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 엄마를 찾으며 울고싶을 땐
여는 말: 각기 다른 분야에서 멋지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10명의 사람이 모여 매일 101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공유합니다. 10개의 질문마다 한 명씩 질문 하나를 맡아 브런치에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21살이던 내게 “아무리 네 말이 맞아도 너는 후배잖아”라며 의견 굽히기를 강요했던 선배(당시 23세)와 몇 시간 동안 싸운 적이 있었다. 막차 끊기기 전에 집에 가라며 나를 데려다주던 선배(당시 25세)는 나를 달래며 “원래 나이 먹으면 자기 의견 잘 안 굽히고 그래. 아직 유연한 네가 한 번만 굽혀줘”라고 얘기했는데, 내가 25살이 되자 할머니(당시 77세)가 바뀌었다.
페미니즘을 처음 접했던 때, 사회는 단번에 바꾸지 못해도 내 가족은 바꿔보겠다는 목표를 품에 안고 더는 제사에 참여하지 않겠다 선언한 적이 있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그 선언을 철회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생겼는데, 할머니는 아직도 그때 받은 충격이 가시지 않은 것 같다.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제사만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할머니지만,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자 유리천장과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유튜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뜬금없이 전화해 "남자들한테 기죽지 말고 유리 천장 같은 거 깨부수고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는 거 다 해"라고 얘기했다. 할머니가 한평생 들어본 적 없을 <유리천장> 깨부수라 밑도 끝도 없이 전화하기까지, 대체 무엇을 검색해 뭘 본 걸까?
내가 이야기하는 불합리에 “그래도 여자는…” 라고 하던 할머니가 바뀌었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를 보며 나도 바뀔 수밖에 없었다. 일흔 살이 넘으면 그때까지 살아온 가치관은 신념 혹은 아집으로 더는 흔들리지도 않을 만도 한데. 회사 다니기 힘들다 이야기하며 우는 손녀딸의 사회생활을 응원하겠다고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유리천장을 이야기하는 할머니의 지지를 받는다면, 누구든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는 사랑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사람을 바꾸는 것은 분노보다는 사랑이고, 가장 큰 힘을 가진 것 또한 사랑이라고 믿는 낭만주의자가 된 것은 아마 8할이 할머니 덕일 것이다.
작년 여름엔 고기를 최대한 먹지 않겠다 비밀스럽게 다짐했었다. 사실 비건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사회 초년생 시절의 워크숍이었다. 행사 준비를 위해 작성하던 사전 설문조사 항목에 “당신의 소속을 알려주세요" 만큼 자연스럽게 “비건이신가요?”라는 질문이 작성되어있었고 별다른 이유 없이 설문조사 폼을 그대로 복사해 썼다. 한 번은 행사가 끝나고 “비건 여부를 먼저 묻고 식사를 준비해주는 행사는 처음이에요.”라는 피드백을 받았지만, 그냥 "그렇구나, 음식이 입에 맞아 다행이에요" 정도가 감상의 끝이었다.
다른 사람이 어떤 계기로 어떤 결심을 하는지 알면서 겨우 이런 계기와 다짐을 말하는 건 실례가 아닐까 걱정되긴 하지만 사실대로 고백한다. 내가 뜬금없이 생각을 바꿔 고기를 최대한 먹지 않겠다 다짐하게 된 계기는 그냥.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그의 신념을 지지하고 비슷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손잡고 발맞추어 함께 살고 싶다는 욕망 중 하나일 뿐이었다. 네가 그리 살겠다면 나도, 느리더라도 나도, 조금씩이라도 공부하며 살겠어! 붙여둔 단서조항들이 쑥스러워 그에게는 이야기하지 않고 남몰래 다짐했다. 다짐이라고 했지만 사실 대단하거나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원래부터 먹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현실에서 죽음을 겪기 전부터 나를 지배하는 가장 큰 공포는 언제나 죽음이었다. 그 공포는 단순히 나의, 가족의, 사람의 죽음에 한정되지 않았다. 어떤 이유로든 스트레스가 심해질 때면 나는 먹어 삼킨다는 행위 자체를 온몸으로 거부했다. 먹는 족족 게워내고 악몽을 꿨다. “다른 무언가를 죽이면서까지 내게 살아갈 가치가 있나?” 그러니 내 이러한 불쾌함은 환경도 동물권도, 그런 윤리나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혐오의 발산일 뿐이었다는 뜻이다. 선택이 아닌 회피이기에 나는 온전히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을 때까지는 천명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그래도 어쩌다 한 번 지나치는 관계에서는 못 먹는 게 아니라 안 먹는 것이라 이야기하기로 했다. 거리 먼 타인의 일일 때는 무관심하던 이야기여도, 주변 사람의 이야기가 되면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니까! 그리고 그중 몇 명은 바뀔 거니까!
