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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인철 Feb 08. 2021

a LONELY BASEBALL PLAYER -2


땅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움직이며 빛을 보여주고 바람을 불어주고 어둠을 보여준다. 끝없이 길고 곧은길 양 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붉고 마른땅은 아무것도 품지 못했다. 오랫동안 비 한 방울 맞지 못하고 꽃 한 송이 피워내지 못한 마른땅에는 몇 마리 토끼들이 뛰놀다 이내 굴 속으로 사라졌다. 아주 멀리서 바람이 몰려와 허망한 대지 위의 먼지를 일으켜 세우자 하늘과 땅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문도는 그 길을 걷고 있었다. 멀리 지평선이 보인다. 해가 뜨고 그림자가 길어지고 땅거미가 지기 바로 전 태양은 핏물 같은 붉은빛을 게워낸다. 문도는 멈춰서 사방을 둘러본다. 떠도는 바람이 문도를 스쳐 지나간다. 어둠이 스며든다. 문도의 몸이 사라진다. 보이는 세상의 끝의 시작점에 소리가 존재한다. 소리만 가득하다. 문도는 이미 길을 잃었다. 땅이 움직인다. 빛이 사라진다. 바람이 멈춘다. 숨이 멈춘다. 모든 것이 멈추고 모든 것이 어둠에 휩싸여 사라진다. 멀리서 비 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띵.

‘괜찮냐’ 

띵.

‘응 괜찮음’

띵.

‘병원 가봐라’

띵.

‘응. 야구는’

띵.

‘꺼져’

띵.

‘넌 괜찮음?’

띵.

‘몰라’

띵.

‘수정이는’

띵.

‘몰라 나도’

띵.

‘신중하게 생각해라 임신중’

띵.

‘ㅗ’




문도는 베개 밑으로 휴대전화를 찔러 넣고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빨간 핏물에 딸려 나온 작고 푸르른 나뭇잎과 신중의 숱 없는 눈썹과 수정의 뱃속에 들어앉은 눈썹 없는 태아의 이야기가 긴 꿈속의 짧은 이야기 같았다. 

배가 고팠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 지 벌써 며칠째다. 햄버거, 피자, 양념치킨, 자장면, 삼겹살, 족발, 냉면, 볶음밥. 손에 잡히는 대로 입에 넣어 오랫동안 씹고 또 씹고 싶었다.

“엄마! 배고픈데 뭐 시켜먹으면…” 엄마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도를 가로막았다.

“시켜먹긴 뭘 시켜먹어? 김치랑 반찬 있으니까 꺼내서 먹어.”

“맛있는 거 먹고 싶은데. 뭔가 좀…” 다시 한번 가로채기.

“밥통에 밥 있어.”


엄마는 채소만 좋아했다. 싸늘하고 풀 비린내 나는 엄마의 냉장고를 열고 싶지 않았다. 배추김치, 오이김치, 동치미, 무절임, 숙주나물 무침, 오이무침, 마늘장아찌, 두부조림, 콩나물 무침, 시장에 파는 모든 채소가 반찬이 되어 냉장고에 저장됐다. 

문도의 혀는 다른 것에 몰두하고 싶었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담배와 라이터와 천 원짜리 세장을 주머니에 넣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집을 나섰다. 양치질을 잊었지만 음식을 먹으면 입안의 똥내는 사라질 것이다.


“아저씨. 떡볶이 1인분만 주세요. 이거 국물 떠먹으면 되는 거죠?”

“네, 2000원입니다.”

주머니 속 지폐 세 장 중 두 장이 사라졌다.

‘알바 구함’ 

분식집 벽에 붙은 구인광고를 두어 번 힐끔거리자 2천 원짜리 떡볶이가 사라져 버렸다. 주인아저씨의 눈치를 살피며 오뎅국물을 한 잔 더 떠 마셨다.  

“수고하세요”

분식집 밖은 더웠다. 시멘트 바닥의 틈을 비집고 자란 잡초들이 시들했고 어디로 전부 도망간 건지, 새들이 날지 않는 하늘은 조용했다. 정수리에서 시작된 땀은 목덜미를 타고 등줄기로 흘러내렸다.

