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nverselow May 06. 2021

<비와 당신의 이야기> 리뷰

평점: 3/10


  말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본 영화였다. 마침 시험이 끝났고, 평일 저녁이라 멀리까지 갈 수 없었고, 영화관에 안 간지도 꽤 됐었고,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길래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예매했고, 아무 생각 없이 가서 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고도 아무 감흥이 없는 영화였다.


  비가 내리는 장면이 있는 첫사랑 영화는 대개 명작이다. <노트북>에서 노아와 앨리는 쏟아지는 빗속에서 재회하고,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 샹룬과 샤오위는 빗속에서 함께 자전거를 타고,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서 커징텅과 션자이는 빗속에서 다툼을 벌인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도 비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영호는 12월 31일에 비가 내리면 만나자는 기약 없는 약속 때문에 매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자신의 첫사랑인 그녀를 기다린다. 절대 내리지 않는 비를 기다리던 그는 우산 가게를 차리고 우산을 팔면서 살아가는 우산 장수가 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전술한 영화들과 달리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는 로맨스 영화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다. 바로 개연성이다. 힘든 삼수 생활을 하던 중 십년 전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자기한테 손수건을 건네준 뒤로 아무런 접점이 없었던 여자아이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것은 노아-앨리, 샹룬-샤오위, 커징텅-션자이의 첫 만남 서사에 비해 너무 약하다. 얼굴도 모르고 아무런 연락을 하지도 않았던 동창에게 뜬금없이 연애편지를 쓸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공부하기가 싫었던 걸까,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서울과 부산에서 편지를 주고받는 영호(강하늘)와 소희(천우희).


  이후 영호와 (소연의 여동생이자 아픈 소연 대신 편지를 써서 보내는) 소희가 서로에 대한 마음을 키워나가는 과정도 사실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펜팔과 랜선연애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영호-소희의 경우 편지를 통해 관심 분야를 공유한 것도 아니고 서로의 고민을 상담한 것도 아니었다. 편지의 내용 자체는 현실에서 약간 붕 떠 있는, 감성 에세이집에 실린 글과 별 다를 바가 없어 보였는데 영호와 소희는 왜 그토록 편지에 몰입했던 걸까? 두 명 모두 편지 바깥의 삶이 나름대로 힘들었기 때문이었을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들의 현실도피성 로맨스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 이유가 있느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어지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가 너무 산만했다. 중심 서사는 분명 영호와 소희의 첫사랑 이야기인데 영호와 재수학원 여사친(이름을 잊어버렸다), 소희와 북웜의 이야기가 영화의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결말부에서 여사친은 영호에게 오로라 우산 선물을 받고 자신의 첫사랑(영호)을 완전히 떠나보내는데, 이 장면이 12월 31일에 비가 쏟아지는 마지막 장면보다 더 기억에 남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멀리 부산에서 영호의 얼굴도 모르는 채로 가끔씩 편지만 보내는 소희보다 영호의 곁에서 영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여사친에게 감정이입하는 것이 훨씬 더 쉬웠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을 빠져나올 당시에 내 머릿속을 지배하던 생각은 고작 "(영호랑 여사친이) 그날 밤에 진짜로 아무것도 안 했다고?" 였다. 오히려 영호가 같은 자리에서 십년이 넘도록 기다리든 말든 소희가 결국 서울로 갔는지, 영호와 소희가 결국 만났는지는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그들의 사랑에 몰입하기 어려웠으므로.


영호를 짝사랑하는 재수학원 여사친(강소라).


  영화에서의 비중과 별개로 영호의 여사친과 북웜이 영화에 등장한 이유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단순히 영호와 소희가 그들의 사랑과 별개로 각자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존재였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고작 그런 것이었다면 주변인물의 서사를 그 정도로 빌드업할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아니라면 설명 없이 이해하기 힘든 것이니 어떤 방향으로 생각하든지 간에 영화가 어수선했다는 결론만 나올 뿐이다.


  볼만했던 것이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강하늘의 연기력밖에 없었던 영화였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아닌 <비와 강하늘의 이야기>.


  평점은 3/10. 첫사랑 영화를 표방했지만 사실은 2000년대 초반의 도시 감성에 기댔을 뿐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완전히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은, 반쯤 열린 결말이 그야말로 최악이라 생각하는데 이 영화의 결말이 딱 그렇다. 영호와 소희가 만났는지 안 만났는지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으면서 에필로그 영상으로 "사실 그때 영호한테 손수건을 준 건 소연이 체육복을 대신 입고 간 소희였습니다" 라고 알려주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둘은 애초부터 이어질 운명이었다는 뜻이었을까? 무의미한 장치를 곳곳에 심어두고 설명은 제대로 해주지 않는, 어딘가 찜찜했던 로맨스 영화. 서사와 별개로 강하늘(영호), 천우희(소희), 강소라(여사친)의 연기는 훌륭했기에 3점을 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