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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verselow Apr 01. 2021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 리뷰

평점: 10/10


  내가 보면서 눈물을 훔친 마지막 영화는 13살 때 본 <늑대아이>였다. 그 뒤로는 재미있는 영화, 무서운 영화를 본 기억은 많아도 눈물이 날 만큼 슬프거나 감동적인 영화를 봤던 기억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8년 뒤에 공교롭게도 또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이 나를 울렸다. 8년이 지나는 동안 눈물을 참는 방법쯤은 터득했기에 같이 보러 간 친구는 내가 우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겠지만, 내가 지난 8년간 봐왔던 그 어떤 영화보다도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이 더 감동적이었다.


  21살의 나이에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보고 운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특이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내가 눈물이 났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끝에 이 영화가 나를 감동시킨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는 결론을 얻었다.


1. 탄지로에 대한 감정이입


  주인공인 탄지로의 운명은 아무리 설정이라고 해도 세상이 한 사람한테 이렇게까지 가혹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기구하다. 시리즈의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는데, 인간을 해치는 오니(도깨비라는 뜻이지만 혈귀로도 번역되는 것 같다)들이 일본 곳곳에 존재한다. 탄지로는 오니의 습격으로 여동생 네즈코를 제외한 가족을 모두 잃었다. 살아남은 네즈코마저도 오니로 변해버렸다. 그래서 탄지로는 가족의 복수를 하고 네즈코를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귀살대에 들어가서 네즈코를 백팩에 넣고 메고 다니며 오니를 사냥한다.


  나는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보지 않은 채로 극장판을 봤는데도 불구하고 중간중간에 탄지로가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슬펐다. 탄지로가 바란 것은 어마어마한 재산이나 명예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가족들과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탄지로의 가장 큰 소원이자 유일한 소원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을 오니 때문에 하루아침에 빼앗긴 셈이다. 탄지로는 가족들이 오니의 공격을 받을 때 집을 비운 상태였기에 과거 회상을 할 때마다 가족들에게 "혼자 살아남아서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외친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끊임없이 자책하며 목숨을 걸고 오니와 싸우는 탄지로의 심정을 생각하니 눈물이 안 날 수가 없었다.


탄지로와 네즈코.


2. 초인적인 정신력


  이 영화는 결국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오니에 맞서 인간이 승리하는 이야기이다. 신체적 능력만으로는 오니와 대적할 수 없기에 인간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정신력 뿐이고, 따라서 인간의 승리는 곧 정신력의 승리이다.


  무한열차를 차지한 오니인 엔무는 탄지로가 저항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기술을 써서 그를 계속해서 잠에 빠뜨린다. 탄지로는 그때마다 빠르게 꿈에서 빠져나오는데, 이때 탄지로가 어떤 방법을 쓰는지 깨달은 엔무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엔무뿐만 아니라 나도 놀랐다. 탄지로가 이것은 현실이 아니라 꿈이라는 사실을 강제로 자각하기 위해 잠에 빠질 때마다 꿈속에서 자신의 목을 베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꿈속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행동은 엄청난 담력을 필요로 한다. 더욱이 꿈은 탄지로가 죽은 가족들을 만나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임에도 불구하고 수십 번의 잠에 빠질 때마다 자신을 붙잡는 가족들을 수십 번 뿌리치고 돌아서는 탄지로의 모습을 보니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 자신이 무너지면 가족들의 복수를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일념 하에 정신력으로 버티며 수십 번의 자결을 감행하는 탄지로의 처절한 심정을 알고 나니 말 그대로 심장이 뻐렁쳤다.


  염주인 렌고쿠 쿄쥬로는 더한 정신력을 보여준다. 렌고쿠는 탄지로 일행과 무한열차의 승객들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상현 혈귀인 아카자와 홀로 싸우다가 엄청나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다(구체적으로 어떤 부상인지는 너무 잔인해서 굳이 쓰지 않겠다). 보통 사람같으면 바로 힘이 빠져서 쓰러졌을 테지만 렌고쿠는 자기가 쓰러지면 자기가 지켜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니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초인적인 힘으로 버틴다. 그리고 마지막 필살기를 써서 아카자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데 성공하지만 아카자가 이대로 계속 싸운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음을 알고 도망치는 바람에 그를 죽이지는 못한다.


