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습관, 약, 운동으로도 안된다면... 마음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육아를 하면서 역류성 식도염이 생겼다. 어릴 때부터 소화기능이 약했던 나는 배앓이도 많이 하고 자주 체했다. 직장생활을 하고부터는 위경련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육아를 하면서 불규칙적인 습관과 스트레스가 문에였는지 산이 역류하는 증상이 시작됐다. 아이를 보느라 끼니를 놓치기도 하고 아이를 재우고는 또 배가 고파 허겁지겁 야식을 먹기도 했다. 거기다 아이 키우는 3년은 잠을 푹 잔 적이 없었다. 새벽에 몇 번씩 깨는 아이를 다독이다 보면 잠이 깨서는 다시 잠을 못 들기도 했다. 체력적인 소모도 많고, 육아 스트레스가 컸던 것 같다.
처음에는 위산이 역류해서 구토를 할 것 같은 울렁거림에 헛구역질을 자주 했다. 그러다 점점 자려고 누우면 위산이 역류해서 속이 쓰렸다. 목에 늘 이물질이 걸린 것 같고 갑작스럽게 기침을 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불면증이 왔다. 때때로 가슴이 타는 듯한 통증이 있었고 속을 긁는 느낌도 받았다. 산이 역류하지 못하도록 앉아서 잘 때도 많았다. 위가 움직이지 않고, 불면증이 시작되자 두통도 심해졌다. 안압이 높아져서 눈알이 빠질 것 같은 느낌의 편두통이 늘 나를 압박했다. 그리고 생리와 배란 기간에 이런 증상이 두드러지면서 골반과 다리 저림, 몸살과 같은 근육통이 함께 와서 일어서지를 못했다. 일상 생활이 어려울 정도였다.
아이 키우는 5년에 걸쳐 상태가 점점 심해졌다. 안 가본 병원이 없었다. 동네 가정의학과, 한의원, 내과부터 신경내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정신과까지 가서 상담을 받았다. 가정의학과와 내과에서 주는 역류성 식도염 약을 처방받아먹었고, 정형외과에서 목, 척추, 골반이 틀어져 있다며 치료를 권했다. 일주일에 한 번 도수 치료를 1년 정도 받았다. 뇌 혈류 검사, 뇌 CT도 찍어보고 이상이 없음도 확인했다. 정신과에 처방해주는 약이 맞지 않아 몽롱하게 하루를 보낸 적도 있다. 한의원도 갔다. 주변에 아는 한의사부터 유명하다는 한의원까지 여러 명의 한의사를 만나고 약을 지어먹었다. 침과 뜸을 맞고, 식단관리를 하고 요가, 걷기와 같은 운동을 하며 지냈다. 순간순간 약이나 치료에 효과가 있을 뿐, 근본적으로 나아지지 않았다.
동의보감에 보면 만병의 근원이 마음이라고 한 구절이 있다. 물리적 검사로 크게 병명이 없던 나에게 대다수 의사들도 그렇게 해석했고, 나 역시도 마음에 원인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아이가 5살이 되고 여유가 생기면서 틈틈이 혼자 명상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내 마음의 여러 가지를 지켜봤다. 당연히 인프라 없는 부암동이라는 동네에서 혼자 육아하는 상황이 힘들기는 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오랫동안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아픈 원인이 뭘까 궁금했다. 꽤 오랜 시간을 스스로 지켜보며 무의식으로 깊이깊이 들어가고 그랬다. 그러다 통증의 가장 큰 원인이 다름 아닌 외로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세상과 하나가 아닌 순간의 외로움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외로움은 내 인생 전반에 걸쳐 영향을 줄 정도로 큰 주제였다. 타고난 기질도 있겠지만 성장 과정에서 더 강화된 외로움이었다. 청소년기를 지나고 성인 되어도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으로 인한 공허함 때문에 사람에 의존하기도 하고, 명상도 해보는 등 여러 가지를 갈구해오며 살았다. 그 무언가가 늘 나를 쓸쓸하게 만들었다. 그런 마음이 강하게 들 때마다 소화기능이 굳고 생각이 많아지고 몸의 통증이 왔다. 홀로 육아를 하며 몸부림치는 동안 그 외로움이 가진 마음 덩어리는 강력하게 발동했던 것 같다. 내 몸도 반응을 했을 것이고, 그것은 통증으로 신호를 보내왔을 것이다.
그 시간을 되돌아보며 스스로 묻고 구했을 때, 그 외로움에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나였음을 알게 됐다. 나를 똑 닮은 아이를 품어주는 과정을 겪으며 어린 시절의 나를 안아주게 되면서 깨닫게 됐다. 사회화되어 잊었던 날것의 나를 아이를 보며 마주하게 됐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나의 어린 시절을 품어주게 된 것이다. 늘 이상이 높아 '더 잘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인정해 주지 못하는 내가 나를 소외시키고 있었음을... 심지어 명상을 할 때 조차도, 아이를 육아할 때 조차도 나를 채찍질하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더 잘해야 한다'라고 스스로를 판단하고 평가해 왔던 것 같다. 그래서 이토록 외로움에 사무쳤음을..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고 좀 안아줬어도 괜찮을 텐데... 왜 그걸 못 했을까. 살아왔던 인생의 여러 가지가 퍼즐 조각처럼 맞춰졌다. 꽤 오랫동안 그 마음의 뿌리에 연결된 것들이 정리가 되었다.
작년 가을, 찬바람이 불면서 찾아왔던 '외롭다', '쓸쓸하다'는 감정은 역류성 식도염을 불러왔다. 꽤 오래갔다. 한의원에서 가서 침을 맞고 기운을 차리면서 스스로를 다독였다. '뭐가 도대체 외롭다는 건가',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는데...' 스스로를 다그치며 습관처럼 나를 소외시켰던 그 '나'를 불러 세웠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라고 '지금 상황이 힘들다, 외롭다고 느낄 수 있다'라고 스스로를 꼭 안아줬다. 토닥거려줬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역류성 식도염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누워서 잠도 잘 자고, 오른쪽으로 누워도 산이 역류하지 않았다. 식단 조절을 하며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도 못 먹기도 하고 먹지 않으며 생활했는데 아무거나 실컷 먹으며 지냈다. 그래도 될 것 같았다. 김치찌개만 잘 못 먹어도 산이 역류해서 잠을 못 잤던 내가 아무렇지도 않았다.
웃기지 않는가. 마음이 일으키는 몸의 반응들이. 명상을 하며 마음과 몸이 하나라 여러가지 체험을 하긴 해왔다. 이건 또 다른 경험이었다. 지난 몇 년간, 아니 평생에 걸쳐 뭘 안 먹고, 무엇을 먹고, 어떻게 생활 습관을 고치고 이런 문제보다도 마음의 습관 하나 바꿔 먹으니 속이 훨씬 편해졌다. 그렇다고 나의 역류성 식도염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언제든지 습관처럼 마음이 일어나면, 또 몸이 반응하는 조건이 되면 찾아올 친구다. 그럴 때는 역류성 식도염마저 끌어안아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또 지나가겠지. 생각한다. 다행히 작년 연말 역류성 식도염의 원인을 알고 스스로를 품어준 이후에는 아무거나 먹어도 산이 역류하거나 잠을 못 자거나 고생해 본 적은 없다. 두통이나 근육통의 통증도 거의 사라졌다. 신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