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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트 Mar 18. 2021

아픈 당신의 편에서, <브로드처치>

피해자의 입장, 여성 캐릭터 활용, 영상미.

내 앞에 앉은 상대의 눈이 커지고 미간이 좁아진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작게 벌린다.


드라마 피디 인턴을 하면서 현직 피디들에게 가장 많이 받았던 시선은 바로 이와 같은 '어쩌다가' 혹은 '어떻게'라는 시선이었다. 피디들은 인간에게 아주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그리고 내 인생 전반과 커리어에 대해서도, 취향에 대해서도.


"너는 대체 어쩌다가 그런 옛날 드라마를 봤었어?"


이전 글에서 다뤘던 30년이 조금 덜 된  스코틀랜드의 드라마 'Taking Over the Asylum'를 봤다고 하면 많은 드라마 피디들-인턴이었던 나의 선배들-은 이런 질문을 했다. 나는 아직 20대이니, 당연한 의문이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좋아하는 배우가 나와서요."


덕후라면 금방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연어와 같이 시간을 거스르는 덕후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일례로 나는 2014년에 락페스티벌에 놀러 갔다가 밴드 넬을 보고는 덕통사고를 당했다. 넬의 노래는 물론, 밴드 음악, 락 음악을 파던 나는 결국 비틀즈까지 올라갔다. 그래서 나에게 관심 가지게 된 배우의 필모를 훑고 관심 있는 필모를 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구글에 그의 이름을 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사진.

"배우 누구 좋아하는데?"

"데이비드 테넌트요."


무려 지난 세기에 만들어진 드라마를 보도록 나를 이끈 것은 인생 드라마 '브로드처치'에 나오는 스코티쉬 배우 데이비드 테넌트였다. 사실 나는 배우보다는 캐릭터와 캐릭터의 이야기, 드라마 전체가 전하는 메시지에 더 빠졌었다.


사실 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주인공에 감정 이입을 하는 일이 드물다. 관조적 시선으로, 감정 이입을 하지 않으면 너무 건조하고 정 없지 않느냐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개연성, 극이 하고자하는 말, 메시지 전달력, 화면의 구도, 영상미가 납득이 되면 누구보다 심하게 몰입하며 본다. 나에게는 브로드처치가 그런 드라마, 예외적인 드라마였다.


"데이비드 테넌트가 제 인생 드라마에 나왔어서요, 그래서 필모 몇 개 봤어요."

"인생 드라마가 뭐라고 그랬더라?"

"브로드처치요. 넷플릭스에도 있어요."


드라마 피디들은 모든 드라마를 봤고, 좋아할 것이라는 막연한 착각이 있었다. 모두가 나와 같을 것이라는 흔한 착각에 더해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이리라. 함께 덕심을 나눌 것이라 잔뜩 기대했던 나에게 돌아온 드라마 피디들의 대답은 거의 비슷했다.


"아... 들어는 봤지. 근데 안 봤어. 그게 왜 좋았니?"



* 감독, 각본: 크리스 칩널

시즌 1, ep.1의 오프닝


파도 소리가 끊이지 않는 한적한 시골 바다 마을. 고만고만한 작은 집들이 있고 이웃들이 서로를 잘 알고 있으며, 범죄율이 매우 낮은 평화로운 마을 브로드처치. 2013년에 개봉해 2017년까지 방영된, 시즌 3까지 있는 이 영국 드라마는 그렇게 시작한다.


엘리 밀러(올리비아 콜먼)은 브로드처치의 경찰서에 근무한다. 이번 휴가만 끝나고 돌아오면 경위로 진급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경위 자리를 빼앗아버린 사람이 있다. 런던에서 좌천되어 시골로 발령 온 알렉 하디(데이비드 테넌트). 과거에 어떤 사건이 있었던 것인지, 성격도 더럽고 무신경한 말을 툭툭 던지는 하디 경위는 밀러 경사와 친해질 생각이 없어 보인다. 밀러 경사도 자신의 자리를 빼앗은 사람과 잘 지낼 생각은 없다. 그런 둘이 만나자마자 사건이 일어난다. 어린 소년 대니의 시신이 바닷가에서 발견되었다.


닥터 후로 유명한 데이비드 테넌트가 연기하는 알렉 하디(왼),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페이버릿'으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올리비아 콜먼이 연기하는 엘리 밀러(오)


사실 드라마의 초입부만 돌아보면 내용이 새로울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이 드라마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시선이다. 소수자, 약자, 피해자의 심리, 그 아픔으로 무너지는 삶을 들여다본다. 많은 범죄물에서는 가해자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나쁜 놈도 사연이 있었다며 과거를 풀어놓으며 학대를 당해서 학대를 대물림했다던가, 애정결핍이라서 비뚤어졌다던가, 하는 경우가 많은데, 브로드처치는 가해자의 동기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범죄 추리 수사물에서는 흔하지 않은 시선이다. 특별한 이 시선을 통해 만들어진 스토리는 거북하지 않고, 약자를 감싸고, 기존 범죄물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것들을 보여준다.


