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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Nov 05. 2023

마흔, 아직 늦지 않았어요.

초심 상담자 분들의 상담사례 지도를 하기 위해 축어록을 읽고 있었다. 애타는 눈망울과 함께 '어떻게 하면 상담을 잘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모습이 떠올랐다. 다급해졌다. 손가락으로 펜을 돌리며 뇌 속의 도서관을 찾아가 파묻힌 지식들을 건져 올렸다.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카카오톡의 알림 창을 하나 둘 둘러보았다. 몇 년 전, 짧은 인연으로 만났던 한 분의 톡이 눈에 띄었다.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잘 지내고 계시죠? 제가 상담 공부가 하고 싶어 대학원을 알아보고 있는데 생각나서 연락드려요. 좀 늦은 나이가 아닌가 고민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알아가다 보니 부담과 고민이 더 생기는 것 같아요. 혹시 언제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은데 많이 바쁘시죠? 괜찮으시면 연락 한번...."

머릿속에선 이미 반가움에 겨워 두 손을 덥석 잡았다. 오랜만이란 안부 인사와 함께 그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 너무 늦지 않았느냐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그간의 마음 졸임을  충분히 듣고 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떤 것 때문에 상담 공부가 하고 싶으세요?"

간절한 열망은 짧은 글로 요약하기에 속절없었다. 나는 이런저런 고민을 터놓는 분들에게 정답을 주듯, 대답하지 않는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번만큼은 달랐다.

"공부는 너무 하고 싶은데 그리고 꼭 해야 할 것 같은데.... 너무 늦은 건 아닐까 걱정하시는 거죠?

"네. 정말 하고 싶어요."

"만약 '시기'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늦지 않았어요."

"네?"

다시 한번 힘주어 대답했다.

"상담 공부하는데 늦지 않았어요. 그냥 전하는 위안이 아니라 진짜로요. 저에게 상담 사례 지도받으시는 분들도, 제가 강의하는 대학원에도 마흔이 훌쩍 넘으신 분들이 많아요. 예순이 다된 나이에도 두 눈을 반짝이며 공부하시는 분들도 많고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공부하시는 모습을 보면 제가 늘 감동하곤 해요."


"정말요?"

"네. 요즘 공부에 늦은 나이 없다고 하잖아요. 특히, 상담 쪽이 더 그런 것 같아요. 물론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건 너무 어렵고, 공부할 양도 많아 헤맬 순 있어요. 그렇지만 나에 대해 알아갈 수 있고 사람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어요. 마음 하나하나에 공감하다 보면 사람을 알아가는 겸손함도 배울 수 있고.... 공부를 마치고 나서 내가 원하는 일을 못할 수도 있지만 나를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도 상담공부해서 그나마.. 이만큼 살게  것 같거든요."

핸드폰 너머로 안도의 한숨과 눈물이 전해졌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공기 중으로 조금씩 조금씩 흩어졌다.



이처럼 나는 요즘에 '마흔이 넘은 나이에 무얼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만난 늦깎이 학생을 이야기하고, 미국에 사는 지인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늦게 하는 공부인만큼 소중해서, 즐거워서, 힘든지 모르고 해 나가는 분들, 삶의 연륜을 공부에 녹여 풍성한 지혜를 꺼내놓는 분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삶의 연륜이 묻어난 순간을 목격할 때면 저절로 삶에 대한 경외심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리고 15년 전, 단돈 300만 원을 가지고 미국에 이민 가서 살았던 내 친구 K는 식당 서빙, 세탁소 일 등을 마다하지 않았다. 억척스럽게 이민 생활에 적응하고 아이 둘을 키운 그녀숨 돌릴 틈이 되니 공부를 시작했다. 삼십 대 후반의 나이에 컬리지에 들어갔다. 시작은 마음을 욱 조이는 두려움이었지만 끝은 희열이었다. 친구에게 듣기론 같이 공부한 학생들의 나이가 다들 많더란다. 미국은 여전히 'dream'의 나라인지, 마흔이 넘는 나이에 대학에 가는 일이 허다하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기회가 많다고 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우리나라도 뒤늦게 무언가를 시작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긴 세월을 놓고 본다면 하나의 우물만 파고 살기엔 너무 시시하지 않을까? 마흔이 넘어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는 이들 중, 더러는 지나온 세월이 아쉽다, 후회된다 이야기하기도 한다. 누군들 삶에 어찌 후회가 없겠는가. 그래도 우리의 삶은 허투루 날아가지 않는다 생각한다. 차곡차곡 살아온 흔적은 지금의 나이기에  더없이 소중하다. 모든 일은 삶의 연륜을 뛰어넘을 수 없다.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이라면 어떤 시작이든 그 삶의 경험들 하나하나가 마중물이지 않겠는가.


마흔이 되어 작가에 등단한 박완서 작가님도, 마흔이 되어 강의를 시작한 김미경 대표님도 있다. 물론 꼭 그분들처럼 근사하지 않아도,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엄마'에서 '나'로 돌아오는 일들을 해나간다면.... 글을 써도 괜찮고, 그림을 그려도 괜찮다. 어떤 것이든 그저 괜찮다.


"Life really does begin at forty.

Up until then, you are just doing research."

-Carl Gustav Jung-


심리학자 융은  인생의 진정한 시작이 마흔부터라 강조했다. Really, 요즘 말로는 찐 인생의 시작이 마흔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스무 살, 마흔.

늦은 나이가 아니다. 빨리 알았더라면... 빨리 시작했더라면... 하는 후회는 고이 접어두자. 슬몃 슬몃, 꿈꿔왔던 일들을 꺼내보자. 그 끝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적어도 스무 살의 그 설렘은 다시 만끽할 수 있지 않겠는가.


괜찮아요. 마흔. 아직 늦지 않았어요.

그대는 무엇을 다시 시작해보고 싶나요?





"이제 나를 위한 특별한 인생 수업을 시작하자.

한 번의 마흔 수업이 끝날 때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더 뜨겁게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생 절반의 문제를 풀어낸 실력으로 마흔 이후의 인생도 행복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마흔은, 당신의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김미경의 마흔 수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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