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보고 말하면 말하지 않아도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어요
“ 퇴근하고 같이 산책할래?”
동네의 친한 분이 톡으로 연락이 왔다.
느껴지는 촉이 뭔가 말하기 힘든 마음의 짐이 느껴졌다.
이런 걸 잘 아는 나는 그저 단순히 “촉” 이 좋아서도 있지만 많은 경험의 축적도 있다고 하고 싶다.
“그래요. 한 시간 정도 여유는 있는데 괜찮으시면 만나요.”라고 답을 하고 퇴근 후 동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헤어졌다.
우리 둘은 산책을 하면서 앞을 보고 이야기하고 간혹 곁눈질 또는 바라보며 웃고, 나는 슬쩍 그녀의 옆모습을 통해 표정을 읽으려 한다.
나는 타인을 보면 그 사람의 말은 귀로 듣고, 표정은 눈으로 읽는다.
말하지 않아도 눈에는 많은 감정들이 들어있다.
말은 즐겁게 하고 있다지만 눈의 감정까지 감출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을 하기에......
그래서 전화통화보다는 만나서 하는 대화를 좋아하고, 가급적 한쪽 귀만 시끄러운 전화의 대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는 나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비밀이 있다.
어렴풋이 짐작은 하지만 나 또한 그녀에게 묻지 않는다.
내가 모든 걸 털어놨다고 해서 듣는 사람까지 나에게 털어놓기를 바라는 나는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공황장애를 겪지 않았으면 내 안의 화를 담고만 지냈을 것이고, 타인의 고통을 듣는데 조금은 어려움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들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고 힘이 되는지는 겪어봤다면 더 잘 알기에 바쁜 일이 있어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필요한 듯싶으면 함께 하고 싶은 마음. 그것은 진실인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긴 세월을 침묵으로 아픔을 가슴에 묻고, 너무 힘들 땐 밤의 산책으로 달래는 듯했다.
그 자리에 나를 떠올려 줌은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옆에 내가 잠시라도 있어줄 수 있다면 나 또한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며칠 전 봄이 오면 산책을 하고 싶다고 연락을 받았다.
역시 그러겠다고 답하고, 약속을 했다.
오늘 명절 연휴 끝.
아침 일찍 자주 가는 별다방에 가서 책을 읽고, 좋아하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태도의 말들이라는 책을 읽었다.( 물론 그전에 별다방에서는 다음 주 독서모임 축의 전환을 읽으면서 이민자와 고령자에 대한 세상의 관점도 생각했다. 바쁜 아침이었다는 것을 슬쩍 알리는 괄호 글 ^^)
사소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저자.
그 안의 내용을 읽어보던 중
사회학자 엄기호 분의 인터뷰 내용이 좋아서 몇 번을 읽었다.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
상대방이 뭘 말하고 싶지만, 머뭇거리는 그 마음까지 읽어낼 수 있는 관계의 중요성이 요즘 들어서 더욱 필요함을 느낀다.
그래서 읽은 책 중에서 태도의 말들은 나의 진심도 중요하지만 태도에 대한 여러 예시가 적혀있다.
즉 태도란 마음속에 내재된 심리이기도 하기에 그런 듯 싶다.
행간을 읽는 사람이 있다.
단어의 쉼표보다 눈여겨 읽는 사람이 있다.
말보다 표정을 먼저 읽으려는 사람이 있다.
말하지 못하는 걸 듣는 사람,
“말하는 걸 듣는 건 수비만 하는 것”
“고통은 침묵으로 표현될 때가 많기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한다
(중략)
해가 갈수록 정신과, 심리상담소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옆에 있는 사람이 내 말을 안 들어주니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친구들에게만 속마음을 털어놓는 세상이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듣는 감수성”
——- 태도의 말들 중에서 —————
무엇보다 여기서 내가 고개를 끄덕인 부분은 이 부분이다.
고통은 침묵으로 표현......
내 고통을 말해봐야 무엇하리!
그리고 타인에게까지 무거운 감정을 전달해 주기 싫다는 그런 마음이 많다.
결국 내 몫의 고통은 내가 이겨내야 함을 잘 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말하는 사람의 말과
듣는 사람의 귀는 감정의 전달이 100% 일치가 어렵다.
아마 사람마다 갖고 있는 해석이 다른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보다
자연에게 말하고 털어버린다.
어떤 답을 듣고자 말함이 아닌데, 신기하게 사람에게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은 현답을 들려준다.
혼자 하는 여행을 하면서 그간의 어려움을 털어놓으면, 자연은 그저 누구에게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같은 생각을 주는 건 아니다.
보는 사람이 놓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보고 듣고자 하는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을 열어놓는다면 사람에게서 듣지 못하는 귀한 답을 듣게 된다.
분명 세상은 변하고 있고, 사람들은 풍요 속에서 여전히 외롭고 여전히 각자의 다른 이유로 고통받고 있다.
그 고통은 과연 무엇일까?
가까운 사람들의 얼굴에 분명 그늘이 보이는데 말하지 못함은 아마 고통의 침묵일까!
가까운 가족, 친구들, 회사 동료들
그들의 고통의 침묵을 다 듣기란 어렵겠지만, 최소한 모른 척 지나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특히 요즘 사회 이유가 되는 어린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어른들의 학대.
이런 고통의 침묵은 다시는 뉴스로 접하지 않고 싶다.
어디서든 지금도 고통의 침묵은 계속되고 있겠지.
우리는 그래서 말보다 표정으로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는 여유와 태도의 말들과 배려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즐거운 명절이 이 저녁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내일이면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 출근을 하고, 같은 하루의 반복 속에서 다른 변화를 찾아 나를 성장할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그 성장 속에서
조금만 시간을 내어서
주변에
고통의 침묵을 하는 사람이 없는지 조금은 살펴보는 아량을 가졌으면 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라는 광고처럼
정( 情 )이 늘 마음속에 자라는 우리들의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