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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행생활자 Mar 01. 2024

카드팔이도 진심은 있는데

진심 지키기는 왜 이리도 어려운가

내가 일하는 지점에는 재단보증서 대출이 꽤 많이 들어오는 편이다.


* 재단보증서 대출이란,

지역단위 신용보증재단에서 소상공인들을 위해 보증서를 발급해 주고, 이를 담보로 해서 은행이 소상공인에게 대출을 해주는 것. 연체와 같은 채무 불이행이 발생해도 보증재단에서 변제를 해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싼 금리로 소상공인들에게 대출이 나갈 수 있음.


재단 보증서 대출은 "찍어내기"라고, 은행직원들이 표현하는데, 일반 주담대나 전세대출 보다 상대적으로 간단하기 때문이다. 정말 많이 올릴 때는 하루에 대여섯 개씩 올리기도 했었다.


첫 방문 때는 보증서와 서류들을 가지고 신청서를 받으면, 승인을 올리고, 며칠 후 두 번째 방문 때는 약정서에 금리, 금액, 조건들을 쓰고 대출금을 드린다.


며칠 전에 분식점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이 보증서 승인이 났다며 대출을 받으러 오셨다. 상호가 익숙해서 보니 내가 배달의 민족에서 자주 봤던 분식점이었다. 상호도 좀 특이하고, 후기가 매우 좋은 편이라서 기억이 났다. 다만 내가 자주 시켜 먹는 분식집이 있어서 주문을 한 적은 없었다.


"사장님 저 여기 배달의 민족에서 봤어요. 후기가 엄청 좋던데요?"

"아... 네... 다들 좋게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배달의 민족에서 본 느낌에는 사장님이 분명 여자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나의 고정관념이란... 남자분이셨다.


대출 신청서를 쓰고, 사장님께 대출금을 어디에 쓰실 건지 여쭤봤다.


"밀키트를 출시해보려는데 돈이 좀 들어서요. 대출 처음 받아봅니다."


보증서로 대출해드릴 수 있는 금액이 크진 않았다.


"대출 더 필요하지 않으세요? 이건 좀 부족하실 것 같은데"

"아... 네 안 그래도 여쭤보려고 했는데..."


신용도가 워낙 좋으신 데다가 이런저런 조건들이 좀 맞으셔서 금리가 좀 싸게 나갈 수 있는 대출이 있어서 말씀을 드리니 생각해 보고 연락을 주신다고 하셨고, 일단은 돌아가셨다.


점심을 먹으면서 그 분식점을 찾아봤는데, 맛집을 찾아내는 나의 원초적인 감각에 따르면 분명 맛집이었다. 역시나 블로그나 네이버 후기도 좋았다. 다음에 가봐야지 하고, 플레이스 저장을 했다.


며칠 후 전화가 왔다.


"천만 원 정도 더 대출을 받을 수 있을까요?"


당연히 해드리겠다고 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가게가 장사가 잘돼서 확장을 한다니.


무엇보다 내가 대출을 더 해드리고 싶어 졌던 이유는, 돈이 더 필요하지 않냐고 여쭤보았을 때, 아주 신중히 고민을 하고 결정을 해주셨다는 점이었다. 일단 대출이면 받고 보자(요즘은 고금리라 이런 분들이 확실히 적어졌다)는 고객들 속에서 신중히 고민을 하고 답을 주시는 고객한테는 확실히 믿음이 간다.


여하튼 며칠 후에 보증서 대출과 추가대출을 받기 위해 사장님이 오셨다.


원래도 약정서 설명은 꼼꼼히 하는 편이긴 하는데, 시작하기 전부터 궁금하신 거 있으시면 물어보시라고 했고, 대출을 처음 받으신다고 하셔서 정말 꼼꼼히 설명했다.


대출금은 내드렸고, 이제 나는 영업을 차례. 카드도 팔아야 하고, 뭐도 팔아야 하고, 뭐도 팔아야 하고.


같이 일하는 대리님은 고객한테 개인적 호불호가 어디 있냐 하시긴 한다. 사실은 그 말이 맞다. 호불호에 상관없이 항상 일관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게 사실 맞는 말이다. 그래도 가끔 정말 인간적으로 괜찮은 고객들을 만나면, 신경을 더 쓰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근데 내가 여기서 카드부탁? 인간적 호감에 의해 비롯된 나의 진실된 선의가 카드하나 "팔아먹기" 위한 모든 가식이 되는 듯한 이 느낌. 이 부분이 바로 내가 은행원으로서 가장 불편한 지점 일만이천 개 중 하나다. 어휴.


그렇다고 카드 안 파는 은행원은 무능력한 은행원이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장님이


"그런데 카드는 안 주시나요...?" 하고 물어오셨다.


"사장님 신용카드 안 쓰시고 체크카드 쓰시죠?"

"아... 네..."


혹시 나는 역시나였다.


카드신청서를 드리고 사장님이 그걸 쓰시는 동안 한참 고민했다. 체크카드만 쓰는 사람한테 신용카드를 팔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의 진심이 카드 한 장에 오해받고 싶진 않은데... 그리고 결정을 내리고 구구절절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장님 저희가 원래 대출을 나가면서는 카드던 뭐던 거래요청을 좀 드려요. 근데 체크카드만 쓰신다는데 제가 이런 말씀드리기는 그런데 어차피 이 카드 신청서로 신용카드랑 체크카드 둘 다 발급이 되니까 신용카드 발급받으시고 결제 한 번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리고 신용카드 안 쓰셔도 돼요."

"아... 그러면 네... 체크카드랑 신용카드 발급해 주시고 신용카드도 이참에 써보죠..."

"아, 아니에요 절대 그러지 마세요. 지금까지 하시던 대로 하세요. 그냥 신용카드 발급만 받아주시고 한번 써주시고 그냥 잊으세요. 원래 신용카드 쓰지도 않으셨는데, 쓰지 마세요."


성공(?)인데 왜 이렇게 찝찝하지. 고고하게 나의 진심을 지키기에 이 삶은 너무 어려운 것 같다.


그게 영업이던 뭐던 상대방에게 진심을 다하면 전해진다던데,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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