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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J Feb 21. 2024

EP.30 신이 내린 그날

- 완등 두 개! 그 어려운 걸 내가 하다니!!

 인생은 언제나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이 당연한 것을 항상 다시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바로 클라이밍을 할 때이다. 문제 시작 전 수많은 루트 파인딩을 하며 이렇게 하면 되겠다! 하고 문제를 풀면 당연히(?) 실패한다. 그뿐일까? 매일 똑같은 문제를 연습하면서 늘어가는 체력과 외운 동작들을 되새기며 오늘은 완등할 수 있겠지!라고 다짐하며 문제를 풀지만 완등은커녕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떨어져 당황하기 일 수이다.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완등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안 되는 동작도 없고 그렇다고 체력이 모자라는 것도 아닌데 왜 완등을 하지 못할까?라는 좌절감에 운동이 조금은 싫어진 적도 있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완등을 하면 치료되는 일! 그걸 알기에 오늘은 내일보다 나아졌길 바라는 마음으로 꾸준히 운동을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아 가혹한 클라이밍이여..     


 그렇게 맞이한 2024년. 모두 다 한 살을 먹었고 그래서 다들 체력이 조금은 떨어진 새해. 센터장님은 이런 우리들을 위해 기분 좋게 한 해를 시작하라는 의미로 평소보다 조금은 난이도를 하향하여 문제를 내셨다. (감사합니다! 센터장님) 완등의 기쁨을 느낀 지 오래된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좋아했다. 거의 잊고 있었던 완등의 기쁨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생각대로 되지 않지. 그게 인생의 재미 아닙니까? (이런 재미라면 필요 없지만 말이다..) 

    

 확실히 클린이인 내가 문제를 풀어도 이번 문제는 지난번 문제보다 쉽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남들에게 해당되는 일. 곧 나에게 크나큰 시련이 다가오는데!! 문제 중간에 있던 37번 홀드를 잡을 수 없다는 것!! 남들은 쉽게 잡는데 나만 그 홀드를 못 잡는 것이었다. 거기다 더 짜증 났던 건 37번 홀드를 잡지 못해 떨어진 후 다시 도전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쉽게 잡힌다는 것. 그리고 꼭 거기에서만 떨어지고 다른 곳에서는 단. 한. 번. 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37번 홀드야 왜 나한테만 가혹하니?    

 

 사실 이런 상황은 익숙하다. 성공보다 실패가 익숙한 나란 여자에게 이딴 시련쯤이야..라고 넘기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엔 뭔가 다르다. 보통 이런 시련이 다가오면 한 일주일만 힘들게 고생하고 나면 그 구간을 돌파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시련이 찾아오는 건 안 비밀) 하지만 이번엔 일주일이 지나고 또 한주가 지나도 해결될 기미가 안보였다. 와 이런 적이 없는데? 뭐지..?     


 처음엔 이런 나를 보며 다른 회원들은 괜찮아 다음 주면 될 거야 라는 위로의 말들을 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가 돼도 못하자 하나같이 아직도 그걸 못 풀었다고?라는 의아의 반응을 보내는 것은 물론 나를 이상하게 보기 시작했다. 왜 아직도 거기 있니 넌? 이런 느낌적인 느낌? (물론 그들은 그런 의도로 쳐다보지 않았지만 괜히 찔려서 그렇게 느낀 걸 수도..)    

 

 어쨌든 이 정도까지 왔다는 것은 이게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라는 거다. 그 홀드만 눈에 보이면 난 떨어질 거야라는 생각에 평소보다 몸에 힘이 들어가니 동작이 완벽한 자세로 나오지 않아 떨어지는 것이다. 이걸 알기에 37번 전 홀드에서 난 이미 떨어지고 다시 붙는 거야!!라는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그래서 성공했냐고? 그럼 내가 아니지. 평소에 나는 이 마인드 컨트롤의 덕을 많이 봤는데 이번에는 당최 이놈의 마인드 컨트롤도 통하지 않았다. 왜 이러니 37번 홀드야.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니?!! (그래서 남들 모르게 37번 홀드를 때려도 보고 쓰다듬어도 보고 별의별 짓을 다 했지만 그 아인 나에게 결국 잡히지 않았다.)   