(* 이렇게 말하면 드라마 자체가 수사물 같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기존의 추리물과 다른 것은 맞다. 그러나 추리 수사물의 정석대로 두 형사 콤비는 범인을 추리하고, 신문하고, 추격하기도 한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의심스럽다. 참고로 배우들의 대부분이 본인들도 범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연기가 더욱 탁월하게 느껴지고, 시청자들이 추리하는 재미도 배가된다.)



살해당한 아이의 시신. 아이의 모습은 그저 아이의 모습일 뿐, 카메라는 잔인함을 강조하거나 시신을 성적대상화하지 않는다.


대니의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 카메라가 주목하는 것은 비단 시신의 상태라던가 경찰들의 표정, 동네 사람들의 충격만이 아니다. 대니 어머니 베스의 심리 묘사가 매우 세심하게 펼쳐진다. 학교 체육회날 아침, 베스는 대니가 아침 일찍 가족들이 잠에서 일어나기 전에 학교에 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체육회에 참여해 아들 대니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아들을 찾으러 간다. 소년의 시신이 바닷가 절벽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맑은 날, 밝은 햇살. 사망 사건으로 인해 차가 막히는 도로를 운전하던 베스는 결국 차를 버리고 전속력으로 절벽을 향해 달린다. 뿌연 화면과 베스를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 어느 누구도 대화를 하지 않지만 우리는 베스의 심리를 알 수 있다.


도로를 달리는 베스.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아니, 맞을 것 같아, 맞아, 확인하기 전에는 확실하지 않지, 맞으면 어떡하지, 아니어야 할텐데.'


이후로도 드라마는 계속해서 대니 가족, 유가족의 심리를 따라간다. 슬퍼서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다가도 다시 살아가고자 하면서, 동시에 죽은 아이에게 죄책감도 느낀다. 서로에게 화를 내다가도 서로를 의지한다. 끈질기게 범인을 찾으려 경찰에게 묻고 과거를 기억해내고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동시에, 살인 사건으로 마을 주민들의 생활도 조금씩 어그러진다. 사람들은 서로 관계를 맺고 산다. 누군가가 비극적인 사건을 당했을 때, 그 사람과 그 가족만 타격을 입는 것이 아니다. 연결된 모두의 마음이 조금씩 무너진다. 브로드처치는 공동체가 일그러지는 모습과 다시 연대하는 모습을 모두 보여준다.


사건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 난 후, 죽은 대니를 추모하기 위해 함께 횃불을 든 마을 사람들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유가족의 마음, 주변인들과의 무너지는 관계를 주목한 작품은 흔하지 않다. 게다가 내가 보았던 수많은 작품 속 살인 사건 피해자는 여성, 여자아이였고 그 시신은 섹슈얼한 은유를 품고 있었다. 카메라가 몸을 훑는다거나, 그리스로마 시대 조각상처럼 아주 아름다운 상태로 죽어있었다거나. 게다가 그들에게는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있더라도 유가족들은 오열, 분노, 슬픔을 폭발시키는 모습으로만 묘사된다. 단면적인 그 모습은 사회에서 바라는 전형적인 '피해자다움'이었다. 물론 직관적으로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아픔을 이해하기에는 용이하다. 그렇지만 이미 우리는 수 십 번 그 전형적인 모습을 매체를 통해 바라봤다. 이제는 오열과 눈물 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밥을 먹고 길을 걷는지 보여줄 때가 되었다.


나는 아픔을 겪었지만 남은 가족들끼리 서로를 탓하면서 미워하기도 하지만 함께 웃기도 하는 브로드처치 속 유가족들이 더욱 현실에 있을 법한 진짜 사람들 같았다. 힘든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드라마를 본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현실적이면서도 응원이 되는 드라마는 바로 이와 같은 드라마라 생각한다. 마을 전체에 불신이 퍼지고 서로를 의심하고 탓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상황이지만 피해자들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시청자들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집안의 막내를 잃은 대니 가족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시즌1에서 이들의 충격과 슬픔, 말 못할 비밀들이 주목 받았다면, 시즌2에서는 사건 이후의 수습, 재판 등이 등장하고 남주인공 알렉 하디의 과거 사건이 밝혀진다. 시즌3에서 대니 가족들은 조연으로만 나오는데, 여전히 아픔을 극복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하는 모습이 비춰진다. 슬프기도 하지만, 동시에 소소하게 행복도 느끼는 ‘피해자다운 피해자’가 아니라 실제 삶을 사는 인간으로서의 피해자의 모습으로.


