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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라영 Nov 03. 2021

아무 날도 아닌.

어제와 오늘.

블로그에 뜨문뜨문 글을 쓰다 완전한 문장으로 끝나거나 호흡이 긴 글을 쓰고 싶어서 브런치로 서식지를 옮겼다. 옮기고 보니 책을 만들고 응모하면 작가가 될 수 있다기에 10편 정도 글을 모아보기로 했다. 물론 써놓은 글이 없으니 최선을 다해 썼다. 웹이지만 목차와 제목을 만들고 책의 모양을 갖추어 읽고 있노라니 통찰 없는 인생의 글쓰기란 상상 이상으로 비루하구나,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내가 지나온 요란한 시간을 글로써 박제한다는 것은 약간 부끄러움의 위험수치에 다다르는 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다다다, 난리법석을 떨며 무언가를 쓰고 보니 결국 통찰 있는 누군가들이 써놓은 멋진 글들이 읽고 싶어졌다. 사놓고 읽지 못한 아주 많은 책들 중 박완서님 책을 들고 출퇴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가 그렇게 핫하단다. 세상에. 남들은 또 나 몰래(?) 이렇게 재미난 거 보고 있었구나. 박완서님에서 스우파라니. 자연스러웠다.


내가 인생에서 이룬, 이루었다는 말은 너무 그럴싸하니까, 인생에서 얻은 것들은 내가 앉아있던 시간에 비례하던 것들이었고 걸크러쉬라면 정말이지 0에 수렴하는 사람이라 그런 것인지 그들의 몸짓이 멋졌지만 동시에 좀 부담스러웠다. 요상한 양가적 감정이 어려웠지만 일단 멋진 게 너무 압도적이어서 결국 게시물이 하나도 없는 내 인스타그램 아이디로 그들 중 몇몇을 팔로우하기에 이르렀다.


대학원에 가보겠다고 10년 만에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나의 경험과 경력을 잔뜩 부풀리다가 결국 나는 몹시나 성실한 사람이고, 그 성실함으로 부족한 부분이 모자란 부분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고 적었다. 결과물이나 성과야 뭐 들쑥날쑥하지만 열심히는 산 것 같았고 스우파를 보며 그녀들의 열심과 최선이 기회를 만나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게 터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일종의 대리만족 같은 것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허리를 굽혀 바닥에 손끝도 닿지 않는 내가 댄스 컨텐츠에 이렇게 내적둠칫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다시 박완서님 책을 읽는다. 그분이 이야기하는 소재들 또한 나의 관심사와 거리가 멀지만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자꾸만 읽게 된다. 세상에 너무나 멋진 사람이 많다. 나도 가끔은 (제발) 멋져지고 싶다. 내 인생에도 한 번의 불꽃놀이가 있을까 싶어 결국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성실하게 일을 하고, 밥도 하고, 글도 쓰면서 산다. 아마 번쩍번쩍 빛나지 않겠지만 삐융~, 톡, 하고 터지는 순간엔 이 불꽃놀이가 끝날까 봐 벌벌 떠는 대신 춤추는 그녀들처럼 즐기고 기뻐했으면 좋겠는데 영 예감이 좋지 않다. 나는 매사가 뚝닥거리는 인간이라 대관절 흥이라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없으니 운 좋게 내 몸에 그것이 한순간 흐른다한들 아마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결국 죽는 날까지 내 불꽃놀이가 오지 않는다면 섭섭하겠지만 그건 뭐 정말이지 끝까지 한 번 기다려보다 눈감을 즈음 아, 젠장할 결국 없었나, 하고 아쉬워하겠다고 생각해본다. 사실 지금 이 말보다 좀 더 슬픈 건 이미 내 삶에서 작은 불꽃놀이가 끝나버렸을지도 모른다는 것인데 일단 그렇지는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아무리 매일이 정신승리의 기록일지언정 나의 리즈시절이 이미 한 철 지나간 일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너무 헛헛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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