  

 이 암장에서 2년이 넘게 운동을 하며 난 처음으로 그 문제를 포기했다. 세상에 가진 것이라고는 끈기와 노력밖에 없던 내가 문제를 포기하다니.. 하지만 그 좌절감도 잠시 나는 새로운 문제와 씨름하기 시작했다.    

  

 그 문제는 바로 밸런스 문제였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의 장점은 내 체력과 능력에 비해 작은 홀드를 잘 잡는다는 것. 그래서 나는 자주 밸런스 문제를 푼다. (못하는 것을 늘려야 하는데 항상 잘하는 것만 하는 나란 여자) 그러나 내 체력과 능력에 비해 잘 잡는 것뿐 남들에 비해 힘이 현저히 적기에 그들은 발 지정으로 풀지만 나는 발 오픈으로 푼다. (정해진 홀드만 밟고 푸는 게 클라이밍의 정석이나 나는 언제나 정석을 무시하는 여자!) 하지만 이번 문제 난이도는 이전보다 쉬워진 상태. 그렇기에 이번엔 나도 발 지정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도전!! 을 외치고 도전을 하게 됐다.     


 물론 어렵다. 그러나 예전과 다르게 안 되는 동작도 없었고 조금만 노력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문제에 열과 성을 다했다. 그리고 종종 아주 종종이지만 앞에 포기했던 그 문제도 되찾은 자신감으로 한 두 번씩 다시 도전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실패했지만 말이다.     


 그러던 2월의 어느 날. 그날은 2월임에도 10도의 날씨로 날씨가 포근했으며, 습도도 47%로 나에게 딱 맞는 습도를 가지고 있었고 공기마저 상쾌한 그런 날이었다. 는 내 상상이 만들어 낸 개정 일 뿐 기억하고 싶지만 단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그날 나는 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일을 경험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언제나처럼 힘들어!! 왜 난 운동 1도 안돼!! 왜 나만 못해!! 를 외치며 암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포기했던 문제를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풀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쉽게 36번 홀드까지 잡았고 그 홀드를 잡고 역시나 긴장을 했다. 또 떨어질 거야.라는 마음이 어느새 나를 지배했고 평소와 똑같이 잔뜩 긴장을 한 체 몸을 던졌는데 웬걸 37번 홀드가 잡히는 게 아닌가? 헉! 진짜? 저게 잡히는 홀드였다고?! 누군가 세상에 행복이 뭐냐고 묻거든 37번 홀드를 잡는 거라고 전해주세요.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제부터가 진짜 게임 시작이다.     


 항상 37번에서 떨어진 후 그다음 홀드들을 잡았기에 안 떨어지고 탑 홀드까지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 상황. 평소엔 1도 없는 집중력이 발동되기 시작했고 정말 죽을힘을 다해 홀드를 하나씩 잡아냈다. 호흡은 점점 차오르고 전완근은 터질 거 같고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내 안의 누군가가 말했기 때문이다. 넌 다시는 37번 못 잡아! 그러니 반드시 오늘 완등을 해!! 그리고 누구보다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은 잘 알았기에 진짜 온몸의 기를 쏟아부어가며 문제를 풀었다. 그 결과 완등! 그래 맞아! 이 쾌감! 이 행복감! 이걸 느끼려고 내가 이 운동을 하지! 여러분 저 완등했어요!!! 아하하하하. 그때의 행복감은 아무리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20분 후 나는 또 가벼운 마음으로 밸런스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너무나도 쉽게 완등하였다. 이건 앞의 완등과 다르게 왜 이리 짧게 쓰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대답해 주는 게 인지상정. 기억이 하나도 안 나서 쓸 수가 없습니다. 진짜 클라이밍 신이 내 몸에 접신을 한 건지 뭔지 어떻게 갔는지 1도 모르겠으나 어느새 탑 홀드를 잡고 있었다는 이야기. 아하하하. 제가 이런 날도 있네요. 유후.   

  

 마음 같아서는 이 날을 기념하여 매년 축제라도 벌이고 싶지만 나란 여자 단순한 여자. 이 날이 언제인지 벌써 까먹었지요. 지금은 그냥 행복했던 기억 조각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아하하. 진짜 어디에 클라이밍 신이 있다면, 저에게 다시 한번 찾아와 주시겠어요? 그날은 제가 진짜 잘해드릴게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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