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해주자 징글징글한 스스로를.
대학 졸업 전 인턴을 했었다. 3별회사의 패션 계열사라 몹시나 입사하고 싶었던 곳이었고 인턴이 끝나면 임원면접만 보면 된다고 생각하니 당연히 입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째서 그 시절의 나는 임원들이 나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알 수가 없다.
나보다 더 여리던 점장님 밑에서 일하던 스타벅스 아르바이트는 사회생활이라기보다는 사회 나들이 같은 것이었으니 내게 첫 사회생활이라 한다면 바로 그 인턴생활이었다. 그렇게 막 사회에 발 딛기 시작할 무렵 2년 정도 만난 연인과 헤어지게 되었다. 20대 초반의 연애라는 건 지금에 와 생각하면 피식 웃음도 나고 헤어짐의 자세한 정황도 이상할 만큼 자세히 떠오르지 않는다. 편협한 기억력과 근면한 망각은 이인삼각으로 달려 10년 전 기억의 대부분은 추측에 가깝지만 그래도 출근해서 감정을 꾹꾹 누르다가 퇴근길 버스에서 마음이 쏟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은 기억이 난다. 부어 터진 마음을 꽉 쥐고 했던 내 1개월의 직장생활 결과는 귀하의 능력은 출중하나, 우린 필요 없다, 라는 내용의 탈락이었다.
어떤 기분에 심취하기엔 너무 많은 감정들이 뛰쳐나와서 서로 순번을 새치기해가며 나를 들쑤시고 다닌 시간들이었다고 기억한다. 슬프다가도 억울했고, 시원하다가도 아쉬웠고, 그립다가도 지겨웠다. 그런데도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버려서 그 시절을 회상하다 보면 과자를 우물대며 플롯이 엉망인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다. 다만 에어컨이 쌩쌩 나오고 팔뚝이 시리던 그 퇴근길 광역버스에 앉아 무언가를 꾹꾹 참아내던 스물넷의 스스로에게는 종종 연민을 느낀다.
왜인지 최근 나는 종종 버스에 타고 있던 먼지를 폭삭 뒤집어쓴 10년 전의 내가 된다. 당시엔 그나마 이별도 했고 탈락도 했고 무엇보다 20대였으니 그럴만도 했다 싶지만 지금은 내가 무엇을 참고 있고 무엇을 견디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데 왜인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려서 스스로를 이해하기가 힘이 든다. 이해가 되지 않으니 울지 않으려 스스로를 다독이다가도 이유도 모르고 다독이는 스스로가 우스워서 또 울고 싶지만 더 우스워지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마음의 부종이 스스로 주저앉길 기다린다. 어느 날의 뾰루지가 스스로 가라앉거나 다음날 종기가 되어 나타나듯 내 마음도 다음날 괜찮아지거나 혹은 더 힘들거나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잘 가라앉는 편이다. 나아지고 나면 호르몬을 탓하기도 하고 날씨를 탓하기도 한다. 대충 그런 무언가를 탓하고 지나가고 나면 또 별 일 아닌 일이 되어버린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지만 무엇을 털어놓아야 할지 잘 모르겠고, 누군가 안아줬으면 좋겠지만 굳이 안아주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일들이 이어진다.
... 아무래도 나는 지금 알다가도 모를 이유로 좀 우울하다. 내게 예쁘고 맛있는 걸 먹이고 잠깐 좀 도닥여주어야겠다. 내게도 유미처럼 세포들이 있다면 이걸 먹고 거국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