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물려받은 것은 무엇이고, 물려줄 것은 무엇인가
헤더 이미지 출처: motherjones.com
서로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열 명의 낯선 사람들이 101일동안 101가지의 질문에 답합니다. 노드를 연결하고 세계를 넓혀가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이 프로젝트는 제법 사적인 형태로 시작되었지만, 우리만 보기 아까워 1010개의 답변 가운데 일부만을 브런치에 연재해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모임의 마지막 날에는 잔치라도 열어야 할 것 같아요. 읽어주시는 분들도 우리의 즐거움을 느껴주시기 바라며.
우리 아빠는 서양고전음악과 Hi-Fi 오디오의 광이었다. 나는 복중태아일 시절부터 집에서 나와 혼자 살게 된 스물 두살때까지 강제로 크라시꾸 조기 교육을 받은 셈이었다. 그리고 아빠는 은연중에 그런 '고급' 취향을 나 역시도 갖게 될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사실, 하루종일 이십 년동안 클래식만 들어온 자식이 클래식을 영원히 거부해버린 이 사태는 내가 부모라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2001년, 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스테이시 오리코에 미쳐 있었다. 아빠의 오디오 동호회 친구 집에 따라갔다가 고2였던 그 집 언니에게 흑인음악을 전파(전도..?)당하고, 2002년에는 NRG와 S.E.S.를 통해 케이팝에 입문했다. 그리고 2003년, 급우를 따라 휘성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알앤비와 소울에 본격적으로 심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4년 나는 힙찔이가 되고 말았다. 큰 교통사고 이후 동네 병원 2인실에 처박혀서 학교도 못 가고 500원짜리 동전 넣으면 두 시간인가 볼 수 있었던 티비로 주구장창 엠넷만 보다가 조피디와 더블케이를 알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휘성이 나우누리 SNP 출신이었고 버벌진트나 피타입 같은 동호인들과 합작을 많이 한 것도 이유였다. (그러면서 조피디를 좋아한 것이 이상하긴 하지만... 그 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회복 후 독서실에서 cdp로 더블케이 1집을 돌려 들으면서 낙서를 했다. 스카이 독서실. 공부는 안 했다. 늘 내 옆자리에 앉던, 공부 열심히 하던 유성여고 언니가 자리에 엎드려서 한참동안 울다가 갑자기 나한테 "너 중학생이지? 모의고사가 뭔지알아?" 하더니 다 구겨진 성적표를 펼쳐서 보여주었다. 오늘은 정말 공부 못 하겠다, 잘 있어래이. 하고 그 언니는 집에 갔다. 다음 날부터 그 언니를 못 봤던 기억이 난다. 내가 힙합 처음 들은 때를 떠올리면 더블케이 데뷔앨범과, 겨울 편의점 호빵과, 허름한 독서실 건물의 외관과 파리하던 백열등, 그리고 그 언니의 얼굴이 꼭 같이 떠오른다.
아빠는 없는 형편에도 나에게 항상 훌륭한 오디오를 셋업해 줬다. 진공관 앰프와 키만한 스피커를 가진 중학생은 분명 흔치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웅장한 오디오에서 매일 머라이어 캐리와 쌍욕 범벅의 한국힙합만이 흘러나오는 것을 들어야 했던 아빠의 심정을 지금에야 걱정해 본다. 따지고 들어보자면, 내가 힙합을 필요 이상으로 좋아했던 이유는 착한아이 콤플렉스를 오래 앓았고, 말 잘 듣고 예의발라야 한다는 강박 속에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막 쌍욕 쓰고 꼰대들 욕하고 사회 비판하고 그런 가사가 너무 근사해 보였다. 19금 붙은 앨범 듣는다는 게 너무 쿨한 것 같고 자랑스러웠었다.
