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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공일일공 Jan 25. 2021

31. 소중한 일을 먼저 하고 있는가

2021년을 맞이하는 101 구성원들의 마음가짐

여는 말: 각기 다른 분야에서 멋지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10명의 사람이 모여 매일 101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공유합니다. 10명이 써 내려갈 101일간의 여행기가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매우 설렙니다. 2주마다 줌으로 자신의 답변을 쓰며, 서로의 답변을 읽으며 느꼈던 점을 말하는 수다타임도 가지고 있는데요. 12월 20일의 질문, '소중한 일을 먼저 하고 있는가'에 대한 피드백을 하며 신년을 맞이하야 브런치에 구성원 모두의 답변을 올리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주셨어요. 벌써 60개의 질문을 함께 했는데요. 구성원 모두의 답변을 최초로 공개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소피"

늘 소중한 걸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살고 싶은데, 행동하고 싶은데. 그리 살겠다 다짐하고도 여전히 발등에 붙은 불을 끄는 데에 급급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는 더는 마시멜로 실험 같은 걸 믿지는 않는다는 정도? 어렸을 때는 어느 상황이든 참는 게 능사라고 생각했다. 맛있는 반찬은 제일 마지막에 먹고, 가장 궁금한 책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아껴두고. 하지만 나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인내심이 언제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어차피 식당에서 나오는 1인분을 다 먹지 못하는 사람이니 그냥 맛있는 순서대로 먹지 않으면 제일 맛있는 건 결국 못 먹고, 궁금한 책을 나중으로 더 나중으로 미루면 결국 읽기도 전에 책을 잃어버리고 만다. 나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나에게는 지금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식당에 가면 맛있는 것부터 먹고 읽고 싶은 게 생기면 가장 읽고 싶은 것부터 읽는다. 공부하고 싶은 것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꽁꽁 싸매고 소중히 여기기보다는 언제나 드러내 놓고 사랑하고 좋아하고 아끼게 되었다. 


그런데도 어른이 된다는 건 지키고 싶은,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늘어나는 걸까? 그런 고민을 해보기도 전에 해야 할 일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는 것의 두 배씩 세 배씩, 해야 하는 게 많아졌다. 내게 소중한 것들을 하나하나 지켜내고 싶은데, 포기하기 싫은데. 당장 내게 부딪히는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이야기들은 내게 소중한 것보다는 내게 필요한 것을, 해야 하는 것을 하도록 종용한다. 그래도 더는 마시멜로 두 개를 꿈꾸지는 않아서 내게 중요한 순서를 역산하여 포기하기보다는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을 더 욕망하고 꿈꾸고는 있다. 그렇게 꿈꾸면서도 여전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포기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꿈꾸는 이상을 그리며 살아야지, 내게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타협하지 말아야지. 내가 사랑하는 것들만 보고 살아야지. 매일 아침 다짐하는데도 여전히 나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현실과 타협하고 만다. 그래도 나를 잃어가진 말아야지. 내게 소중한 것들을 당연히 여기거나 등한시하지 말아야지. 아무리, 무엇을 좋아하더라도 나를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지. 잠깐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기억해야지. 단단하게 지켜내야지! 



"효로"

누군가 나에게 2021년에 넘고 싶은 나의 한계점을 물었다. 한계점을 넘는다는 것은 성장을 뜻하겠지만, 그 이전에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이 먼저 떠 올랐다. “휩쓸리지 않는 것“. 휩쓸리지 않는 것? 하고 상대방이 물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학점이 높은 편이었다. B+ 서너 개 빼고는 다 A+이었던 거 같은데. 높은 학점은 성실성을 뜻할 수 있겠지만, 상대방의 요구를 잘 파악하고 그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열심이었다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이 능력은 대체로 모든 활동을 수월하게 해 주지만, 단점이 있다면 소중한 일을 뒤로 미루게도 한다는 것이다. 


