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慣性)은 물리학의 기초를 이루는 개념들 중 하나로, 물체가 외부의 힘을 받지 않는 한 정지 또는 등속도 운동 상태를 지속하려는 성질이다. 쉽게 말해 멈춰 있었던 물체는 계속 멈춰 있으려고 하고, 움직이고 있었던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고 한다는 의미이다.
관성은 세상 만물이 가지고 있는 성질이다. 보편적인 물리 법칙이기에 이 우주 안에 존재하는 한 관성을 갖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우리가 먹다가 흘린 과자 부스러기부터 빛의 속도로 수억 년을 날아가도 닿을 수 없는 거대한 은하단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체는 관성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의 마음 속에도 관성이 존재한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머물러 있던 자리에 계속해서 머무르려고 한다. 예전부터 쭉 해오던 것들은 그것을 하는 상태가 곧 디폴트(default) 상태이기에 한순간에 멈추기가 어렵다. 다양한 예시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연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연애는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상대방이 나의 삶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늘어난다. 어느 순간부터는 상대방이 내 사소한 일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당연해져 버린다. 아침에 일어나면 서로 인사하는 것,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알려주는 것, 자기 전에 통화하며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는 것 등등. 오래 만난 연인들은 그 상태를 벗어나는 것이 두려워 상대방에 대한 마음이 식더라도 이별을 고하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에 하지 않던 것들은 그것을 하지 않는 상태가 디폴트이기 때문에 시작하는 것이 그닥 내키지 않는다. 여기에 해당하는 예시는 운동, 악기 연주, 공부, 싫어하는 음식 먹기 등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면 원래부터 해오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계속 해 나가게 된다. 내가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햄버거에 든 채소마저 빼고 먹을 만큼 채소를 싫어하다가 어쩔 수 없이 채소가 든 음식을 몇 번 먹은 뒤로는 계속 채소를 빼지 않고 먹게 된 것처럼. 흔히 시작이 반이라고들 하는데 정말로 그렇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이겨낼 수만 있다면 그 무언가에 재미를 붙이기란 그닥 어렵지 않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지 상태를 벗어나서 등속도 운동 상태에 진입할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요즘 관성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크게 느끼고 있다. 다른 일이 바빠 일시정지시켜뒀던 것들을 다시 시작하자니 몸이 덜 풀렸는지 너무 힘이 들어 자꾸만 정지 상태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운동도, 피아노 연습도, 독서도, 하다 못해 넷플릭스에서 좋아하는 시리즈를 보는 것조차도. 글쓰기도 예외가 아니다.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쓰지 않았더니 이제는 새로운 글을 쓰는 것이 꽤나 버거워졌다. 이 주제에 대해 써봐야지, 하는 것들은 머릿속을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데 그것들을 말로 풀어내서 원하는 모양의 글로 빚어내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다. 이전의 내가 대체 어떻게 글을 일주일에 한 편씩이나 썼던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예전에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 앉은 자리에서 금방 끝냈는데 지금은 그다지 길지 않은 이 글을 쓰면서도 몇 번을 멈추었는지 모르겠다. 이런 말을 하기는 부끄럽지만 나름대로의 "창작의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여건이 되는 한 계속해서 정기적으로 글을 써보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기에 글쓰기만큼은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연재 텀이 늘어나고 한 편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도 몇 배로 길어졌지만, 운동을 할 때 굳어있던 몸이 풀리려면 몸을 억지로라도 써야 하듯이 나 또한 이 과정을 일종의 스트레칭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다시 글쓰기가 수월해지는 그날을 묵묵히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