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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verselow Mar 04. 2021

<소울> 리뷰

평점: 9/10


  그런 말이 있다. 탄수화물과 고기를 끊으면 오래 살 수 있지만 그걸 모두 먹지 않는다면 굳이 오래 살 이유가 없다는 말. 인간이 오래 살고자 하는 이유는 세상의 즐거움을 더 오래 느끼기 위해서이고, 그러한 즐거움 중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기쁨도 포함되므로 먹고 싶은 음식을 끊어가면서까지 오래 살려고 노력하는 삶이 행복한 삶은 아닐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비유하자면 이 영화는 탄수화물과 고기를 왜 끊어서는 안되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거의 정해져 있다. 태어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태어나기를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부모님에 의해 태어났고 굳이 생을 빨리 마감할 이유는 없으므로 일단 계속 살아가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왜 살아가는 것일까?"라는 질문은 이유가 아닌 목적을 제시하라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 해석을 채택한 사람들은 태어났기 때문에 산다는 대답에는 목적의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한평생에 걸쳐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자신들이 살아가는 이유로 제시한다. 성공하기 위해서,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등등.


  목적의식이 있느냐 없느냐로 따지면 차이가 있겠으나, 이 두 가지 대답들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한눈을 팔지 않는", 그러니까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제대로 살피지 않는 사람들이 내놓는 답변이라는 것이다. 그저 태어났기 때문에 사는 사람들은 그러기가 귀찮아서, 목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그럴 시간이 없어서 한눈을 팔지 않는다.


  <소울>은 이처럼 절대 한눈을 팔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다름아닌 "한눈을 팔기 위해서"일 수도 있음을 알려주는 영화다. 영화 속 뉴욕에서 현대인들이 피곤에 찌든 동태 눈을 하고 무감하게 지나치는 거리의 가로수와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22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된다. 또한 조가 무대 위에서 "각 잡고" 연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온 재즈는 22에 의해 우리가 그냥 지나치는 사소한 것들로부터 리듬과 소울을 발견하는 것으로 재해석된다. 우리가 매일같이 지나치는 흔하디흔한 사물들도 누군가에게는 무엇보다 순수한 행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 온 22는 뉴요커들이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것들을 보고 감탄하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다.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든,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든 간에 결국은 더 편하게 살고 싶으니 가기 싫어도 출근을 하고 귀찮아도 집안일을 하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더 편하게 살고 싶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결국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기 위해서이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즐기는 커피 한 잔의 여유, 단골 식당에서 단골 메뉴를 먹을 때의 기쁨, 먼 나라로 여행을 갈 때 느껴지는 해방감 같은 일상 속의 행복 말이다.


  슬프게도 우리는 이 사실을 자주, 아니 거의 항상 망각하고 지낸다. 우리는 더 편하게 살기 위해 소소한 아름다움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하기 싫은 것들을 영혼 없이 하면서 자기 몸을 매일같이 혹사시킨다. 편하게 사는 것은 분명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어느새 행복이라는 본래의 목적은 사라진 채 수단이 목적 그 자체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 점에서는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과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세상이 자신에게 건네는 행복을 걷어차는, 역설적이면서도 슬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한눈을 팔며" 살아가라는 이 영화의 교훈을 모두가 실천해야 한다는 말은 못할 것 같다. 아마 나 또한 미래에 행복을 위해 행복을 포기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고 관성에 따라 앞으로도 그렇게 살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이 영화를 통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포기해왔으며 미래에 포기할 행복의 몇몇 조각들을 다시 주워담는 방법은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마냥 행복해지지는 못하겠지만 덜 불행해지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나에게 충분히 아름다워 보일 테니까.


  바쁘고 피곤하며 불행한 현대인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꽤나 아름답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깨닫는 것이 우리 삶의 이유일 수도 있음을 일깨워주는 아름다운 영화였다.


  평점은 9/10. 스토리는 더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하고 몽글몽글하고 부드러운 질감의 애니메이션이 영화를 보는 내내 포근한 느낌을 준다. 컨템포러리 재즈 장르의 배경음악도 듣기 좋다. 10/10이 아닌 이유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22를 위해 희생한 조가 부활하지 못하고 죽었거나 인간 세상에 태어난 22와 돌아온 조가 재회했으면(적어도 어딘가에서 서로 스쳐 지나갔으면) 내 기준에서 더 여운이 남는 결말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S. 테리라는 캐릭터가 꽤 귀엽다. 우쭐대면서 매번 허술함을 드러내는데, 일을 꾸밀 때마다 "It's Terry time"이라고 하고 다니는 게 칭찬이 고픈 초등학생 같아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쿠키 영상에서 관객들에게 윽박을 지르는 모습까지도 귀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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