시작하긴 사랑에 눈이 멀어 시작한 고민이었지만 지난여름의 지독한 장마를 겪은 후에는 사랑과는 무관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느슨하게나마 고민하며 살아야겠다 새롭게 결심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수록 공부할수록 계속해 다른 이유가 생겨났다. 습관적으로 먹던 육식과 유제품 피하기. 먹게 되더라도 굳이 SNS에 자랑하진 않기. 맛있는 비건 음식집을 찾으면 친구들과의 약속장소로 제안하기. 타인이 사주는 밥은 따지지 못해도 내가 요리할 때는 따져보기. 사야 한다면 비싸더라도 이런저런 조건 걸고 구매하기. 최대한 대체할 수 있는 것 찾아 사용하기. 그래도 정말 뭔가 사고 싶고 하고 싶고 먹고 싶다면, 그 소비의 영향은 외면하지 않고 인정하기!
하지만 이런 느슨한 다짐조차도 어떤 고민에서 나온 것인지 아직 이해는커녕 상상조차 못 하는 할머니는 집에 간다고만 하면 저녁 시간이 되기 전에 정육점에 가서 고기를 사 온다. 먹고 싶지 않다 얘기하는 게 속이 안 좋다는 얘기가 아닌데, 할머니는 “그럴 때일수록 더 잘 챙겨 먹어야 하는 거야” 하며 한약 소화제를 꺼내준다. 할머니랑 있다고 내 결심이 바뀌거나 달라지는 건 아니기에 "그런 게 아니라……." 이야기하지만, 그래도 할머니랑 있을 땐 덜 무섭고 덜 징그럽다. 할머니와 함께라면 못 먹는 게 아니라 안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최근에 집에 갔을 때는 늘 고기를 구워주던 할머니가 버섯 샤브를 끓여줬다.
코로나가 심해지며 보러 가기 힘들 것 같다는 연락에 “그냥 죽으면 되지, 하루라도 일찍 죽어 이 꼴 저 꼴 안 보고 살고 싶다” 입버릇처럼 말하다가도 “내가 할머니한테 코로나 옮기고 할머니 아프면 내가 제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면 “내가 네 마음에 대못을 박을 수는 없지.” 대답하고는 KF-94 마스크를 두 개씩 끼고 다니는 우리 할머니.
이제야 고백하는 건데, 나는 사실 고등학생 때까지도 할머니가 학교에 오지 않았으면 하고 기도했었다. 남들보다 진한 화장을 하고 젊은 시절 입었다는 코트와 파란색 스카프를 목에 매고, 학교 앞에서 산 옛 티 나는 빨간 장미와 안개꽃 꽃다발을 가져온 할머니가 부끄러워 졸업식이 싫고 운동회도 학예회도 참관수업도 싫었더랬다. 그런 주제에 이젠 누군가에게 안겨 펑펑 울고 싶은 날에는 자는 할머니 옆을 비집고 누워 뻔뻔하게 "할머니는 내가 왜 좋아?" 물어보고는 할머니의 당연한 대답을 기다린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너를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겠니? 너는 손주가 아니라 막내딸이야" 그 당연한 대답을 들은 다음 단계는 할머니 옆에 누워 자취방 가면 나 보고 싶을 텐데~ 우리 할머니 어떡해~ 하고 주접떨며 할머니 잠을 다 깨우곤 훌쩍훌쩍 울다가 잠드는 것이다.
사실은 내가 보고 싶은 거라는걸 할머니도 느끼고 있을까?
내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할머니를 바꿔 가는 만큼 할머니는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를 매일 바꾼다. 불안에 시달리다가도 할머니를 생각하면 든든해진다. 할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남은 평생 행복하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지키고 싶은 가치관을 모두 할머니의 사랑 앞에서는 한 수 접게 된다. 나를 좀 더 있는 그대로, 바라는 대로 살 수 있게끔 지지해주고 도와주면 좋겠지만. 여든 넘은 할머니가 조금씩 나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가고 공부하는 속도 이상으로 아직은 이해하지 못할 것들을 애써 이해해달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 나를 눌러두고 기다리는 만큼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이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면 나는 정말 어떡하지? 할머니 스카프를 훔쳐 두르지 않고도 간절기를 날 수 있을까? 정말 울고 싶을 때 할머니의 당연한 대답을 기대하며 울지 못하면 나는 대체 어디 가서 울어야 하지.
내가 고른 것보다 내게 더 잘 어울리는, 할머니가 챙겨주는 새 옷 없이는 새 계절을 웃으며 맞이할 자신이 아직은 없다. 그러니 밥도 잘 먹고 운동도 잘하고 카카오미니가 틀어주는 송00과 이00의 노래도 잔뜩 듣고. 나와 할머니가 함께 좋아하는 안00의 노래도 함께 듣고. 그렇게 각자의 호흡대로 공부하고 변해가며, 이해하고 서로 지지하며, 나도 할머니가 될 때까지 같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할머니 보고 싶다.
소피
중간에 합류했습니다. 나를 인정하고 나와 화해할 수 있는 글을 쓰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