  사실 렌고쿠와 아카자의 싸움은 애초에 밸런스가 맞지 않는 싸움이었다. 인간인 렌고쿠와 달리 오니인 아카자는 상처를 입어도 바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로불사의 몸을 가져서 두려울 것이 없는 오니와 달리 언젠가 죽을 운명인 인간은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키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초인적인 정신력을 낼 수 있다. 그리고 인간보다 훨씬 강력한 오니가 이 초인적인 정신력에 사실상 패배했다는 사실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마치 차에 깔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 엄청나게 무거운 차를 단숨에 들어올리는 괴력을 발휘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3. 바보같은 렌고쿠


  렌고쿠는 어린 나이에 염주가 될 정도로 강력한 사람이며 귀살대의 중요한 자원이다. 렌고쿠와 싸우던 아카자의 말마따나 렌고쿠 한명이 죽는 것은 나약한 인간 수십 명, 수백 명이 죽는 것과 비교할 수조차 없는 손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렌고쿠는 자신보다 훨씬 약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죽을 때까지 싸운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자신에게 가르친,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지키기 위해 강하게 태어난 것이라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어떠한 사명을 위해 주어진 능력을 가지고 그 사명을 외면하는 자는 그러한 능력을 가질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렌고쿠와 아카자의 전투씬이 시작될 때부터 렌고쿠의 죽음을 직감했기에 고구마를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충분히 도망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죽음으로 끝날 것이 확실시되는 싸움에 제 발로 걸어들어간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에 렌고쿠가 죽은 어머니에게 당신의 아들로 태어나서 영광이었다고 말하고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보면서는 그가 너무 바보같다는 생각이 든 나머지 눈물이 났다. 신념을 목숨보다 중요시했기에 자기가 죽더라도 사람들을 지키는 데 성공했으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나는 게 보여서였다. 아직 창창한 나이이고 능력도 좋으니 앞으로 살아갈 날이 구만 리인 사람이었는데 남은 생 전체를 포기하면서까지 아카자에게 맞선 것에 대해 아무런 미련도 아쉬움도 없어보여서 내가 다 안타깝고 슬펐다.


  렌고쿠는 정말로 바보가 맞다. 이 영화에서 제일 바보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봐온 영화들에서는 가장 바보같은 사람이 항상 가장 큰 슬픔을 주었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도 예외는 아니었다.


염주 렌고쿠 쿄쥬로.


  물론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이 네이버 영화 평점 9.64를 찍고 있는 이유는 스토리가 감동적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작화도 그렇고 등장인물들이 기술을 쓰는 장면이 굉장히 정교하고 멋지다. 특히 렌고쿠가 "마음을 불태워라. 한계를 뛰어넘어!"라는 영화 최고의 명대사를 날리고 쓰는 마지막 기술인 "화염의 호흡 제9형 연옥"과 젠이츠가 쓰는 "번개의 호흡 제1형 벽력일섬 6연"이라는 기술이 제일 간지난다. <신의 탑>이나 <고수>같은 웹툰을 좋아했던 (나같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 그래서 순서는 좀 거꾸로 된 것 같지만 극장판을 보고 온 뒤로 넷플릭스로 <귀멸의 칼날> 시리즈를 정주행하고 있다. <원피스>나 <명탐정 코난>과 달리 이미 완결이 난 만화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젠이츠의 벽력일섬.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내가 주로 어떤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아무래도 사랑과 이별로 인한 슬픔보다는 죽음과 영원한 단절에 대한 슬픔을 더 크게 느끼는 사람인 모양이다. 8년동안 그 어떤 로맨스 영화도 울리지 못한 나를 웬 무협 판타지 애니메이션이 울렸으니 말이다. 이제 울고 싶을 때 어떤 영화를 봐야 할지 알 것 같다.


  평점은 10/10. 스토리와 작화가 모두 완벽했다. 애니메이션이든 뭐든 다 떠나서 굉장히 오랜만에 본 재미있으면서도 감동적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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