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과 글쓰기, 일단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모르는 번호가 떴다. 딱 3초 고민하고 받았다.
“강사님, 준비할 서류들이 있어서요.”
지난번 면담했던 복지사님이었다.
강의 개설 안내와 추후 일정에 관해 말해 주셨다.
복지관 방학이 끝나고 8월 가을학기부터 개강이라고 하셨다.
마음의 짐을 덜고자 찾은 면담이 진짜 수업으로 이어지다니, 얼떨떨했다.
시작될 수업에 앞서 ‘시범강의’를 해야 한다고도 했다.
"시범강의요?"
전화를 끊고서 한 시간짜리 샘플 강의를 어떻게 구성할지, 그날 어떤 분들이 오실지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선 수업의 목표와 개요를 설정해야 했다.
글쓰기가 중심이되 그것을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문제였다.
수강생들의 수준과 의욕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게 뻔했다.
보통 1시간 수업인 복지관의 타 강의와 달리 2시간을 꼬박 앉아 계실 수 있으실지도 미지수였다.
이 강의 주제가 ‘글쓰기’라는 그것밖에는 도무지 명확하게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정했던 시범강의 날짜가 홍보 부족으로 한 차례 연기되면서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수강생이 몇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 싶으면서도 내심 ‘수많은 즐겁고 신나는 수업 중을 두고 과연 누가 가만히 앉아 글을 쓰겠다고 찾아올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농촌지역 공모사업으로 진행했던 어르신들과의 수업 경험이 내 근심을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그때 어르신들을 글쓰기를 ‘공부’라고 생각하셨다.
매주 인사가 “선생님, 우리 공부 조금만 해요!”라는 말이었다.
인생 후반기, 원하는 걸 하기도 바쁜 시간에 쳐다보기도 싫은 공부라니!
그런 어르신들에게 쓰기가 힘든 일이 되지 않는 게 중요했다.
수업 자료를 새로 만들고 준비하며 나름의 공을 들였다.
그만큼 나 스스로 성장하는 기회기도 했지만, 아쉬움은 남았다.
쓰기의 즐거움, 그 행복한 맛을 끝내 전파하지 못했다는 애틋함 같은 거였다.
하여간 시범강의, 그날이 왔다.
수업의 가제는 <그림으로 시작하는 쉬운 글쓰기>였다.
강의실에 들어서자, 열너댓 분의 어르신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계셨다.
‘오! 생각보다 많이 오셨다!’
나를 이곳까지 이끈 인연의 주인공이신 어르신도 물론 앉아 계셨다.
약간의 어색한 만남,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시선을 주고받으며 수업을 시작했다.
글쓰기 안내자로서 내 역할 소개에 중점을 둔 수업이었다.
“왜 글쓰기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무엇을 쓸까?”로 마무리했다.
여러 자료 중에 편안하게 다가설 수 있는 그림을 준비하고 수강생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데 집중했다.
무엇보다 편안함, ‘저는 언제든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는 강사의 자세를 수강생에게 알리는 게 목표였다.
‘시범강의’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목적 아래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강의. 또는 본 강의에 앞서 미리 해보는 강의”를 뜻한다.
내 경우엔 후자다.
맛보기 강의라고 하면 딱 맞다.
시강이 끝나고 세 분이 따로 찾아와 질문을 하셨다.
모두 비슷한 걱정, 시작도 전에 밀려오는 글쓰기의 두려움이었다.
그런데 어째 나는 그 세 분의 고민 덕분에 행복했다.
우려 뒤에 숨은 마음이 쓰기의 목마름이라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 한 분이라도 이런 마음이라면 오는 발걸음이 가벼울 듯했다.
누군가의 삶의 갈증에 물줄기가 되고 싶다는 생각, 쓰기의 마중물이 되어 드리고 싶다는 소망, 그날의 한 시간은 시범강의이자 또 다른 시작이었다.
서로 다른 원들이 저마다의 크기로 한데 모이는 느낌이었다.
낯설지만 안정감 있는 그 기운이 썩 괜찮았다.
#시니어 글쓰기 #바실리 칸딘스키_ 여러 개의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