2020년을 냉정하게 판단해보면 타인의 기대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에 너무나 많은 힘을 들였다. 목적지로 향하던 중에 가족이 원하는, 상사가 원 하는, 동료가 원하는 목적지를 경유지로 찍곤 했다. 그게 인생의 낙이 될 때도, 의도치 않은 기회를 던져줄 때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타인과 나의 욕 구를 합치는 과정은 되돌아보면 벡터의 합 같은 것이었다. 나에게 소중한 것, 나의 방향성을 잃지 않았을 때, 타인의 욕구가 다를지라도 그 합이 대 각선에 머물 수 있었다. 나의 힘을 키울수록 내가 소중히 하는 일들을 더 유지할 수 있다. 가장 좋은 건 방향이 맞는 사람들과 힘을 합치는 것이고. 2 021년은 동료들과, 휩쓸리지 않고, 소중한 일에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길 바라본다. 


"나띵"

크리스마스에 했던 홈파티 세트에 연말 모임에 대화 주제로 삼기 좋을 만한 카드 뭉치가 들어있었다. 하나씩 뽑으면서 이야기하다가 2021년에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습관 하나가 있다면?이라는 질문이 나왔다. 나는 미루지 않는 습관이라고 했다. 하고자 마음먹으면 왜 꼭 다른 일보다 미루게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럴 거면 차라리 할 마음을 접던가. 누워서 뒹굴거리면서도 뭘 하면 좋겠는데, 하고 생각하다가 이런저런 핑계로 다음으로 미룬 다. 내가 하고 싶은 건 혹시 할 일을 미루는 것 그 자체였던 걸까? 내가 미루지 않는 단 한 가지는 밥시간. 먹는 건 또 참 좋아해서 이런저런 음식들을 열심히 해 먹는다. 밥먹듯이 다른 일들도 하면 이런 글을 쓰고 있지도 않았을 텐데. 부지런히 계획한 대로 사는 사람이 못될 바에야 여유로운 사람이 되자 생각했던 것 같지만, 절반쯤은 정신승리가 아녔을지.. 


이제 올해가 한 일주일 남았나, 남은 시간 동안 미루지 않고 싶은 일이 뭐가 있는지 떠올려 보는 것도 좋겠다. 연차가 쌓이면 업무능력도 성장해야 한다고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것처럼, 나잇값도 하는 사람들만 하게 된다. 다른 사람을 더 편안하게 배려할 줄 알고, 누구는 좋고 누구는 싫고를 떠나 이런저런 처세술도 늘고,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과의 스몰토크도 곧잘 하고, 보험이나 재테크도 공부해서 척척 잘하는 레벨 업된 어른이 되고 싶다. 나이는 가만히 앉아서도 먹을 수 있는데 왜 레벨업은 그게 안되나. 내가 원하는 모습이 있다면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 이 참 원통하다. 


내년 이맘때쯤에는 오늘보다 더 괜찮은 내가 되어 한 해를 돌아볼 수 있을까?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또다시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요즘 나의 최 애 음식인 고사리 파스타는 입에 넣는 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맛있는 파스타를 먹고 싶다는 마음은 파스타를 먹을 때까지 재료와 레 시피를 되뇌게 한다. 일단 다른 것보다도 먼저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상상해보자. 고사리 파스타만큼 생생하게. 


"꽁치"

이 질문은 아무래도 "소중한 것을 먼저 하세요..."라는 따스한 전언을 돌려 말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내가 가진 최악의 단점이 바로 소중한 것(만)을 너무 지나치게 우위에 둔다는 것이다. 언제나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편이고, 천성이 성실하지 못한 인간이다 보니 주기적으로 반드시 무언가 를 포기해야만 나머지를 수행해낼 수 있는 상황이 온다. 좋지 않은 의미에서의 완벽주의 때문에 세 가지 모두를 공평하고 적당하게 처리하는 안은 고려하지 않게 된다. 우선순위는 언제나 정해져 있다. 내가 발행하는 비평지 관련한 업무가 최우선, 그다음이 계약되어있는 회사와의 작업, 그리고 나머지 모든 부업이나 학업들이 뒷전이 된다. 이런 나의 태도는 내 평판과 학점을 나쁘게 만들고, 불현듯 스스로를 자괴감에 빠지게 만든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이 자괴감이 올 하반기 내내 나를 괴롭혔다. 


내가 일하는 방식을 텍스트로 써 내려가다 보니 정신이 번쩍 든다. 앞으로도 계속 내 멋대로 소중한 것들을 먼저 하면서 살려면, 확실히 더 많은 시간 깨어있어야겠구나. 태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겠구나. 어제 친구가 보내준 2021년 1월의 내 운세를 읽어보니 운의 교차로에 몰려 나아갈 길을 고 민하고, 한걸음 물러서 상황을 객관시하게 된다고 했다. "일하는 자세에 커다란 변화가, 학생의 기분으로부터 졸업해, 일과 직업을 중시하는 모습으 로" "생활에 대변혁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라는 선물 같은 점괘도 얻었다. 이 질문을 연말에 받게 된 것은 행운이다. 


