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의그림이야기
임풍면은 정물화, 풍경화, 인물화를 모두 그렸다. 그중에서 인물화가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화가는 특히 여성인물을 집중적으로 그렸다. 현대여성, 고전복장의 전통여성, 누드화, 경극여성인물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중국 전통 여성인물화를 ‘사녀화仕女画’라고 부르는데, 임풍면의 사녀화는 중국 전통의 것과는 닮은듯하지만 또 어딘가 많이 다르다. 그림을 한 번 살펴보자.
그 주된 이유는 바로 ‘형태’의 차이에 있다. 그의 그림속 여성들은 정형화된 형상을 가지고 있다. 가늘고 긴 눈썹, 쭉 찢어진 눈, 길고 오똑한코, 앵두같은 도톰하고 앙증맞은 입술, 뾰족한 턱은 피카소의 입체주의나 독일표현주의, 또 모딜리아니의 여성인물화와 많은 점이 비슷하다. 화가는 실제로 이상의 예술사조를 동경했고 청년시절 많은 부분 예술적 영감을 받았다고 스스로 자서전에서 말했다.
화가는 또한 중국 민간예술에서 많은부분 예술적 영감을 받았다. 도자기 회화에 나타난 필선의 자유로움과 곡선의 ‘미’를 그의 여성인물의 윤곽선에 반영했다. 단순하면서도 기하학적인 종이접기공예와 그림자극 인형의 형태는 그의 여성인물의 전형적인 형상이 되었다. 더불어 칠기공예, 한나라시대의 화상전등도 그에게 많은 예술적 영향을 끼쳤다. 화가는 중국의 민간전통예술과 서양현대회화의 형태미를 적절하게 조합하고 섞어 독창적인 여성인물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그의 수많은 여성인물들을 보다보면 어딘지 모르게 우수에 잠긴듯한 미묘한 슬픔을 감지할 수 있다. 임풍면 선생의 죽마고우이자 그와 예술인생을 늘 함께 했던 친구 미술사학자 임문정 선생은 “임풍면 예술창작의 가장 큰 동기는 바로 ‘고통’이다.”라고 말했다. 긍정적이고 유쾌해보이는 임풍면 선생의 내면 깊은곳에는 서글픔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들과 세차례나 이별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첫번째 여인과의 이별은 그의 어린시절로 거슬러 올라간간다. 어린시절 임풍면의 어머니는 봉건전통사회에서는 매우 드문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이었다. 여성의 불합리한 대우와 남성권위주의를 풍자하는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점차 어머니를 따르는 부녀자들이 늘어났고, 마을 여성들에겐 점차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그러나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남성권위주의적인 청나라말기, 소수민족이라는 조그마한 공동체 안에서 어머니의 이러한 행동은 용납될수없었다. 마을 남자들은 어머니에게 여러차례 경고를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그만두지 않았고 결국 마을로부터 추방당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을 어린 임풍면은 모두 지켜보았다. 사랑하는 어머니와의 생이별을 하게된 것이다. 6살의 어린 나이였던 그는 그 이후로 평생 어머니를 보지못하게 된다. 이 그림을 한 번 살펴보자.
이 그림은 화가가 40년대 이후 상해에 머물며 전통희극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중 하나이다. <보련등>이라는 이 작품은 중국 전설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보련등은 옥황상제의 셋째딸 삼성모가 천계의 보물인 ‘보련등’을 훔쳐 인간남자와 사랑의 도피를 하는 내용이다. 그녀는 인간남편 사이에서 침향이라는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오빠 이랑진군에게 발각되고, 보련등을 빼앗기게 된다. 화산에 봉인되고 만다. 사랑하는 아들과 생이별 또한 하게 된다.침향은 어머니를 구하기 위한 일념으로 긴긴 시간 스승 손오공의 고된 수련을 견뎌내고 마침내 어머니를 구해 재회를 하게된다는 중국 전설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화가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적극 반영하여 제작한것으로 여겨진다. 보련등이라는 전설의 이야기를 통해서라도 간접적으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달래려 한것이 아닐까?
두번째 여인은 프랑스 유학시절 첫번째 부인 엘리제다. 프랑스 유학을 마친 임풍면은 잠시 독일로 건너가게 된다. 그곳에서 첫번째 부인 엘리제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된다.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그녀는 늘 임풍면의 곁에서 피아노를 연주해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음악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어 예술의 깊이가 더 깊어질수있게끔 도와 주었다. 둘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들에겐 첫번째 아이가 생겼다.하지만 그녀는 아이의 출산과 동시에 세상을 뜨게 된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갓 태어난 아이마저 세상을 뜨고만다.
그리고 몇년뒤 친구의 소개로 조각을 전공했던 프랑스여인과 두번째 결혼을 하게된다. 그녀와 결혼한뒤 임풍면의 딸 디나가 태어나게 된다. 그는 중국으로 돌아와 교직생활과 창작활동에 집중하며 행복한 가정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곧 중일전쟁이 발발한다. 그리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임풍면은 홀로 교직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해 충칭으로 피난을 가게 된다. 아내와 딸은 상해에서 지인의 집에 신세를 지며 살아간다. 전쟁이 끝난후로도 아내와 딸은 또 생계를 이유로 브라질로 이민을 가기로 하고 임풍면은 고국에 남아 창작에 전념하기로한다. 그 이후로 그들은 편지로 연락을 가끔하며 지내지만, 임풍면은 거의 노년을 홀로 살아간다.
이렇듯 그의 삶은 늘 외로움이 가득했다. 특히 사랑하는 여인들과의 이별, 그들의 부재는 그의 작품속 여성들이 지닌 슬픈 표정으로 묻어나왔다. 밝은 색채로도, 경쾌하고 속도감있는 붓의 획으로도, 작가의 깊은 슬픔을 가리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임풍면은 상해와 홍콩에 머물며 90살이라는 늦은 나이까지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창작에 임한다. 그는 동양과 서양 예술적통합이라는 큰 숙제를 평생이라는 시간을 바쳐 풀어내려했다. 온갖 시련과 풍파에도 좌절하지않고 끊임없이 창작에 매달린 결과 그는 중국근현대예술의 거장이 되었다.
林风眠 《林风眠全集》中国青年出版社 2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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