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과 운동
클라이밍을 시작한 시점부터 최근까지 일을 꾸준하게 한 적이 없다. 처음엔 회사에 다시 들어갈 생각도 있었으나 매번 스트레스 덕에 아파서 퇴사 한 경험을 떠올리니 다시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돈을 벌지 않고 살 수는 없는 일. 그렇기에 종종 아르바이트를 하긴 했지만 오래 다닐 열정도 생각도 없어 주로 단기 아르바이트만 찾아다녔다. 그렇기에 최대로 일을 해도 한 달을 넘지 않았다.
이런 생활도 큰 불만 없이 살아가고 있었는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어느새 이번 일자리에선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엔 괜찮았다. 오랜만에 매일 아침 출근 하는 것도 괜찮았고 평소보다 많은 돈을 받는 기분도 꽤나 좋았다. 하지만 사람마음은 참 간사한 것. 두 달 차가 되니 슬슬 스트레스를 받고 몸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아마 일만 했더라면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냥 늙어서 좀 더 피곤했겠지라고 그냥 넘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일을 안 하면 안 했지 클라이밍을 하지 않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하는 여자 아니던가? 일을 끝나고 운동 2시간을 하고 나면 진짜 집에 와서 밥도 못 먹고 곯아떨어졌다. 분명 난 TV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알람이 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이 되어있는 끔찍하나 생활의 반복이랄까?
평일의 이야기만 들으면 와 이 사람 살 엄청 빠지겠는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의 생각과는 반대로 몸무게는 점점 늘어만 갔다. 주말만 되면 손 하나 까딱하기 싫어 모든 음식을 배달시켜 먹은 것. 일하기 전엔 음식을 시킬 때 가격 혹은 체중 걱정 때문에 시키는 것을 한 번 망설였지만 일을 시작하니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이것도 못 먹어?라는 생각과 평일에 안 먹었으니 주말엔 좀 먹어도 돼.라는 보상 심리 덕에 평소 먹지도 않은 간식에 야식까지 야무지게 먹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클라이밍은 다른 운동에 비해 몸무게에 더 민감하다. 그래서 체중 유지가 관건인데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살이 쪄 당연히 운동이 더더욱 되지 않았다.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운동에서 풀어야 하는데 운동을 하면서도 잘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더 받는 느낌?!
그렇게 일 한지 고작 두 달 만에 번 아웃이 찾아왔다. 어찌어찌 꾸역꾸역 일을 하긴 했지만 일하기는 점점 싫어졌고 일이 끝나는 시간이 되면 이전엔 당연히 운동을 하러 갔지만 이제는 운동을 가지 않으려는 구실을 찾아 헤매기 바빴다. (물론 그렇다고 진짜 운동을 안 가는 날이 손에 꼽힌다는 것은 안 비밀이다.)
아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되었을까? 아니 남들은 일 끝나기 전에도 혹은 일을 하기 전에도 운동을 하러 간다는데 도대체 그건 어떻게 하는 건가요? (갓생을 사는 모든 사람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남들과 비교하니 우울감은 더더욱 깊어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출판사로부터 한 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 나는 책은 읽은 사람에 상황에 따라 그 사람의 감정과 기분에 따라 책이 따라온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인데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나에게 다가온 책의 제목은 무려 “아픈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요즘 어른을 위한 마음공부”라는 책이었다. 어떻게 나의 상황을 딱 알아차리고 출판사에서 무려 이 책을 선물해 주신 것인가? 역시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구나.
나의 마음을 너무나도 대변하는 제목에 단숨에 책을 읽어 나갔다. 짧게 책의 내용을 말하자면 스트레스, 번아웃, 우울증에 대해 어떻게 대체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책을 통해 아 내가 이런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는구나를 깨달았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조금 덜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책 참 좋구먼 생각하며 책과 한 발짝 가까워지려는 순간 이 책은 느닷없는 문장으로 두 발짝 멀어지게 되었다.
그 말이 무엇이냐면 바로 운동을 하면 스트레스가 준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 책의 저자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것 같다. 운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호르몬이 나오고 어쩌고 저쩌고 해서 스트레스가 준다는 말. 그지 그지 운동을 하면 스트레스가 줄지. 근데 그것도. 잘. 해야 스트레스가 줄지.
근데 저기요 저자 선생님. 전 운동이 안 돼서 더 스트레스를 받는데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왜 이것에 대한 해답은 없는 건가요? 양방향 소통이 아니기에 책을 읽으며 나는 울부짖었고 결국 아직까지도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책과 두 발짝 멀어지게 된 슬픈 사연.)
책을 읽었으나 여전히 일하기도 운동하기도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나.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그 해답을 알고 계신 분 과연 진정 아무도 없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