"졍진"

소중한 일이란 뭘까. 최근엔 마음 내키는 대로 살고 있긴 하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내내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그래도 여전히 보고 싶은 영화와 가고 싶은 곳이 잔뜩이다. 내가 해왔던 일은 항상 소중한 일이었다. 소중한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는 일. 소중한 일은 항상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지겹고 반복적인 일일 수도 있다. 소중한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한 단계들, 소중한 가치에 기여하는 일도 있었다(아주 지루 했지만). 성격상 의미나 가치가 없게 느껴지는 일들을 하면서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앞으로 할 일들도 모두 소중한 일이겠군.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솟구친다. 


"북극곰"

소중한 일을 먼저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국회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국회의 업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입법, 국정감사, 그 외 자잘한 일들. 입법은 말 그대로 법안을 만들거나 고치는 일인데 법안 제개정에서 끝나 지 않고 토론회를 연다 거나 법안과 관련된 정책을 제안하기도 한다. 국정감사는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국회의 꽃이자 보좌진이 밤낮으로 갈려나가 는 시기다. 감시를 맡은 정부 부처와 관련된 현안들을 살펴보고 장관에게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숙명여고 쌍둥이 입시비리나 유치 원 비리 같은 것들은 히트 상품에 속한다. 기자가 된 심정으로 특종을 찾아 자료를 요구하고 살펴보는 작업을 거친다. 질의에서 끝나지 않고 9시 뉴 스나 신문 지면에 싣기 위해 기자들에게 아이템을 던지며 조율한다. 의원 이름이, 얼굴이 지면이나 방송에 나오는 것이 국정감사의 사이드 임무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자잘한 일들은 민원 해결부터 축사 작성 같은 것들이 있다. 


사회의 문제들을 찾아내고 나름대로의 대안을 의원의 입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내뱉을 때 짜릿함이 느껴진다. 실제로 현실에 적용될 때는 그 감정이 배가 된다. 물론 질의 과정에서 장관의 '네 살펴보겠습니다'라는 답변 뒤에 후속조치가 이어지지 않는 것이 태반이긴 하다. 입법 또한 바꾸고 싶은 것들이 천지지만 여야가 합의해야 하는 점, 쌓여있는 법안에 비해 지지부진한 국회 대치 상황들을 보면 법안을 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 싶을 때 가 많다. 


이러한 과정들이 들인 노력만큼 술술 풀린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지경은 아닐 테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수없는 장애물에 부딪치고 깨지기 일쑤다. 늘 똑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다 보니 지치기도 짜증 나기도 하지만 그러려니 한다. 인생사가 그런 것 아니겠는가, 하고. 


위에 서술한 일들은 힘들었지만 내게 가치 있는 일들이었다. 세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바꿀 수 있는 소중한 일이기도 했다. 세금으로 밥 벌어먹는 사람들이 가장 잘 해내야 하는 업무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선출직 의원들은 때로 국회의원 본연의 임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보좌진에 게 요구한다. 지역에 계신 고문님들을 챙기는 것부터 말도 안 되는 지역 민원을 해결하라거나,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쓸데없는 북콘서트를 열기 위한 책을 쓰라거나. 


국정감사나 예산 시즌의 질의서는 보좌진이 작성한다. 보좌진은 하나의 문제에 대한 수많은 자료를 검토하고 요약해 약 3장짜리 질의서와 참고자료의 형태로 의원에게 전달한다. 이렇게 떠먹여 주면 의원은 질의서를 공부하고 효과적으로 장관에게 질의해 우리가 원하는 답을 이끌어 낼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업무를 지역구 행사를 순회한다거나 개인 약속들로 소홀히 하고 질의장에서 나를 갈아 넣은 질의를 망쳐버릴 때 나는 정말 마이크를 뺏어 내가 대신 질의를 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인다. 


