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라영 Nov 15. 2021

현타의 시간.

출근길은 추웠다가 아주 추웠다가 하는데 나는 추운 날엔 아주 추운 것처럼 아주 추운 날엔 덜 추운 것처럼 옷을 입고 다녀서 땀이 나거나 덜덜 떨거나 했고, 낙엽이 많이 떨어졌고, 생리 전이라 호르몬이 미쳐 날뛰던 한 주를 보냈다.


내가 눈치를 보는 건지 그들이 눈치를 보는 것인지 애매한 회사생활을 하면서 지금은 내 상황에 대해 불만을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배가 불러 터져 버린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배가 부르면 부른 대로 소화가 안되고 방귀가 나오듯 나는 나대로의 불만을 붕붕 뀌어대고 있다.


해소할 방법이라 함은 빨리 일을 어느 정도 배워서 빨리 집 근처에 개업을 하고 빨리 직원을 새로 가르치고 빨리 대학원도 가고 빨리... 해야 하는데 나는 느릿느릿 걷고 배경만 쏜살같이 지나가서 시간은 벌써 겨울이고 나는 쇼핑몰에서 겨울옷을 뒤적이며 눈만 꿈뻑꿈뻑하고 있다. 대체 뭔들 나아지고 있는 게 있는 것일까.


나는 이제 서른다섯이고 어쩌면 내게 내 삶이 미라클 하게 좋아질 기회는 한두 번쯤은 스쳐 지나갔을 것이고 지금 내게 남은 기회는 과연 몇 번쯤 될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마흔이 되고 환갑이 되어 돌아보면 아마도 지금의 내 나이는 너무 젊고 뭐라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20대의 내가 그랬듯 뭘 하기엔 너무 힘들고 지치고 귀찮고 엄두가 안 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많고 꿈은 가히 원대하다. 내가 만든 이 간극이 숨이 턱 막힐 만큼 넓어서 삽으로 한 번씩 흙을 옮겨 담아 여기를 매우겠노라 생각하는 것조차 현기증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심이 줄지를 않아서 현실과 이상의 간극은 더 넓어지면 넓어졌지 좁혀지질 않아서 이러고 있는 스스로에게 아연하게 된다.


괜찮다고 되내이면 종국엔 괜찮은 일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괜찮아질 일이니 불평불만을 할 필요도 없는 것 같고 그래서도 안 될 것 같지만 그래도 가끔은 괜찮지가 않다고 하고 싶은데 또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해서 위로받으면 그것을 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괜찮아질 일인데 엄살을 부리고 누군가 너무 친절하게 연고도 발라주고 밴드까지 붙여주니 앗, 아니, 이거 이러지 않아도 나을 일이에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내가 힘들지 않다거나 괴롭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게 또 이 사람이 번거롭게 연고까지 발라 줄 일이었나 싶고.


누군가의 다정마저 제대로 받을 줄을 모르는 게 슬프지만 그게 또 슬프다 어떻다 해대기엔 일상이 너무 초조하다. 아마도 내가 초조한 건 지인이 어찌어찌 큰돈을 벌었다는 소식이 부러워서인 것 같다. 아니 그것이 원인임에 확실하다. 누군가는 이 간극을 저렇게 한방에 매워버리는구나. 나의 이 근면한 삽질은 역시 정말 삽질에 불과한 것일까.


욕심을 줄이던지, 삽질을 더 열심히 하던지, 판을 바꿀 리스크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면 스스로를 좀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 생각을 했으니 실천을 해야 한다. 시계를 샀으니 절약을 해야 하고. 또 한 달 뒤면 이런저런 고민들이 또 괜찮아진 일이 되어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무 날도 아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