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었던 베스(왼)은 성폭행의 상처로 고통 받는 트리쉬(오)를 안정시키고 상담해준다.


시즌1과 2에서는 대니의 사건이 주된 흐름이었다면 시즌3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사건이 시작된다. 바로 ‘중년 여성’ 트리쉬에 대한 성폭행 사건이다. 일단 소재 자체부터 충격이었다. 기존의 드라마에서 본 성폭행 사건은 항상 젊은 여성에 대한 것들뿐이었다. 그리고 그 젊은 여성들은 대부분 짙은 화장, 예쁜 외모, 섹스어필을 하는 복장을 입은 경우가 많았다. 젊은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매우 많지만, 젊은 여성들만이 성폭행을 당하지는 않는다. 나이든 여성의 성폭행 사건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뤄지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역대 영화들에서 여성이 매체에서 다뤄지는 방식을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피해자일지라도 여성은 매체 속에서 성적 대상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여성을 인간이 아닌 대상으로만 여기는 시선 때문에 젊은 여성은 성적 대상이 되고, 젊지 않은 여성은 아예 시야 밖으로 벗어나버린다. 인간으로서의 여성은 없다.



여성을 대상화하지 않으면서 중년 여성에 대한 성폭행 사건을 훌륭하게 다룬 시즌 3을 보면서 브로드처치가 기존의 드라마와 크게 달랐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시즌을 통틀어 브로드처치에서는 여성 캐릭터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 게다가 그 여성 캐릭터들은 아주 다양하다. 상냥함, 엄격함, 정의로움, 부도덕함, 너그러움, 상대의 약점을 잡아 공격하는 공격성, 망설임, 결단력. 여러 여성 캐릭터들은 각양각색의 성격을 지녔다. 실제 여성들이 그러하듯.


왼쪽부터 경찰서장 샌드라, 지역신문 편집장 매기, 도시 언론사 기자 카렌.


주인공 콤비 알렉 하디 경위와 엘리 밀러 경사의 상사인 서장은 샌드라, 여성이다. 브로드처치 지역신문 ‘브로드처치 에코’의 편집장 매기, 여성이다. 판매부수를 올리려고 하지만 동시에 기자의 양심은 지킨다. 전문직에 양심적인 여성만 나오느냐? 아니다. 브로드처치 살인 사건에 대한 자극적인 기사를 쓰려고 도시에서 와 유가족들을 들쑤시는 기자, 한국에서였다면 단박에 기레기라 불릴법한 기자인 카렌도 여성이다. 살인 사건에 대한 재판을 담당하는 피해자 측 변호인 조슬린도 여성, 가해자 측 변호인 샤론도 여성이다. 게다가 불륜하는 여성도 나오고, 자신이 믿던 남성에게 뒷통수를 맞은 여성도 나오고, 나이 불문 외모 불문 온갖 여성이 다 나온다. 실제 여성들이 그러하듯. 


하도 다양한 여성들이 나오다보니 이제 이들의 특성은 '여성' 캐릭터가 아니다. 시청자들은 그들을 여성이 아니라 개개인의 인성, 사연, 태도, 마음을 바라보게 된다.

피해자 측 변호인 조슬린(왼), 가해자 측 변호인 샤론(오)


이렇게 브로드처치를 보다보면 여성들이 ‘여성이라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여성들 각각의 성격과 사연 때문에 저런 행동을 하는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사실 이건 늘 남성 캐릭터에게 허용했던 방식의 감상법이었다.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서는 매체에 비춰지는 여성의 직업과 외모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태도도 중요하다. ‘여성’이라는 것이 그 사람의 성격이나 신념보다 덜 중요한 요소로 보이도록 다양한 여성이 등장하는 것, 그것이 여성을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미디어의 힘이 아닐까 한다.



브로드처치가 여성주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훌륭한 서사라면, 두 주인공 알렉 하디와 엘리 밀러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둘의 서사는 좀 더 나은 사람이 좀 덜 나은 사람을 이끌어주는 것이 아니고, 서로가 서로에게서 배우며 성장하는 서사이다.