언론의 주목을 받는 아이템이 우선순위가 되면서 국정감사는 내게 하기 싫은 숙제가 되었다. 남들이 주목하지 않아도 바꿔야 할 것들은 너무나 많은데 스타성이 없다는 이유로 정말 하고 싶은 현안들을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극적이고 단발적인 아이템을 찾아내기 바빴다. 환경에 꽤나 관심 이 많은 편인데 관련 법안을 내고자 했을 때 당시 함께 일하던 의원님은 본인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이유, 사람들도 별 관심이 없고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법안이니 굳이 낼 필요가 있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1. 소중한 일, 해야 할 일을 다른 일에 밀려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2. 그 일을 최우선에 두고 해냈지만 누군가가 그 일을 망쳐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3.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안이니 거절당하거나. 나에게는 소중한 일이었고, 법안이 통과되면 많은 사람들에게 소중한 법안이 될 무언가를 그렇게 뒤로 한 적이 쌓이고 쌓이자 나는 매너리즘에 빠졌다. 소중한 일을 먼저 하지 못하는 상황이 많아지자 나는 국회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 이유가 전부는 아니지만. 


여전히 세상을 바꾸는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일을 그만두고 쉬면서 망망대해에서 방황할 때도 항로를 결정하는 가장 최우선은 좋은 일을 하자였다. 방향을 재설정하고 노트를 높여보려고 했더니 코로나가 발목을 잡아 여즉 바다 한가운데에 떠있다. 그래서 소중한 일을 먼저 하고 있지 못하다. 상황에 맞게 이것저것 우선순위를 조정해본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 일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에 속도를 내고 싶다. 20 21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천지가 개벽할 일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새해는 뭔가 두근거리니까. 2021년은 소중한 일을 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래본다. 


"조유진"

소중한 일이라면 떠오르는 일이 참 많지만 먼저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자취를 시작한 지 2년 차, 혼자 사는 것은 즐거운 일이나 20년이 넘게 가족들과 부대껴 온 기억은 한편에 남아 때때로 쓸쓸함을 느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애틋한 감정이 생겨난다는 k의 말을 뒤늦게 이해했다. 좀 더 자주 찾아가야지 생각하면서도 맘처럼 쉽지가 않았다. 하고 싶은 게 많았기 때문이다. 최대한 미루고 미뤘던 날들의 연속. 


그러다 코로나 19로 인한 고립이 시작되었다. 고향에서 차로 2시간이 걸리는 이곳에는 만날 수 있는 친구가 몇 없었고, 갈 수 있는 곳도 한정되어 있었다. 가족과의 시간이 간절하다고 느꼈다. 함께 하고 싶어도 함께 할 수 없다니. 면허도, 차도 없는 내게는 가혹한 벌이었다. 부모님은 혼자 있는 나를 걱정해 몇 번을 데리러 왔으나 왕복 4시간이 걸리는 수고로움을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아빠는 오랜 운전에 허리가 아픈 나이였고, 엄마는 다녀오면 몇 시간을 내리 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년에는 꼭 면허를 따야지. 1년에 10번도 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해져 버린 사실에 문득 슬퍼진다. 내 년에는 소중한 일을 미루지 않고 먼저 해야지, 다짐해본다. 


"100Qri"

우선 나에게 소중한 일이란 어떤 것인지를 한참 고민했다. 나 자신보다도 주로 주변 사람과 관련된 일이다. 일보다 내 건강을 더 중요시했냐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아니오. 일보다 내 생활을 더 우선시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역시나 아니오. 나에 대한 일에 대해서는 일보다 우선시하려 힐 때 괜히 눈치를 보게 되었다. (지금은 전혀 아니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하지만 가족과 관련된 일이라거나 남자 친구와의 일이라던가 주변 소중한 사람을 챙겨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일보다 우선시한다. 


내가 생각해도 나보다는 주변의 소중한 사람을 더 챙기는 것을 중요시했고 지금도 그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들이 나를 소중 히 여기는 마음 또한 그렇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내가 나를 더 챙기고 소중히 해야 상대방과도 오래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뒤로는 나= 주변 사랑하는 사람들>>>>>>일 이 되었고 그 후로 마음도 굉장히 편안해졌다.


