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핫한 주제 중 하나인 MBTI.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간이 검사를 해보니 내 MBTI는 엄격한 관리자형이라는 ESTJ였다. "직설적인 언어로 표현한다", "계획이 틀어지는 것을 싫어한다", "호불호가 확실하다" 등의 설명을 읽어보니 내 성격과 얼추 맞는 듯했다. 사실 중학교 시절에 정식으로 검사받았을 때는 ISTJ였지만, 그동안의 성격 변화를 감안하면 외향성과 내향성이 거의 50:50으로 나온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간이 검사여도 생각보다 정확하구나 싶었다.
흔히 MBTI는 유사과학이라고들 한다. 미리 밝히지만 나는 유사과학을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심심풀이로 흥미 있게 보는 편이다. 좀 허무맹랑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아예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닌 거니까. MBTI별 연애방식, MBTI별 추천 드라마, MBTI별 핸드폰 케이스, 심지어 MBTI를 주제로 한 드라마가 나와도 재밌게 본다.
그렇지만 MBTI와 관련된 무언가를 보면서 마음 한구석에서 느껴지는 불편함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그것은 "정당화"에 대한 불편함이었다. MBTI에 근거를 둔 핑계들("나는 E여서 이렇게나 부산스러워", "나는 T여서 이렇게나 공감을 못해", "나는 P여서 이렇게나 대책이 없어")을 통한 자기 행동의 정당화 말이다.
우스갯소리로 그런 변명을 하는 사람과 MBTI에 대한 과몰입의 결과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우스갯소리라 하더라도 보통 아예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그러면 농담으로든 진심으로든 MBTI를 통해 자신의 성격을 설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한 가지 공통적인 생각을 최소한 어렴풋하게나마 기저에 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MBTI는 불가항력적이기 때문에 내가 나 자신을 바꾸는 것보다는 남이 이런 나를 이해하는 편이 더 빠를 것이라는 생각.
이러한 생각은 정형화 그리고 단순화라는 MBTI 자체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MBTI가 유행하기 전, 우리는 아마 자신의 성격을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고, 잘 웃고, 비현실적인 상상을 꽤나 자주 하고..."와 같이 장황하게 소개해왔을 것이다. MBTI는 이 모든 것을 정형화시켜서 네 글자로 포괄할 수 있다고 보는 이론인데,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무언가를 단순화시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상당한 변화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이 단순화 작업은 우리가 자신의 성격을 더 쉽게 소개할 수 있도록 해주었지만 동시에 성격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크게 경직시켰다.
잘 알려진 예시와 비교하자면 욕을 할수록 어휘력이 저하되는 현상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우리는 "나는 너의 이러이러한 면 때문에 화가 났어." 라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몇 글자에 불과한 저속한 말로 뭉뚱그려 표현하면서 원래 우리가 하고자 했던 말을 귀찮다는 듯이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버린다. 이 행동이 반복되면 그런 설명을 하는 방법을 점점 잊어버리게 되므로 어휘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 메커니즘을 성격에 적용해 보자. 네 글자로 표현된 우리의 성격은 우리로 하여금 그 네 글자 이외의 측면들을 망각하도록 한다. 네 명 이외의 모든 배우들이 무대 뒤로 퇴장하고 나면 무대 위에 남아있는 네 명은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는 절대적인 존재들이 된다. 그들이 연기를 잘하든 못하든, 대사를 외워왔든 못 외워왔든 우리는 그들을 교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다른 배우들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배우의 수가 줄어들수록 배우를 교체해야겠다는 생각이 사그라들듯이, 성격 또한 단순하게 표현될수록 우리는 그것이 굉장히 다양하고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따라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무언가라는 사실을 점점 잊어버리게 된다. MBTI가 불가항력적인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한 정당화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믿음과 그러한 정당화가 마냥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는 성격 때문에 주눅드는 일 없이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러한 "MBTI적 정당화"를 불편해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 마음을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인 동시에 높은 담장이기도 한 까닭이다. 자기혐오와 함께 자기계발까지도 막아버리는 높디높은 벽 말이다. 이 벽을 맞닥뜨린 사람, 혹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고 그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빠진 사람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시도 자체를 주저하게 된다.
현재 시점에서 나와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지만, 초등학교~중학교 시절의 나는 부모님도 걱정하실 정도로 내성적인 학생이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 서투르고 절대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법이 없었던 교실 구석의 조용한 아이. 지금의 성격은 낯을 가리지 않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한 끝에 만들어진 것이다. 중학교 때는 MBTI가 뭔지도 잘 몰랐기 때문에 검사 결과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약 지금처럼 MBTI가 사회 전반적으로 흥행하는 밈이었다면 어땠을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난 원래부터 이렇게나 내성적인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에 빠져 나 자신을 바꿔보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기 성격에 대해 만족하는 것은 분명 좋은 자세다. 성격은 객관적으로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없는 어떤 것이고 따라서 자기 성격을 싫어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족하는 것과 안주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나 자신을 싫어하지 말라는 게 그 자리에 영원히 머물러 있으라는 뜻은 아니니까 말이다. MBTI를 보면서 자기가 원하는 인간상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잘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이미 세상에는 수많은 "신포도"가 존재하는데 성격까지도 신포도로 만들어버리는 건 좀 슬프지 않은가?
유사과학은 분명 재미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과몰입은 금물이다. 안 먹어도 되었을 심심풀이 땅콩을 삼켰다가 목이 막혀버리는 건 누구라도 억울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