 TV 속, 마운드에 엎어져 흐느끼던 투수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울긴 왜 울어’ 문도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이기는 놈이 있으면 지는 놈이 있는 법’ 같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를 되뇌며 얇은 도취감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문도의 발길이 닿은 곳은 자신이 다녔던 중학교였다. 중학교는 가파른 언덕 위에 위치했다. 그때도 아침마다 언덕길을 오르는 게 싫었고 지금도 언덕길이 싫었다. 몸을 돌려 학교 앞 슈퍼에서 폴라포 하나를 사 입에 물었다.

언덕을 등지고 앉은 문도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포도맛 얼음 알갱이를 어그적 어그적 씹어 삼켰다. 



‘헉헉. 카악 퉤!’

가뿐 숨을 몰아쉬는 문도의 입에서 끈적한 보라색 침이 튀어나왔다.

슬리퍼와 발바닥 사이에 땀이 차 미끌거렸다. 

햇빛을 그대로 받은 텅 빈 운동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학교에 들어온 문도는 먼저 운동장 끝에 있는 수돗가로 향했다. 일렬로 나란히 배치된 수도꼭지 중 하나를 왼쪽으로 비틀어 열었다. 물이 나오지 않았다. 다른 수도꼭지를 비틀어 보았다. 물이 나오지 않았다.

‘방학이구나’


문도는 맞은편에 넓게 퍼진 나무 그늘 아래 벤치로 걸어갔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벤치에 길게 누워버렸다.

햇빛에 비친 푸르른 나뭇잎이 투명하게 흔들렸다. 





겨울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일찍 하교한 어린 문도는 바닥에 누워 바람에 덜컹거리는 창문을 보고 연을 챙겨 학교로 달려갔다. 텅 빈 운동장에 모래바람이 일고 국기게양대의 태극기가 펄럭였다. 문도는 운동장 한가운데 서서 연을 날리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실에 매달려 점점 멀어지는 연은 자유로웠고 그 광경을 바라보는 문도는 이 세상에 자신과 연만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완벽해 보이는 외로움을 느끼며 문도의 마음은 설렜다. 

“야!” 중학교 건물 창문으로 고개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운동장을 향해 소리쳤다.

문도는 손에 쥔 실타래를 등 뒤로 숨겼다. 고개가 들어가고 창문이 닫혔다. 문도는 빠르게 타래를 감기 시작했다. 하늘의 연이 좌우로 춤을 추었다.

“야! 너 뭐야?” 학교 중앙문에서 다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문도는 더 빨리 실타래를 감았다.

“신문도? 야, 너 신문도지”

담임선생이었다. 

“너 이 새끼 지금 뭐 하는 거야?” 연이 더 낮아졌고 선생이 다가왔고 문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 이 새끼, 시험인데 집에 가서 공부는 안 하고 여기서 연 날리고 있어?”

선생은 문도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공부도 못하는 새끼가 열심히도 안 하고.” 선생은 문도의 볼을 꼬집어 비틀고 다시 뺨을 때렸다.

“그거 이리 가져와!” 선생은 문도의 손에 들린 연을 빼앗았다. 그리고 문도의 눈앞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너 이 새끼 당장 가서 공부해. 너 성적 개판으로 나오면 뒈질지 알아. 알겠어?”

빨갛게 부어오른 두 뺨에 차가운 바람이 몰아쳤다.




‘툭’ 

문도의 이마에 물컹한 것이 떨어졌다.

새똥이었다.

“개새끼” 더럽게 재수 없는 날이라 생각했다. 



문도는 벤치에 누운 채 손바닥으로 이마를 훔쳐냈다. 일어나 앉아 손바닥에 묻은 새똥을 납작한 코로 가져갔다.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문도는 운동장 바닥에 쪼그려 앉아 흙바닥에 손을 비벼 닦았다. 

더럽혀진 끈적한 이마를 당장 씻어내지 않으면 얼굴이 부식될 것만 같았다. 문도는 중학교 건물을 바라보았다.


중학교 건물의 중앙 출입문은 활짝 열려 있었지만 전등이 꺼져있어 복도는 어두웠고 적막했다. 문도는 화장실에

들어가 차가운 물로 손과 얼굴과 목덜미를 두어 번 반복해 닦아냈다. 중학교 화장실 거울에 비쳐본 얼굴이 낯설었다. 

