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 J Feb 28. 2024

EP.31 근자감

- 도대체 넌 어디서 왔니?

 클라이밍을 만나고 나에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외적으로는 키가 컸고 몸무게가 줄었다. 그렇기에 죽을 때까지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몸매가 너무 멋져요.” “몸에 군살이 하나도 없네요.” 등등 몸에 대한 칭찬을 많이 듣는다. (그럼 나는 스리슬쩍 클라이밍 영업에 들어간다. 클라이밍 하면 야 너도 될 수 있어! 하고 말이다.)      


 물론 남들에게 듣는 외적인 칭찬도 좋지만 가장 좋은 건 내적으로 좀 더 건강해지고 단단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예전에 도전이란 단어는 내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무엇을 시작하려고 하면 귀차니즘이 발동해 무조건 내일로 아님 모레로 미뤘었는데 요즘은 뭐 어때?! 한 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무엇이든 겁 없이 바로 도전한다. (물론 요즘 하는 도전은 다 운동이라 문제지만..)      


 이런 변화를 가장 반겼던 건 신랑이다. 예전에는 장 본 물건들이 무거워 혼자 장을 보지 못했다. (혼자 장을 본 날이면 얼마나 징징거렸는지..) 하지만 요즘은 그전보다 2배가 되는 물건도 번쩍번쩍 잘 들다 보니 이제 장 볼 때 신랑을 더 이상 찾지 않는다. 또한, 운동 전 매 환절기마다 지독한 독감에 골골거렸다. 하지만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단 한 번도 환절기에 감기에 걸린 적이 없다. (물론 가벼운 감기는 몇 번 걸렸으나 예전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교다.)      


 뿐만 아니라 결혼 초 나는 심각한 무기력증에 고생했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주부로써도 회사의 직원으로서도 잘 해내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체력이 없던 내가 그게 가능할 리가 있나.. 어쩔 수 없이 미래의 체력을 가불 해가며 두 개의 롤을 완벽하게 처리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 처음엔 괜찮았다. 하지만 가불이 점점 누적이 되고 시간이 일 년 이 년 지나다 보니 몸도 정신도 너무나 망가져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둘 중 하나를 포기했으니 상태는 좋아져야 함이 마땅하나 이미 가져다 쓴 체력이 많아서일까?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주부로써의 일은커녕 신랑이 출근할 때 앉은 그 자리에서 신랑이 퇴근해 올 때까지 불도 켜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기운을 차릴 무렵 갑자기 아빠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셔서 간병을 해야 했고 끝을 알 수 없는 간병으로 인해 다시 무기력증이 찾아올 그때 운명처럼 만난 게 바로 클라이밍이다.      


 덕분에 나는 다시 무기력해지지도 않았을뿐더러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걸로 해피엔딩 끝! 언제나 말하지만 이것은 동화나 드라마에서만 가능한 이야기. 사람의 인생은 죽기 전까지 계속 흘러가잖아요. 그러니 끝일 수 없지.      


 사실 누군가가 지금 나의 상태를 물어본다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모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모든 쉬워 보이고 약간은 UP 된 그런 상태. 이 상태로 살아가는 것에 나는 만족하는데 신랑은 아닌가 보다. 요즘 신랑은 나만 보면 한숨을 쉰다. 분명 처음에 클라이밍을 전폭 지지했던 신랑이었는데 말이다.      


 인터넷에 유명한 밈 중 남자들이 빨리 죽는 이유라는 밈이 돌아다닌다. “야 안 죽어 안 죽어” 하며 위험한 도전을 하는 그런 영상들 말이다.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요? 이 영상 때문에 신랑이 맨날 한숨을 쉬거든요.      


 그렇다. 클라이밍 2년 차. 맨날 입으로 클린이라고 외치고 다니지만 마음 한 켠으로 나 2년이나 운동한 여자라고! 하며 자신감이 넘치는 여자가 바로 나다. 그러다 보니 저런 영상을 보면 오? 재밌겠는데? 한 번 해봐?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동으로 재생된다. 그리고는 도전!! 을 외치며 그 영상을 따라 하기 시작한다. (이와 비슷한 영상을 한 번이라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그들은 참 쉽게 성공한다. 그렇기에 도전 욕구가 불타오른다.)      

 나의 도전 성공률은 0%. 하지만 나는 영상만 보면 파블로스의 개처럼 바로 자세를 잡고 도전한다. 왜인지 이번 건 진짜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이번 영상은 유달리 쉬워 보인다니까? 매트도 없는 맨바닥에서 맨날 어려운 자세들을 따라 하다 보니 머리도 찧고 관절도 나가고 멍도 들고 내 몸은 하루도 성한 날이 없다.      


 또한 요즘 나는 벽만 보면 왠지 저거 타고 올라갈 수 있겠는데? 혹은 타고 내려올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한다. 생각과 동시에 행동하는 나인지라 바로 매달리려고 할라 치면 어디선가 신랑이 나타나서 뜯어말린다. 아줌마 정신 차려요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신랑이 항상 하는 말 “넌 클라이밍 하고 쓸데없는 자신감만 늘었어!!”     


아니 여러분! 진짜 저런 영상 보면 따라 하고 싶은 생각 안 드세요? 겁나 쉬워 보이는데? 이런 생각 안 드시냐고요! 물론 성공률 0% 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에 종종 힘들긴 하지만 (사실 나는 하나도 안 힘들다. 주변 사람들만 힘들 뿐 특히 신랑..) 앞에도 말했듯 나는 요즘 너무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 사람이 운동을 하는 이유를 너무도 적확하게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이 좋은 기분 나만 느끼고 싶지 않은데.. 그러니 여러분도 올 해는 운동을 해보시지 않으시렵니까? 인생에 자신감이 철철 넘친답니다. 물론 저처럼 과하게 되면 문제가 되긴 하다만 뭐 어떻습니까? 자신감이 문제는 아니잖아요 하하하하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