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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밤 Jan 15. 2023

길을 잃어도 괜찮아, 객사하지만 않는다면.

자베르,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됐습니다>

 , 에세이 계의 <멜로가 체질>이다. 진짜 말이 많은데 말맛이 있어서 책장을 넘기다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낄낄대며 웃음이 터진다. 근데 막상 그의 굴곡진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마음이 짠하고 코끝이 찡해진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나는 울면서 웃는 이상한 사람이 된다.


어쩌다가 이렇게 살고 있을까문득 생각이  때면 과거에 지나왔던 갈림길들이 생각난다. 예전부터, 얼렁뚱땅 보다는 정통성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지나왔던 점을  엮으면  뻗은 직선이길 원했다. 경영학과를 졸업해 인터넷은행에서 예적금 상품을 만들고 있다고 하면 개연성 있어 보이지만, 경영학과에서는 필사적으로 숫자를 피해 조직행동론과 인적자원관리 계열의 수업만 들었고 취업도 인사팀으로 했다.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인사팀이야말로 지나온 나의 모든 점들의 종착지라고 생각했다.) 근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


부족한 정통성이 콤플렉스로 느껴져서 한동안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대체 어떻게 지금의 일을 하게 됐느냐고 묻고 다녔다. (왕위를 계승할 것도 아닌데 정통성이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입사를 했는데 발령이 여기로 났어요’라는 대답은 심심했지만 마음에 안정을 줬다. 자베르는  대답을 325페이지에 거쳐서 정성스레 풀어낸다. 그리고 알게 된다.  이렇게  대답이라 다들 그렇게밖에 얘기를  했구나.


“외고에 갔다”는 건조한 한 줄의 이력 뒤에는 그 이력을 위해 손이 붓도록 맞으며 밤낮없이 공부했던 날들이 숨어 있다. “뉴욕대를 졸업했다” 는 이력에는 눈물이 묻는다. 처음 돌린 세탁기에서 나온 돌돌 말린 양말의 쿰쿰하게 덜 마른 촉감, 따라갈 수 없었던 영어 수업, 다친 마음과 몸으로 살아냈던 유학 생활. 학점을 복구하고 또 다른 이력을 이력 사이에 끼워넣기 위해 이틀에 하루를 자다가 문자 그대로 쓰러지고, 그제야 죽겠구나 싶어 마셨던 뜨끈한 쌀국수가 그 한 줄에 묻어 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닌 취업 준비의 시작, 취업을 위해 사용한 시간의 공백까지도 설명해야 하는 건조한 이력서 세상에 입이 쓰다.


긴 시간이 지나 어쩌다가 정규직으로 취업하게 되었으나 48시간 동안 퇴근하지 못하고 사무실에 앉아 있던 자베르는, 문득 스스로가 시시포스의 돌 굴리기 형을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는다.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이냐?’ 책의 끝자락에서 자베르는 스스로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다.


길을 잃는 것은, 그리고 길을 모르는 것은 모자람의 증거일 수는 있지만 모자란 것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다. 피고인들은 결코 어느 높은 산을 찾지도 오르지도 못했지만 스스로를 객사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다는 점을 참작하여 판결한다. 321p.


그렇게 하나의 질문에 답을 하고 나니 다음 질문이 기다린다. 이젠 그러면 어쩔 생각이냐고.


 어쩌겠나,  지금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어떻게 되어 있겠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다고 허허 말할  있게 되겠지. 어쩌다가의 은총이 있는 삶은  포장된 고속도로는 아닐지라도 이야기가 많은 바닷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다가 파도도 만나고 돌고래도 만나고 암초에 걸려도 보고 살아나갈 길이 없는  같다가도, 살아 돌아오면 꼬질꼬질하게 웃을  있는 이야기가 풍성한 . 그리고  이야기를 이렇게 떼어 책으로 엮어 조금은 홀가분하게 다음 시작을 준비할  있는 . 그래서 재미있는 ‘어쩌다가 이렇게 이야기.





자베르 , 주현 그림,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됐습니다』, 자베르북스

(부제 : 오늘만 사는 자베르의 취업 대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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