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정리하는데 필요한 시간, 그건 축복이었다!
절절하게 아니 처절하게 울고 있었다. "아빠가 보고 싶어" 꿈인데도 마음이 아려서 눈물을 훔쳤다. 잠에서 깨어난 후 아빠가 보고 싶지만 꿈에서처럼 그렇게까지 아빠가 보고 싶지는 않은 것 같은데 왜 그런 꿈을 꿨을까 의아했다. 내 무의식인가. 아빠가 이렇게까지 애절하게 보고 싶은데 아닌 척 마음을 덮고 있는 건가? 뭐지? 의미가 있나? 떨쳐 내려했으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20년 전쯤 돌아가신 친할머니까지 갔다.
할머니는 자식들 생각에 죽음을 몇 번이나 유예하신 분이다. 어떻게? 저승사자와 여러 번 목숨을 걸고 싸웠다. 할머니 나이 아흔 살쯤 "저승사자가 우리 집에 왔더라고 그래서 내가 내년 봄에 꽃 필 때 오라고 했어" 그러셨다. "저승사자가 돌아갔어요?" 물었더니 "그래, 돌아갔어" 하셨다. "다행이다"하고 우린 그저 웃었다.
돌아갔던 저승사자는 정말 다음 해 봄에 할머니에게 다시 찾아왔다. 할머니는 계단에서 저승사자를 발로 밀어버렸다고 했다. 보통 기가 아니었던 할머니는 그러고도 남는 사람이지... '암, 우리 할머니라면 그럴 수 있어' 그다음 해부터는 본격 몸싸움을 하기 시작하셨다.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만은 아니었다. 낮이든 밤이든, 우리가 있는 곳이나 없는 곳에서 할머니는 누군가와 종종 싸우셨다. "가!, 아직은 때가 아니야"하고 얘기를 하셨다.
할머니의 그런 모습은 무서웠다.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할머니는 허공에 대고 화를 내며 손으로 저항하며 싸우셨다. 그러다 몇 번은 정신을 놓으셔서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 산소호흡기를 하신 적도 있다. 가족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전국에서 몇 번이나 모였다. 그러다가도 산소호흡기를 스스로 떼며 "숨 쉬기 힘들게 누가 이런 걸 씌워놓았냐"며 호통치며 일어나셨다.
그런 할머니도 시간이 지나면서 기력이 쇠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점점 기억도 사라져 갔다. 어떻게 보면 최근의 삶부터 차례로 지워지며 본래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돌아가신 해에는 가족들을 알아보지 못했고 어릴 적 소녀로 돌아갔다. 주무시다가도 일어나 아빠가 앉아 있으면 놀라면서 이불을 조선시대 여인네들 장옷처럼 얼굴에 덮어쓰고 "방에 어떻게..." 하며 누구를 불렀다. 아마도 어릴 때 유모를 찾았던 것 같다. 나에게도 마당에 나가보라며 그 공간이 어릴 때 자신의 집인 것으로 그 기억에 머무르는 사람처럼 그렇게 말하셨다.
할머니는 사라지는 기억 속에서 그렇게 저승사자와 끝까지 싸우다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는 날, 당신의 죽음을 예감하셨는지 잠깐 정신이 돌아오셨다. 마지막 말씀도 자식들 걱정뿐이었다 "형제끼리 우애 좋게 지내고, 첫째를 아버지처럼 생각하며 말을 따르라"라고 유언하시고 당신 집에서 자식들 앞에서 숨을 거두셨다. 숨을 한 번 크게 내 몰 아쉬고는 숨이 멎었다. 그때는 참 허무했다. 결국 이렇게 가실 꺼면서 왜 그렇게 싸우셨을까. 어린 내 눈에는 그 모습이 그렇게 좋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삶에 악착같아 보인다고 해야 하나, 뭔가 멋있어 보이지 않았다.
친할머니 죽음 이후 여러 사람의 죽음을 보게 되면서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과정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저승사자와 싸울 수도 있고, 자신의 기억을 정리하며 시간을 소멸해 나가고 당신의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 앞에서 유언도 하며 돌아가신 건 축복이었다. 얼마나 복이 많은 죽음이며 당신도 가족들도 준비된 생의 마무리인지... 많은 죽음을 맞이하며 알게 되었다.
내가 꿈에서 아빠를 애절하게 보고 싶어 했던 건, 그리고 일어나서 그렇게까지 보고 싶나 의아해했던 건 아무 인사도 하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아빠와 이별했기 때문이 아닐까. 밤새 안녕했던 그 여운이 오래 남아 가끔은 이렇게 오열하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찾는 건 아닐까 싶다. 할머니의 죽음과는 거꾸로 부모의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의 시간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 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래... 아빠에게도 나에게도 이별을 맞이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