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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Nov 19. 2023

흰 머리가 대수일까? 나의 글쓰기에게

오랫동안 망설였던 임수진 작가님의 '밤호수 에세이 클럽'에 참여했다. 묵혔던 날들을 글로 꺼내놓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왔던 터였다. 바쁜 시간표에 맞춰 틈틈이 글을 쓰느라 예전에 써둔 글들을 다듬는 꼼수를 부리기도 했지만 고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애쓰는 마음뿐 아니라 문장 하나에도 두뇌를 풀가동한 탓인지 그간 보이지 않았던 흰머리가 난데없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몇 년 전, 박사과정 중에는 머리카락이 빠지는 통에 정수리가 비어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전두엽 부근의 흰머리카락이 검은 머리카락과 섞이기 시작한다. 마음을 쓴다지만.... 글을 쓴다는 건, 전두엽을 활성화시키는 일임이 증명된 듯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 밖의 일들을 해내느라 전두엽을 심하게 가동한 탓인 듯하다. '흰머리를 선사한 에세이'여도 멈출 수 없는 이 마음은 무엇일까? 쓰고 싶은 마음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마음을 풀어낼 길을 몰랐던 어린 시절에는 차마 말로 내뱉을 수 없었던 서린 마음을 일기장에 담았다.  때론 마음이 맞는 친구와 교환 일기장을 쓰기도 했고, 독후감, 수필 등으로 상을 받기도 했지만 삼키는 말들을 일기장에 써 내려갔던 시간이 나에겐 가장 큰 위로의 시간이었다. 일기장은 어린 시절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셈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일기를 쓸 여유가 사라져 갔다. 이십 대까지도 일기를 쓰곤 했는데 결혼하고나서부턴 글샘이 말랐다. 아이를 낳고 나선 맘스 다이어리와 남양아이 일기 책자를 스무 권 이상 탄생시켰지만 그건 나의 이야기보다 아이의 이야기였다. 아이들이 크고 나자, 자연스럽게 핸드폰 갤러리에는 아이들의 사진이 소멸해 갔고 육아 일기 또한 소소해졌다. 그렇게 시선이 아이에게서 내게로 다시 되돌아왔다. 쓰고 싶은 마음이 다시 꿈틀거렸다.  


때마침 세상은 반강제적으로 쉬어가는 시간을 우리에게 선물해 주었다.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하는 시간보다 나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 더욱 많아졌다. 누군가에게 말로 했던 이야기를 이제는 글로 써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2021년 9월, 동네 도서관에서 열린 '나를 알아가는 에세이' 수업을 수강하게 되었다. 글쓰기 수업은 처음이라 소풍 가는 어린아이마냥 두근거렸다.  총 10주간의 수업을 들으며 그간 혼자서 삭혔던 이야기를 들추기 시작했다. 용기가 생겼던 건, 직접 마주한 얼굴이 아닌 화면으로 필터링된 얼굴을 마주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리고 글에 담긴 사람으로 만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매 회기 수업 중에는 자신의 글을 직접 낭독하는 시간이 있었다.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낭독하다, 두 눈을 감고 그날의 풍경을 떠올리다, 나는 그만 울먹이고 말았다. 단어 하나하나에 마침표를 찍듯, 목이 멘 소리로 꾹 눌러 문장을 이어갔지만, 나는 어느새 아홉 살, 그날의 아이가 되어 있었다. 글을 낭독할 때마다 예상치 못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내가 앉은 책상 가까이에 자리 잡고 바닥에 누워있던 첫째 딸이 조용히 다가와 나의 뒤를 꼭 안아주었다. 책을 읽는 줄 알았는데 귀로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나 보다. 아홉 살 날 엄마를 위로해 준 열두 살 딸의 따스한 그 온기 때문에 끝까지 쓸 수 있었고 끝까지 낭독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글쓰기를 시작했던 때가 내 나이 마흔을 갓 넘었을 때이다. 인생을 80으로 본다면, 마흔이면 절반 즈음이었다. (물론 요즘은 의학이 발달해서 100세 인생이라고 하지만 말이다.) 40년이란 세월을 돌아보면 생각만 해도 마냥 웃고 싶은 즐겁고 행복한 날들이 있었다. 가만한 날들도 있었고, 때론 혼자서 울먹였던 날들도 있었다. 기억에 남아있는 숨겨둔 이야기를 꺼내 놓으나는 깊은 해방감을 경험했다. 치유하는 글쓰기였다. 상담센터를 운영하는 친구는 "상담과 함께하는 치유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을 할 생각은 없느냐 묻곤 한다. 지금은 없는 시간을 쪼개가며 어설픈 글을 쓰는 풋내기 작가지만, 언젠가는 고요한 침묵 중에도 온전한 지지를 보내는 글쓰기 수업을 해보고 싶다. 단단한 벽을 허무는 과거와 연관된 글감을 던지고 진솔한 글을 써 내려가는 시간을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다. 응집력으로 똘똘 뭉친 집단원들처럼 서로의 글뿐만 아니라 삶을 응원하는 글쓰기 집단상담을 꾸려보고 싶다.


 지나간 나날들을  톺아보는 일. 글로 매듭짓는 일. 그리하여 또 다른 인생을 기대해 보는 일. 마흔의 글쓰기를 계속해나간다. 작업실을 갖는 전업작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때론 부럽기도 하지만 내가 유명한 작가가 될 만큼 재능이 있는 건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니 지금은 내게 주어진 현업을 치열하게 살고 또 한편의 치열함을 담아 열심히 쓰는 일을 해본다. 누군가에게 글을 쓰는 일은 돈을 버는 일이 아닐 테지만, 그렇다고 글 쓰는 데 있어 돈 드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마흔 앓이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내 삶의 이야기를 써보라고 권하고 싶다.


인생의 가을날, 삶이 익어간다.

.

.

.

당신은

마흔을 살면서 혼자 가슴앓이 하면서 묵혀둔 이야기가 있나요?

어떤 이야기를 꺼내놓고 싶나요?

펜이 움직이는 대로 나만의 이야기를 그려볼까요?






"한 번쯤은 살면서 꽁꽁 감춰두고 꾹꾹 눌러 담은 사무친 이야기를 반드시 써야 한다.

사무친 이야기는 대체로 슬픔과 고통의 경험과 연결되어 있다.

그 경험들은 단지 마음 깊숙이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온몸에 온 마음에 새겨져 있다.

그러기에 만성적인 통증처럼 자주 아프다.


"울면서 쓰고 울면서 읽는,

울면서 어떻게든 자기만의 매듭을 묶어보려고

애써보는 마음들이 간절하고 뜨거워서 따라서 운다.

울더라도 끝까지 자신의 글을 읽어 내려가는 사람을 안아주고 싶다."


<마음 쓰는 밤, 고수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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