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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verselow Feb 04. 2021

<이터널 선샤인> 리뷰

평점: 7/10


  이 영화는 정말 유명하다. 로맨스 영화를 꼽아보라고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평점도 엄청나게 높다. 네이버 영화 평점이 무려 9.26이다. 그래서 나중에 보려고 최대한 아껴두다가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었을까. 솔직히 그렇게까지 감동적이거나 눈물이 찔끔 나거나 심금을 울리는 영화는 아니었다. 마치 사골국물 같았다. 깊이가 있지만 전혀 자극적이지 않고 싱거웠다.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곰탕을 좋아하듯이 나이가 들수록 그 참맛을 깨닫게 되는 영화인 것 같았다는 뜻이다. 나는 아직 어려서 그 맛을 잘 모르나보다. 아직까지는 시끄럽게 연애하고 헤어질때 울고불고 하는 신파성 짙은 영화가 좋다. 네이버 영화평을 훑어보다 보면 " 영화를 10대때 처음 접했는데 그땐 정말 이해도안되고 재미도없었는데.. 시간이 흘러 20 후반이 되어  영화를 다시 보니 어느새 영화 안에 흠뻑 취한 나를 발견했다."라는 리뷰를 발견할  있다. 나도 10년이 흐른 뒤에  영화를 다시 보면 지금보다는 느끼는 바가 더 많을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 먼 길을 돌아온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영화의 결말부에서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서로 자기가 받은 카세트테이프를 틀면서 드러나는 사실이지만 조엘은 클레멘타인이 기본적인 교양이 없고 섹스로 애정결핍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에 싫증을 느낀다. 클레멘타인은 조엘을 따분해하고 조엘의 어딘가 억울해보이는(솔직히 진짜 억울해 보인다.) 미소를 싫어한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좋고 나쁜 기억을 모두 지우고 난 둘은 다시 서로에게 끌림을 느낀다.


  이걸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헤어진 사람들이 다시 만나지 못하는  그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과의 기억이 싫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 현실에 정말로 연인과의 기억을 지우는 기술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헤어진 연인이 우연히 마주칠 수만 있다면 상당수가 재결합할 것 같다는 생각. 시 구절인지 노래 가사인지는 생각이 잘 안 나지만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시절이 그리운 것처럼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시절이 싫을 수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에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둘이 왜 헤어졌었는지 다 알면서도 다시 시작하지만 어쨌든 그건 얘가 이랬대, 쟤는 저랬대 하는 "카더라"인거지 기억을 지워버려서 둘의 머릿속에 그 시절 자체는 남아있지 않은 거니까.


  이와 관련하여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면, 나는 지금으로서는 지나간 인연을 다시 만날 생각이 추호도 없다. 기억을 지운다고 해도 딱히 만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사람을 보는 눈이란 본디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는 법인데 그 눈이 생겨버린 이상 그때의 그 사람을 지금의 눈으로 바라보면 애초에 호감이 생기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그 눈이 보내는 신호를 가볍게 무시할 만큼 서로에게 본능적으로 끌리거나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이별을 맞이해야만 기억을 지우고도 만나고 싶어질 것 같은데 난 둘 다 해당사항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 공감하기가 더 어려웠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터널 선샤인> 재회에 성공한 연인이 함께   가장 긴 여운이 남을  같은 영화이다. 본능적으로 다시 끌린 것이든, 세월이 흐르면서 나쁜 기억이 풍화된 것이든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서로의 단점을 다시 참아보기로 결심한 것이니 공감이 잘될 것 같다. 나는 재회 경험이 없어서 아직은  모르겠다. 지금은 재회에 대해 한번 헤어진 사람을 다시 왜 만나나, 똑같은 이유로 또 헤어질텐데 왜 시간낭비를 사서 하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누가 알겠는가? 나중에 그런 생각을 안 할 만큼, 아니 그런 생각이 들어도 무시하고 싶어질 만큼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생기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연애는 곧 인생 공부이기도 하다. 나는 아직 걸음마를 뗀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평점은 7/10. 영화 전반에 흐르는 몽환적인 분위기도 꽤 좋고 서사도 탄탄하지만 너무 잔잔한 나머지 나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면 보다가 조금 졸기까지 했다.) 그래서 6점을 주려 했으나 이러한 지루함이 나의 부족한 연애경험에서 기인했다는 점, 다양한 영화 기법이 돋보인다는 점, 그리고 아무리 지루해도 둘이 다시 시작하기로 하는 마지막 장면만큼은 여운이 남는다는 점을 감안하여 1점을 더했다. 10년 뒤에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몇 점이 되어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와인이 숙성될수록 맛이 좋아지듯이 이 영화도 묵혀둘수록 좋은 영화가 되기 때문에 명작으로 손꼽히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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