것이다. 딱 이 참고점까지가 쾌락주의로의 환원을 활용할 수 있는 최대치이다. 쾌락주의에 대해 많은 것을 양보해주더라도 사회적 규칙에 있어서 쾌락주의의 역할은 이 이상이 될 수 없다.


과연 우리가 제대로 쾌락을 계산할 능력이 있는지, 쾌락의 계산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하는지 강제로 바꾸어야 하는지, 그런 쾌락주의적 설명 때문에 매몰되는 환경과 맥락은 무시할 수 있는 것인지, 쾌락을 이토록 넓게 해석하여 자유의지의 모든 영역으로 환원하는 것이 올바른 환원인지에 대한 고민들은 전부 없다손 치더라도 쾌락주의는 사회적 규칙으로 기능할 수 없는 것이다.


당통의 배임과 리더의 책임


다시 당통으로 돌아가 보자. 당통은 프랑스 대혁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올바른 사회적 규칙은 아니었을 수 있지만, 그는 그 대안을 제시했어야 했다. 그것이 기존 사회적 규칙을 무너뜨린 당통의 책임이다. 자신이 처형당하기 한 달 전 로베스피에르와 함께 에테르파를 처형했던, 리더의 위치에 있었던 당통이라면 더더욱.


물론 쾌락주의는 꽤 좋은 휴식처가 되기도 한다. 리더도 어쨌든 사람이고, 휴식이 필요할 수 있다. 게다가 쾌락주의로 다른 모든 논쟁들을 환원시켜버리면 얼마나 편한가. 다만 그런 쾌락주의에 리더가 계속해서 머무른다면 그것은 재앙이 된다. 규칙을 제시하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리더가 계속 거기에 머무르게 된다면 그것은 배임에 가깝다.


당통은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를 향해 '민중들에게는 사람의 머리 대신 빵이, 피 대신 포도주가 필요하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혁명에서 흐른 많은 피를 후회하더라도, 그다음을 제시하지 않을 수 있는 특권은 리더에게는 없다. 틀리더라도 더 고민하고 대안을 치열하게 제시해야 하는데 당통은 그러지 못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당통은 로베스피에르와 많이 대립해서 죽게 된 것이 아니다. 더 치열하게 충분히 대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거기서 고민을 멈추고 그다음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통은 죽어야 했던 것이다. 3달 뒤 죽게 된 로베스피에르는 치열하게 고민을 했지만 오답을 내놓았기에 죽어야 했던 것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어떤 집단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특히 변화를 주도하는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큰 책임과 대가가 따른다. 이 책임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는 리더들은 어떤 형태로든 당통의 단두대와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경각심을 가지고 움직이는 리더들이 좀 더 많아지길 바라며, 나 역시 단두대에 올라가지 않기 위해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내 멋대로 읽은 당통의 죽음에 대한 책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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