아이들이 없는 학교의 복도는 너무도 조용하고 시원했다. 텅 빈 학교 복도를 어른이 된 몸뚱이로 보고 있자니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 없는 빈 학교는 꺼져가는 늙은이의 육체와 같았다. 아니, 굳어버린 시체 같았다. 아니, 박쥐가 매달린 커다란 동굴 같았다. 지나간 시간이 묻은 빈 교실을 보고 싶었지만 왠지 무서웠다. 그곳에 들어가면 눈물이 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울긴 왜 울어.’  문도는 도망치듯 학교 건물을 빠져나왔다.

눈부신 태양의 빛을 받아내고 있는 운동장을 보자 방금 전에 느낀 감정은 빠르게 부식됐다.  

바로 그때 저 멀리서 작은 그림자 하나가 헉헉대며 학교 정문을 막 통과하고 있었다.

문도는 그림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초등학생교 5,6 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가 왼쪽 허리춤에 축구공을 끼고 운동장에 들어왔다. 






아이는 태양을 한 몸에 받은 채 발등으로 공을 몇 번 튕기더니 얇은 다리로 골대를 향해 공을 힘껏 때렸다. 그물이 출렁였다. 아이는 골대 안으로 뛰어들어가 공을 다시 발등으로 튕기기 시작했다. 젓가락 같은 다리로 다시 골대를 향해 슛! 다시 달려가고 다시 골대를 향해 슛을 반복하는 아이의 녹색 티셔츠가 땀에 젖어가고 있었다.

아이는 문도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문도는 조용히 아이 곁으로 걸어갔다. 문도와 아이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야!”

아이가 놀랐다. 커다란 눈이 문도에게 고정됐다.

“이 더운데 혼자서 뭐 하는 거야?”

아이는 그대로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골키퍼 봐줄까?”

“…” 아이는 경계했다.

“차봐. 다 막아 줄테니까”

“…”

“내가 한 골이라도 먹으면 폴라포 사준다.”

아이가 몸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진짜라니까. 너가 한 골이라도 넣으면 이따 나가서 폴라포 사줄게”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문도를 향해 첫마디를 뗐다.

“캔디바 사주면 안 돼요?” 

“알았어. 그럼 캔디바.”

문도는 골대 앞 중간에 서서 손뼉을 치고 두 팔을 넓게 벌려 보였다.

“차!”

아이는 골대에서 10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 공을 놓고 숨을 고르고 골대를 쏘아보았다.

가느다란 다리가 빠르게 움직이며 공을 때렸다.

문도는 아이의 공을 가볍게 막았고 아이의 얼굴에는 실망과 기쁨이 섞여 보였다.

“야! 근데 너 너무 멀리서 차는 거 아니야?”

“안 먼데요”

“먼 거 같은데”

“아닌데요.”

“그러냐?”

아이는 다시 공을 찼다. 문도는 이번에도 가볍게 막아냈다. 

“아무래도 먼 거 같은데”

“안 멀다니까요”

“알았어, 인마. 승질은”

아이는 다시 공을 찼다.

“다시!”



문도와 아이는 함께 땀을 흘리고 소리 지르며 공을 주고받고 웃었다.

“아저씨! 이제 내가 골키퍼 할게요” 아이가 문도에게 다가오면 말했다.

“네가? 못 막을 텐데.”

“아니 나도 골키퍼 해보고 싶은데”

“근데 나 슬리퍼 신어서 안 될 거 같은데… 그래, 그럼 뭐. 한 번 막아봐. 야, 근데 너 한 골도 못 넣었으니까 아이스크림은 없는 거다.”

아이는 웃고 있었다.


문도는 축구를 할 줄 몰랐다. 문도의 종아리와 허벅지는 마시멜로처럼 뽀얗고 물렁거렸다. 


“간다. 잘 막아라. 너무 세다 싶으면 그냥 피해. 다치니까”

아이는 말없이 두 팔을 길게 펼쳐 보였다.

문도는 침을 꿀꺽 삼켰다. 구름이 나타나 태양을 가로막았다.

“간다! 진짜 간다. 못 막을 거 같으면 진짜 피해라. 알겠지?”