 항상 내 커리어가 우선이고 소중한 것보다 이게 더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쫓기는 기분이 들 때도 있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일 욕심에 '시달렸는데' 이제 한결 편한 마음으로 나를 더 돌보니 일도 수월히 되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hena"

얼마 전 책장을 정리하며 생각했다. 칸칸이 섞여 들어있는 서적들이 나를 말해주는 듯했다. 차례로 한 칸씩 집중해서 파헤치니 얼추 비슷한 녀석들끼리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다. 한차례 정리를 끝내고 다음 책 묶음을 끙차 하고 내려놓았을 때, 문득 만약 누군가 나의 책장을 본다면 내가 어떤 사람 인지 단박에 알아채겠구나 싶었다. 어쩐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책들은 제목만을 내보이는 데도 한데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결국 몇 칸의 책을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 


일을 끝내고 바닥에 털썩 앉아있노라니 온몸이 욱신거렸다. 러그를 옮기면서 삐끗한 허리에서도 통증이 밀려왔다. 통감이 느껴지는 대로 이곳저곳을 주무르다 아무렇게나 누워버렸다. 또다시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노골적일 정도로 솔직한 책의 모음들이 더는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울컥할 정도로 벅찬 마음이 들었다. 적어도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사는 거 같아서. 


소중한 것들을 갖고 있다. 이들을 갖기 위해 일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일을 하지 않음에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요행도 부릴 줄 안다. 하지만 대체로 일을 하여 소중한 것을 얻는다. 소중함과 일을 묶어 말하기 싫어하고, 그러기에 취업이 아닌 택업을 하겠다 떵떵거리고 다니지만, 소중한 것이 때로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그 모든 과정이 숭고하고 아름답지 않다는 걸 알기에 소중한(것을 얻기 위해) 소중한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깨지 않으려 노력한다. 


"신사동 아구찜"

주말에 먹을 것을 정해 놓고 평일을 버티는 먹보의 삶. 식사의 희열은 짧고 강렬하지만 여운은 길다. ‘You are what you eat’이란 말이 있듯, 내가 씹고 뜯은 것들이 온전히 내 몸에 발현되는 까닭이다. 


이처럼 소중한 것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왔다. 소중한 것과 원하는 것의 교집합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겹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대부분 먹고 웃고 치장하는 원초적인 것이므로 경제적 지출을 수반하며 대체로 휘발된다. 휘발되지 않는 건 몸에 쌓인 노폐물과 지방 뿐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걷는 시간이라도 많아 많이 먹더라도 찌지 않았는데 팬데믹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먹는 양은 여전한데 운동량이 현저히 줄어드니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군살이 덕지덕지 붙으면서 체형은 변했고 몸 곳곳이 고장이 났다. 


달라지지 않으면 큰일나겠다 생각한 건 매달 아까워했던 실비 보험이 더 이상 아깝지 않게 느껴진 순간부터다. 지난해 여름 응급실에서 20만원을 쓴 일을 기점으로 병원비로 적잖은 돈을 썼다. 얼마전엔 척추측만증이 심해져, 등에 주삿바늘까지 꽂아야 했다. 기능이 무색하게 느껴졌던 실비보험의 위력을 느끼며, 이대로라면 보험비로 온전히 커버할 수 없는 수준의 큰 병에 걸리겠다 싶었다.


“왜 휴대폰은 비싼 것을 척척 사면서, 액정 보호 필름은 중국산 싸구려만 찾는 걸 까요. 가장 비싼 건 눈인데.” 비싼 운동비 앞에서 망설이던 내게 용기를 준 건 한 인터뷰이의 말이었다. 모바일 디스플레이로부터 눈일 보호하는 ‘시력 교정&보호 필름’을 개발한 그는 사람들이 눈의 소중함을 모르고 방치하는 상황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문득 머리가 망치를 맞은 듯 띵했다. ‘몸의 기능이 저하되면 먹을 즐거움도 줄어들 텐데, 나 너무 단기적으로 판단한 거 아냐?’


그래서 오늘 눈 딱 감고 운동 레슨비를 질렀다. 그것도 현금결제로. 허리가 아프니 택배 도착의 기쁨을 허리 통증이 갈음했고, 만성적 소화불량은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를 제한했다. 이대로라면 먹스터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 몸의 불편함이 삶의 질을 저하시킨 1년을 보내고 나니 무엇보다 소중한 건 내 건강이란 생각이 든다. 그동안의 나는 선택을 본능에 맡겼지만 이제 건강 방목은 중단하려 한다. 건강한 신체로 더 열심히 일하고, 먹고, 웃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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