당시 시내에 신나라레코드가 성업 중이었는데, 나는 거기 말고 주로 그 옆에 있는 작은 레코드점을 단골삼아 하루 걸러 한 번은 신보 구경을 갔다. 구입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용돈을 받은 다음 날에. 아니 세상에 그 집 이름이 기억 안 나네. 여튼 거기 IF(Infinite Flow) 앨범을 사러 가서 "아이에프 한 장 주세요" 했더니 아저씨가 띠용 하시며 "아니 중학생이 R.ef를 왜 찾아~" 하셨던 회자될만한 기억. 레코드점 얘기하니까 갑자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너무 퀴퀴한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실물앨범을 모으는 것이 간지가 아닌가? 그리고 이제는 빌스택스 씨가 되신 바스코 씨를 빼놓을 수 없는데, 정말 전곡을 마르고 닳도록 들었다. 지기펠라즈를 좋아한 것도 바스코가 수장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곡도 종종 듣는다. 얼마 전에 생각나서 1집을 들었는데 가사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 세월이 많이 흘렀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수순처럼 에픽하이도 엄청 좋아했다. 다 좋아했지만 특히 타블로 솔로곡인 Lesson 시리즈를 너무너무 좋아했다. Lesson one 가사는 진짜 문화충격이었다. Do we learn math to add the dead's sum, subtract the weak ones, count cash for great ones? 크. 약간 수학공부 하기 싫은 명분이 되어주는 것 같기도 하구 그랬다. 결국은 부친이 유구한 클래식 주입 교육이 망했다는 생각에 속상했는지 랩 음악을 듣지 말라고 권고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내가 반박했던 말들 다 기억나고 쥐구멍에 숨고싶다.... 힙합만이 사회를 변화시켜...힙합은 사랑만을 얘기하지 않아...등등......뭐 그럴 수도 있지 너무 부끄러워하지 말자.
중학교 3학년에 접어들면서 나는 이름하야 본토힙합(저의 본토는 미대륙입니까?)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고, 문화를 이해해야 음악을 진짜 이해하는 거라는 소신 아래 A4 화일에다가 힙합 용어와 배경지식을 스크랩해서 들고 다니며 틈틈이 공부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파란 색에 도트무늬가 빼곡한 미키마우스 화일이었다. 사우스 코스트와 웨스트 코스트의 특징에서부터 라이벌 관계, 누가 총을 쐈는지, homie나 in da house가 무슨 뜻인지 달달 외우면서 공부하듯이 들었다. 투팍이나 비기도 이 때 처음 듣고, 칸예, 나스, KRS-ONE을 좋아했다. 소울도 많이 들었다. 인디아 아리, 맥스웰, 트레이송즈를 좋아했고, 왜인지 디안젤로는 싫었다. 본 석스 앤 하모니도 많이 들었다. 그치만 진짜 많이 들은 건 DMX였다. 다 부셔버리고 싶었던 어린 나의 니즈에 부합했던 것이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급기야 국내 언더힙합에 심취하게 된다. 일단 나는 지기펠라즈를 좋아했었는데(나는 품귀현상을 일으켰던 쌈디의 08믹테믹테를 갖고 있었다) 지기는 안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고, 지기보다 오히려 더 좋아했던 건 당시에 나름 유명했던 와썹크루였다. FLOW2S, VegaFlow, Demonicc(나중에 Demoniac으로 바꿨던 것 같은...) Scorpion, Roy.C 등이 속해 있었고, 단체곡 중에 We can이라는 곡을 많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 중에 몇은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팔로업 했는데 이제는 몇 가지 이유로 다 끊었다. 그래도 위캔은 다시 듣고싶어.... 여튼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한동안은 언더힙합을 많이 들었고, 남자애들한테 힙합 선생질을 하기 시작했다.. 친구랑 사귀던 동네래퍼 오빠하고 학교 근처 오락실 노래방에서 드렁큰타이거 난널원해 같이 부른 게 기억나서 지금 약간 죽고 싶다. 제일 오래 좋아한 건 도끼인 듯한데, 도끼가 금덩이와 롤리와 지폐다발로 유명인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때의 나는 도끼 싸이 방명록에 준경님 포항에도 공연 와주세요 라고 적곤 하는 아이였고, 댓글 달리면 가보로 남기고 싶은 기분이 되었고, 도끼 ep 힙플에서 사구 그랬는데... 아직도 힙플에서 음반을 팔까? 더이상 수지가 맞지 않는 사업일 것 같은데 말이다. 고2때는 오버클래스의 2008 대한민국 이라는 곡을 한 해 내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해에 학교축제에서 친구랑 '기름과 물처럼 우린 섞일 수 없는 운명' 공연하겠답시고 맹연습하다가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그만두었다. 얼마나 다행이야.
