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날짜는 2023년 10월 9일 월요일, 한글날입니다.
“네, 월요일이에요. 그런데 한글날이라 공휴일이에요.”
결혼식 날짜는 10월 9일, 한글날이고 월요일이었다. 날짜를 정할 때 토일월을 붙여 놀러 가려는 사람들이 오기에 불편하지 않을까 망설였지만, 원래도 결혼식이라는 건 대체로 소중한 주말 중 반나절을 써야 하는 일정 아닌가. 주말을 푹 쉬고 덧붙여 얻은 연휴에 가는 결혼식이 오히려 좋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놓기로 했다.
이 날을 결혼식으로 잡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는 내 생일이 2월이고 현상 생일이 6월인지라 결혼기념일이 딱 10월인 게 밸런스가 좋았다. 우리는 100일 단위 기념일이나 무슨무슨 데이를 챙기지는 않는 커플이었기에 생일과 결혼기념일 정도만 살아남을 게 분명했다. 몇 없는 기념일이 네 달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찾아온다는 구상이 꽤 만족스러웠다. 심지어 공휴일이라 매년 결혼기념일에 일을 쉬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완벽하다.
둘째는 결혼식이 공휴일이라는 점에서 따라오는 콩고물이었다. 결혼식장 예약만 두고 봐도 토요일 점심 예식일수록, 봄이거나 가을일 수록 대관료와 식대가 비쌌고, 더 춥거나 덥거나 시간이 너무 이르거나 늦을수록 가격이 저렴해졌다. 우리는 기독교 예식으로 진행하려고 했기에 일요일을 제했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손님들을 위해 너무 이르거나 늦은 시간을 피해야 했기에 “시월의 토요일 점심”이라는 극극성수기적 가격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는데 한글날을 택한 덕에 조금은 저렴해진 공휴일 가격으로 식장을 예약할 수 있었다.
다른 항목들도 사정은 비슷했는데, 내 드레스나 엄마의 한복을 빌릴 때도 날짜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서 ‘그날엔 이 옷이 없어요’하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됐고, 결혼식 사진촬영(일명 본식스냅) 역시 공휴일 가격으로 할인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모두가 예의상 택하지 않는 날짜를 골라서 덕을 본 것이 민망하기도 하지만, 나 역시 화요일이나 수요일이나 목요일이 한글날이었다면 그날을 택하지는 않았을 거다. 주말에 붙은 공휴일은 반 주말이니까 그 엇비슷한 거라는 정도의 양심은 있었다.
예약할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별도로 휴가를 쓰지 않고도 주말을 오롯이 쉬고 좋은 컨디션으로 결혼식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때문에 신혼여행 휴가에 주말을 한 번밖에 끼우지 못한다는 조삼모사적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결혼식 전 일정이 여유로운 편이 훨씬 좋았다.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이 반대하셨다면 공휴일 예식을 선택하지는 못했을 텐데, 양가 모두 개의치 않아 하셔서 편안하게 결정할 수 있었다.
“우와, 그럼 매년 결혼기념일에 쉬는 거예요? 너무 좋네요!”
“우리 부모님 결혼기념일도 한글날인데, 신기하다.”
“친구가 여행 가자는 거, 하루 일찍 가서 전날 돌아오기로 했어. 결혼식 가야지!”
“아이 있는 부모들에게는 조금 가혹한 일정이네요. 캠핑 가기로 했는데… 결혼식에 못 가더라도 정말 축하해요.”
월요일 예식을 알렸을 때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지만 걱정했던 것만큼 기분 나빠하거나 나를 몰상식한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날이 좋으면 좋아서 놀고 싶고, 궂으면 궂어서 가기 힘들고, 아침이면 휴일인데 일찍 일어나야 해서, 저녁이면 피곤해서, 오후엔 애매하게 하루를 다 써야 해서, 나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별의별 이유로 마음이 쓰이기 마련이다.
결혼식장 선택의 불변의 기준은 ‘밥이 맛있고 주차가 편리하며 대중교통으로 오기 좋은 곳인지’다. 날짜 역시 그렇다. 이러니저러니해도 결혼 당사자들은 오시는 분들을 가장 많이 고려하고 부족한 점을 미안해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일 뿐이다. 예식의 주인공에서 다시 손님이 된 지금, 날짜가 어떻든 시간이 어떻든 초대해 준 귀한 마음에 감사하며 티 없이 축하해주리라 마음먹는다. 내 월요일 결혼식에 기쁘게 와준 친구들의 마음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