“나도 남자지만, 난 그런 남자 새끼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

알렉 하디가 성폭행범들에게 하는 소리다. 그는 바른 남성의 표본처럼 보인다. 전형적인 외골수 형사인 하디는 남성 연대에 끼지 못한다. (사실 어떤 공동체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 같긴 하지만...) 친구도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게 이상하지 않다. 아마 폭력으로 서열을 정하고 여성을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 부류의 남성들과는 친구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가능케 하는 대사가 많다. 딸을 괴롭히는 남학생들에게 거시기를 잘라 버린다고 말해버린다거나... 그 외에도 심장병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겼음에도 자신이 수습하지 못한 사건을 해결하려 분투하는 모습 속에서 그의 정의로운 기질을 확인할 수 있다. 말 못할 과거가 있는 정의로운 경찰,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과거의 사건을 속죄하기 위해 지금의 사건에 매달리는 경찰, 그렇게까지 너무 열심히 일하다가 심장병에 시달리는 경찰.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이해할 필요 없어요. 그런 놈들을 전부 잡아넣으면 그만이에요.”

브로드처치는 여성 성장 서사이기도 하다. 가정주부 남편을 둔 엘리는 사건들을 거치며 성장한다. 엘리는 시즌 1, 2에서 난생 처음 살인 사건을 해결하며 큰 도시에서 온 하디에게 수사 방법을 배운다. 시즌1에서 기자 브리핑도 못해서 어버버하던 엘리는 나중에 플래쉬라이트를 받으면서도 눈도 깜짝하지 않고 훌륭하게 브리핑을 끝낸다. 시즌2에서는 하디의 사건을 해결하는 신선한 시각을 제공한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주소재인 시즌3에서는 여성 경찰이기 때문에 상사인 하디보다 피해자에게서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고, 더 깊은 추리를 펼쳐낸다. 처음에는 곧잘 상사 하디의 말에 쭈그리가 되던 엘리는 나중에는 하디를 쭈그리로 만들기도 한다.


둘은 서로를 통해 성장한다. 하디는 엘리에게서 공감과 지지를 표현하는 방법을, 엘리는 하디에게서 전문성과 냉철함을 배운다. 중년의 남녀가 인간 대 인간으로서 진정성을 나누고 성장하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충분히 바른 어른', '이미 어른이지만 더 성장하는 어른', '우리가 바라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빡세게 좋은 점들을 마구마구 집어냈으니 이제 조금은 느긋한 호흡을 가져보려 한다. 브로드처치의 영상미는 최고다.


새벽인지 저녁인지 모를 시간의 절벽


촬영 장소는 웨스트 베이.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지금도 풍화로 지속적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거대한 절벽이 있다. 아슬아슬하고 위태롭지만 아름다룬,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담아내는 촬영지가 아니었을까.


차가운 저녁 노을


시간과 빛을 효과적으로 담아낸 화면도 인상 깊다. 새벽의 푸른 빛, 저녁의 붉은 빛, 낮의 밝은 노란색이 그대로 녹아있는 장면들을 보면, 절로 ‘저기 한 번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 실내의 푸르스름한 조명과 실외의 자연광, 어둠 속에서 켜지는 불빛. 역시 화면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보는 것이 낫다. 몇몇 사진을 첨부하겠다.


한낮의 창백하면서도 노란 햇살
저녁. 하디 경위의 집 뒤에는 작은 놀이공원이 있어 소음 공해가 있지만... 집에 가는 길은 예쁘다.
죽은 아들 대니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횃불을 들며 추모하자 베스는 눈물을 글썽인다.



... 사실 나는 하루 종일이라도 브로드처치에 대해 떠들 수 있지만 내 말을 듣는 것보다 한 명이라도 더 이 드라마를 보는 게 나을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그래서 실컷 떠들었던 세 가지를 꼽아 이만 정리하려고 한다. 드라마의 서사와 카메라 워크가 모두 가해자가 아닌 약자와 피해자의 편에 서 있다는 사실, 여성 캐릭터의 활용 방식, 영상미.


* 넷플릭스에 시즌1과 2가 있다. 곧 3월에 방영 종료라고 하니 정주행을 추천 드린다. 시즌 하나에 8화, 그리고 한 화에 45분 즈음이니 그리 어렵지 않게 정주행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로 충격적으로 못 만든 이 포스터들로 드라마의 내용을 짐작하면 안 된다.........





“근데 나는 누가 죽고 그런 범죄물은 별로라. 사실 너도 모든 걸 볼 필요는 없어.”

“그...렇죠.”

“하하, 다른 건 좋아하는 거 없니?”

“뭐 지금 딱 생각나는 건... 없는데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즐기는 일은 늘 힘들다. 다른 이와 내가 같을 것이라는 바보 같은 착각이 깨질 때면 조금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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