그리고 이 즈음하여 릴웨인을 좋아했었다. 릴마마도 좋아했다. 패뷸러스, 모니카, 가브리엘, 타미아, 니요, 리오나 루이스, 아샨티, 콜비 오도니스, 미셀 윌리엄즈, 브랜디 그런 이름들이 막 섞여서 떠오루는. 콜비는 그 때 이후 처음으로 떠올린 것 같다. 지금도 활동하나? 그 때 에이컨이나 레이디가가 곡에도 막 피쳐링 하구 그랬는데... 덕분에 sophisticate라는 단어를 절대 잊지 않게 되었다. (sophiscated bad girl이라는 노래를 좋아했거든.) 콜비의 노래를 다섯 곡밖에 알지 못하면서 싸이월드에 "우리 콜비"라고 포스팅하곤 했다. 어린 시절에는 그런 허세를 부리곤 하지 않는가?
언젠가부터 미국 빌보드 최신곡을 악착같이 쫓아 들으면서 힙합, 소울 말고 다른 장르도 이것저것 듣게 되었다. 데이드림이라는 분이 운영하는 미국음악 블로그가 있었는데, 야자 중간 쉬는시간마다 멀티실로 달려가서 그 블로그를 뒤지고 노래를 다운받았다. 힙합 아닌 음악으로 넘어간 건 월간 페이퍼의 홈페이지에서 '여러 곡' 이라는 제목으로 개인 컴필레이션을올리던 분의 영향이 더 컸던 것 같다. 그 때 진짜 여러가지 음악 많이 들으면서 힙합을 점점 덜 듣게 되었고 다시 케이팝도 사랑하게 되었고 여튼 그렇게 흐지부지 나의 힙순이 시절이 저물었다는 이야기...... 아직도 친구들은 나와 노래방에 가면 때때로 나의 힙합 추억팔이를 견뎌야 한다는 이야기... 지금은 에스엠타운의 돈맛나는 사운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끝
아니... 안 끝!
본래의 질문을 잊고 하고싶은 말만 써내려간 것이 조금 양심에 걸려 몇 자 보탠다. 나는 여전히 클래식을 잘 모르고 잘 안 듣는다. 예전보다는 훨씬 관심이 많이 생긴 편이지만, 여전히 그냥 얕게 찾아 들어보고 좋으면 음 좋군. 하고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보고 하는 정도다. 20년간 클래식을 강제 청취했으니 대부분의 곡들은 들으면 따라 흥얼거릴 수 있다. 다만 작곡가가 누군지, 연주자가 누구고 지휘자가 누군지, 곡 제목이 뭔지, 그런 건 전혀 모른다. 희미하게 머릿속에 각인된 멜로디만을 기억할 뿐이다. 만에 하나 아이가 생긴다면 나 역시도 그를 위해 공들여 음악을 선곡하고 주입하듯 종일 재생시킬 것이라는 불안한 예감이 든다. 그러나 그 친구도 나를 닮았다면, 나의 취향을 쉽게 물려받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근데 그래도 좋을 것이다. 2000년대 한국힙합 같은 유달리 별난 장르만 아니라면야, 사랑하는 사람의 취향조차도 함께 사랑하게 되는게 사랑의 가장 멋진 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