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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J Jun 26. 2024

EP.46 운동은 거짓말 실력을 향상합니다.

- 3년이 아닌 3개월 차 클라이머

 작년까지만 해도 누군가 “운동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라고 물으면 거짓 없이 운동 경력을 밝혔었다. 어렸을 적부터 운동과는 거리가 먼 것은 물론이요 이렇게 한 운동을 꾸준히 재미있게 한 적이 없었기에 2년이 넘은 운동경력은 하나의 자랑이자 프라이드였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답을 들으면 잉? 이런 반응을 보이긴 했다. 대충 보든 자세히 보든 누가 봐도 내 몸은 그 정도의 경력을 가진 사람의 몸처럼 안 보인다는 함정카드를 발동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남들에게 잘 보이려 시작한 운동도 아니었을뿐더러, 보이는 것만 그럴 뿐 실제로는 점점 건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었기에 운동하는 여자라는 만족감은 항상 최상을 찍고 있었다. 

     

 이랬던 내가 요즘 누군가가 똑같은 질문을 하면 멋쩍은 듯이 웃으며 “이제 클라이밍 3개월 차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왜 갑자기 변했냐고요? 3년 차라고 말하고 다니기엔 운동을 드럽게 못하거든요. 아하하하하. 일단 흐르는 눈물부터 좀 닦고 이야기해볼게요.     


 올해 초 아직은 찬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스치는 그날, 지금에 내가 다니는 암장에서 예전에 운동을 하셨다던 선배님 한 분이 놀러 오셨다. 지나가시다 들렸다는 그 선배님은 한참 센터장님과 수다를 떠시다 센터장님의 권유에 의해 옷도 갈아입지 않은 상태로 벽에 붙으셨다. 가볍게 몸만 푸시겠다면서 말이다.

      

 한 홀드 한 홀드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홀드를 잡아가는 선배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와!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것이 저 사람과 나의 레벨 차이인가?라는 생각에 잠깐 좌절감이 들었지만 그 선배님에 정보가 아무것도 없었기에 내 멋대로 분명 저 선배님은 계속 운동을 하시고 그전 경력도 꽤 화려하실 거야라고 추측하며 좌절감을 다스렸다. 곧 선배님의 운동이 끝났고 질문을 통해 내 추측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배님의 경력이 화려하신 것은 맞으나 운동을 안 한지 10년이 지났다는 사실.     


 단 일주일만 운동을 하지 않아도 실력이 확확 줄어드는 나와 달리 10년 만에 벽에 붙어도 저렇게 스무스하게 움직일 수 있다니. 아마도 저것도 실력이 줄어든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다스렸던 좌절감은 끝을 모르고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선배님에 클라이밍 경력을 묻는 질문에 나의 첫 거짓말이 시작됐다.    

  

“저 이제 3개월 차 클라이머예요.”     


 이 대답에 오랜 기간 암장에서 같이 운동한 사람들은 웃었지만 난 1도 웃을 수 없었다. 여기서 나의 경력을 제대로 밝히면 그게 더 슬플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첫 거짓말을 하고 나니 거짓말을 할 일은 점점 많아졌다.     


 가끔 체력을 늘리기 위해 첫 번째 문제를 풀고 쉬는 시간 없이 두 번째 문제에 바로 붙는다. 이렇게 문제를 풀면 총 120개 정도의 홀드를 2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잡게 되는데 문제가 끝나고 나면 손 발 전신이 털리는 느낌이 드는 것은 물론이요 온몸은 땀범벅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운동을 하는 건 실력 향상을 위한 발악이랄까?      


 두 문제 모두 같은 난이도로 풀면 실력 향상은 더 빠르겠지만 알다시피 나는 짜바리 클라이머이기에 첫 번째 문제는 내 난이도로 풀되 두 번째 문제는 내 난이도 보다 조금은 쉬운 문제로 푼다. 아무튼 그날 역시 체력 증진을 위해 내 난이도의 문제를 풀고 쉼 없이 두 번째 문제에 붙었다.   

   

 그런데 웬걸? 문제에 붙자마자 떨어질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 문제는 내 난이도보다 쉬운 문제이기에 절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죽을힘을 다해 한 홀드 한 홀드 잡아갔지만 팔의 펌핑은 점점 한계에 다다렀으며 발도 계속 터지는 게 아닌가?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크럭스 구간에서 떨어지게 되었다. 그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한 선배님의 목소리.     


“아니 이 문제에서 떨어진다고? 너 운동한 지 얼마나 됐지?”     


그 질문을 듣자마자 뇌는 순식간에 거짓말을 만들어 냈다.   

  

“저 3개월 됐는데요?”     


그렇다. 이제 내 뇌조차도 나를 3개월짜리 클라이머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 선배님의 질문에 0.1초의 고민도 하지 않고 3개월이라는 거짓말이 스르륵 나와 버린 것이다. 3년이 3개월이 되는 매직. 경험하시고 싶으시다고요? 그럼 바로 클라이밍을 시작하세요. 아하하하하.     


 언젠간 오겠지 3년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진짜 오기는 하려나? 짜바리 클라이머는 오늘도 울면서 글을 마칩니다. 아. 나도 클라이밍 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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