“아… 알겠어요. 그냥 차기나 해요” 아이가 짜증 섞인 말투로 소리 질렀다.

“새끼, 짜증은” 

문도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뒤로 두발 앞으로 두발 뻥! 

문도와 아이는 동시에 골대를 한참 벗어나 힘 없이 굴러가는 축구공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으하하하! 되게 못하네. 으하하하”

“저 새끼가. 야! 슬리퍼 신어서 그래.” 문도의 얼굴이 빨개졌다.

“아저씨! 그냥 골키퍼 할래요?” 아이가 웃으며 소리쳤다.

“싫어. 공 내놔!”

문도는 다시 공을 찼다. 발가락과 발등이 욱신거렸다. 공은 계속해서 골대를 빗겨 나 엉뚱한 곳을 향했다. 

“으하하하하하. 아저씨 개발이다.”

“야! 너 야구할 줄 알아?”

“아니요”

“내가 야구 가르쳐 줄까?”

“아니요. 전 축구가 좋은데요”

“그러냐”

“아저씨가 그냥 골키퍼 해요”

“너 이름이 뭐야”

“왜요?”

“왜긴 왜야. 그냥 물어보는 거지.”

“아저씨는 이름이 뭔데요?”

“알아서 뭐하게?”

“저도 그냥 물어보는 건데요.”

“이 새끼 봐라.”

구름 가득한 하늘에서 곧 비가 쏟아질 거 같았다.

“야, 비올 거 같은데 집에 가자”

“싫은데요. 난 더 놀건대”

“비 올 거 같은데 그냥 가지”

“아저씨, 골키퍼 좀 만 더 해주면 안 돼요?”

“또?” 문도는 괜한 짓을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알겠어”

문도와 아이는 다시 공놀이를 시작했다. 하늘이 검게 변하고 바람이 불고 나무가 흔들렸다. 

운동장 한 구석에서 모래 바람이 소용돌이쳤다. 

“야, 이제 진짜 가자. 소나기 올 거 같은데”

“아직 안 내리잖아요.”

“미쳐버리겠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흙 비린내가 코를 들쑤셨다.

“가자!” 문도가 다그쳤다.

“아저씨! 내가 신기한 거 보여줄까요?” 아이는 문도에게 축구공을 건네며 말했다.

“비 오잖아. 가자고!” 


빗줄기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흙 비린내가 사라졌다.

“진짜 신기한 건데”

아이는 운동장 맞은편 끝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수돗가 앞에 도착한 아이는 나란히 설치된 수도꼭지를 비틀어 열기 시작했다.

“야! 거기 물 안 나와.” 문도는 소리치며 수돗가로 달려갔다.

“기다려봐요”

둘의 옷이 비에 젖어 늘어졌다.

문도는 공을 들고 우두커니 아이의 분주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수도꼭지를 전부 열자 아이는 문도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아저씨! 그 옆에… 거기, 땅바닥에 있는 뚜껑 좀 열어주세요.”

“야, 그냥 가자” 문도는 학교 건물 쪽을 한 번 올려다보고 말했다.

“재밌는 거 보여준다니까요.”

문도가 바닥에 보이는 뚜껑을 열자 안으로 밸브가 보였다.

아이가 다가왔다. 아이의 등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거 같았다.

“잠깐만요.”

몸을 숙인 아이의 등에 앙상한 뼈들이 비에 젖은 티셔츠에 고스란히 비쳐 보였다. 문도의 목구멍으로 신물이 올라왔다. 

몸을 숙인 아이가 낑낑대며 힘겹게 밸브를 비틀었다.

“뭔데?”

문도가 입을 여는 그 순간 일렬로 늘어선 수도꼭지가 꿀렁대며 동시에 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거센 물줄기가 수돗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내렸고 문도와 아이는 그 아래 가만히 서서 흘러나오는 수돗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신기하죠?”

“응…”


문도는 알 수 없었다. 빗속에 서서 쏟아지는 수돗물을 바라보는데 왜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지. 


“아저씨. 내일도 축구해요.” 흐르는 수돗물을 바라보며 아이가 말했다.

“안돼”

“왜요?”

“바빠”

문도의 눈물이 빗물에 씻겨 운동장 바닥으로 흘렀다.

“뭐하는데요?”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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