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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verselow Feb 18. 2021

이갈이


나에게는 이를 가는 버릇이 있다.


이갈이 방지 마우스피스.


  너무 심하게 갈아서 앞니가 깨질 정도였기에 얼마 전 치과에 가서 이갈이 방지 마우스피스까지 맞췄다. 꽤나 비쌌지만 최소한 앞으로 이갈이 때문에 이가 깨질 일은 없을 것 같다.


  이를 가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가장 주요한 원인은 교합이 안 맞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돌출입까지는 아니지만 윗니가 약간 튀어나와 있어서 어금니끼리 맞물리면 위아래 앞니 사이에 공간이 생긴다. 그래서 앞니의 교합을 억지로 맞추기 위해 자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이갈이를 하는 것이라고 치과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정작 나는 교합이 안 맞아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 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회적 기준들을 맞닥뜨린다. 이런 사람에게는 이렇게 대해야 하고,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지침들. 그 기준들도 결국 남들이 설정한 것일 뿐이므로 지키지 않더라도 우리가 생활하는 데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오히려 그러한 지침들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더 편할 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그 기준들에 스스로를 맞춰나가려고 노력한다. 그래야지만 더 착하고 예의 바르고 단정하며 "정상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이갈이를 하는 사람은 다른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는 한 자신의 버릇에 대해 알 방법이 없다. 이갈이는 잘 때만 일어나는 무의식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사회에서 제시하는 기준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하게 된다. 또한 이를 너무 자주 갈면 이가 깨지기도 하고, 심하게 갈면 자고 일어났을 때 턱관절이 뻐근하게 아파오기도 한다. 사회적 기준이라는 구멍에 스스로를 억지로 끼워넣기 위해 우리 자신을 깎아내고 다듬는 과정은 이갈이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다.


결국 우리는 평생에 걸쳐 "사회적 이갈이"를 하면서 살아가는 셈이다.


  이를 가는 사람들의 해결책은 다양하다. 나처럼 마우스피스를 사서 끼우는 사람도 있고, 이를 가는 원인 자체를 없애버리기 위해 치아교정을 하는 사람도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고 사는 사람도 있다. "사회적 이갈이"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온갖 기준들에 자기 자신을 맞춰나가는 데 익숙해지다 못해 무뎌진 사람, 애초에 스스로를 힘들게 맞춰나갈 필요가 없도록 내면까지도 사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완전히 바꿔버린 사람, 그리고 틀에 박힌 삶을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이 모두 존재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나의 "사회적 이갈이"는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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