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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밤 Nov 19. 2023

오래 연락하지 않은 친구에게 청첩장 주는 마음

좋았던 기억은 그때의 우리에게 남겨두는 것이 좋을까

청첩장이 나오면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선다. ‘청첩장을 누구에게까지 줄 것이냐.’ 결혼 소식을 전했을 때 상대가 당황하면 무안해지고, 축의금 달라고 연락한 것처럼 보일까 봐 머쓱하다. 반면 그럴까 봐 소식을 전하지 않았을 때 우리 사이가 이 정도냐며 손절하겠다고 진노하는 상대도 있으니, 사람의 마음을 읽지 않고서야 청첩장을 기쁘게 받아줄 상대를 정확히 고르기란 어려운 일이다.


내가 결혼식에 초대받는 입장인 경우 나는 대체로 진노하는 편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한때 그렇게 친했는데 결혼한다고 알려주지. 당연히 갔을 텐데 내 마음을 몰라줬다는 사실이 서운하고 아쉬웠다. 그래서 ‘청첩장 받은 결혼식만 간다’는 나름의 기준을 두고 결혼식 참석 여부를 정하곤 했다.


내 결혼식 청첩장을 손에 쥐게 된 나는 그제야 ‘상대의 입장이 되어봐야 안다’는 말을 체감했다. 못 본 지 오래되었지만 마음으로 늘 응원하고 좋아하는 친구들, 그 이름과 얼굴들이 떠오른다. 당황해하거나 반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좋았던 기억은 그때의 우리에게 남겨두고 지금은 무소식 속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는 관계도 괜찮지 않냐는 마음이 든다. 그렇게 연락을 내려놓는다.


청첩모임이 한창이던 어느 날, 카카오톡 친구목록을 내리다가 한 이름 앞에서 멈춰섰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는 그의 남동생의 어릴 적 모습과 똑닮은 아기가 귀엽게 웃고 있었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의 절친이었다. 학교는 달랐지만 주말마다 교회의 초등부에서 함께했고, 그의 학교 친구와 교회 친구인 내가 그를 두고 우정의 신경전을 벌이곤 했었다.


그의 어머니는 노래를 잘 하셨는데, 그는 엄마에게 배운 것을 내게 알려주곤 했다. 우리는 교회 장의자 맨 뒷줄에 앉아서 숨을 크게 들이쉬고, 받침을 최대한 나중에 붙이는 것을 연습하며 꽤 진지하게 서로의 노래를 들었다. 목욕탕에서는 꼭 코의 피지를 짜야 한다는 것도 그가 알려주었다. 목욕탕 의자에 나란히 앉아 코가 빨개지도록 피지를 짰던 기억이 선명하다.


자라면서 교회도 사는 지역도 달라지며 자연스럽게 멀어졌지만, 워낙 작은 동네였기에 건너건너 소식을 듣곤 했다. 어디로 이사를 갔다더라, 대학을 어디로 갔다더라, 결혼을 한다더라. 또 카카오톡이 전해주는 소식을 보며 그의 남편 얼굴을, 아기의 얼굴을 보았다. 내가 이 친구 결혼식에 갔던가, 기억이 희미했다. 그렇지만 연락을 받았더라면 갔을 것이 분명했다. 멀찍이서 소식을 업데이트하는 사이였지만, 오랜 친구에게 결혼 소식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의 아이 사진을 보면서 축하했던 것처럼 그도 축하해줄 거라는 마음이었다.


참석해달라거나 축의를 해달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소중한 사람들에게 인생의 기쁜 소식을 알리는데 네가 생각났다. 직접 전해주고 싶었다. 앞으로도 네가 잘 지내기를 먼 곳에서 바란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진심이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굳이 표현했다가 오해받을까 두려웠고, 괜히 좋은 기억까지 먹칠하는 것이 아닐까 망설였다. 어색해하거나, 어이없어하는 시뮬레이션이 머릿속에서 돌아갔다.


연락을 해도, 하지 않아도 후회할 거라면 해보자는 마음을 먹고 오랜 고민 끝에 친구의 이름을 다시 찾았다. 카톡 프로필을 눌러서 사진을 한참 돌려보다가 채팅창을 열었다. 마지막 연락이 휴대폰을 교체하기 전이었는지, 대화창에는 대화 한 줄 없이 휑했다. 마음이 어려워졌다. 지금 우리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를 무심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메시지를 쓰는 데에는 한 번의 용기가 더 필요했다.


혹시나 실수로 쓰다 만 메시지를 전송할까 싶어 나와의 채팅창에 먼저 글을 써두고 몇 번을 고쳐 썼다. 그리고 그와의 휑한 대화창에 편지같이 긴 메시지를 붙여 넣고 후다닥 도망갔다. 답장이 올 때까지 마음이 두근거렸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까, 반갑게 여겨 줄까, 너도 나처럼 속으로는 내가 잘 지내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았을까. 대화창에 들어갔다가 혹여 답장이 온 타이밍에 1이 바로 사라지면 민망할까봐 눌러보지도 못했다. 읽었는지 아닌지 전전긍긍하며 앉아 있자니, 소개팅 상대의 연락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긴장됐다.


몇 시간이 지나 답장을 받았다.


안그래도 프로필 사진이 바뀐 걸 보고 결혼하나 보다 했다고.

누구랑 결혼할지 너무 궁금했다고.

너무 기쁜 소식이고 전해줘서 고맙다고.

기다린 연락이었다고.


나 역시 네가 종종 떠올랐고, 궁금했고,

잘 지내고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

앞으로도 행복하길 바란다고.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핫초코 위의 마시멜로우처럼 달콤하게 녹아내렸다. 기다린 연락이었다는 말이, 먼저 연락 줘서 고맙다는 말이 내 안에 뭉클하게 퍼졌다. 용기 내서 연락하기를 너무 잘했다고 생각했다. 치기 어린 날들의 추억을 함께했던 오랜 친구와 근황을 나누며, 어쩌다 한 번씩이라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기쁘고 슬픈 소식을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못했고 축의를 보내며 내 결혼생활을 축복해 주었다. 축의금을 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을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서로 입장이 바뀌었더라도 나 역시 기쁘게 축하하고 축복했을 거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내려놓았다. 으레 결혼식을 준비하면서는 인간관계가 정리된다고들 하지만, 잊어버린 소중한 인연의 먼지를 닦아 꺼내오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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