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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밤 Mar 16. 2024

마지막까지 밤잠 설치게 한 '예식장 보증인원'

걱정하는 만큼 대단히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예식장 보증인원이란 '최소한 이 정도의 하객이 와서 식사할 것을 보증한다’는 신랑신부 측의 예식장에 대한 약속이다. 약속보다 적은 인원이 식사하더라도 보증인원만큼의 식대를 무조건 지불해야 한다. 예식장 입장에서는 확정적인 매출인 셈이다. 보증인원은 예식장에 따라, 결혼식 요일과 시간에 따라 다른데 당연히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한다. 인기 있는 공간과 시간을 선택하려면 으레 보증인원이 늘어난다.


보통 예식장은 1년 전부터 예약을 받기 시작한다. 내년 가을에 결혼식을 하고 싶다면 올가을에는 예약을 걸어둬야 좋은 시간대를 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결혼을 포기하는 세대라고 하지만 결혼준비를 하다 보면 결혼하려는 커플들이 세상에 왜 이렇게 많은지. 우리는 2022년 10월 16일에 예식장 상담을 갔는데, 이미 1년 뒤인 2023년 10월의 토요일 점심 예약들이 속속 들어차고 있었다. (세상에!) 이 험난한 예식장 배틀에 mbti p들은 어떻게 사나 잠시 아득했다.


보증인원과의 기묘한 줄다리기는 이때부터 시작이다. 예식장을 예약할 때 최소 보증인원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가 예약한 예식장은 보증 인원이 최소 200명이었는데, ‘한쪽에서 백 명 정도씩은 오지 않을까? 친척들도 있고 하니까…’ 하는 식으로 예약해 버렸다. 생각보다 최소 보증인원이 적어 안도하고 있는 우리에게 예식장 매니저는 “실제로 오는 사람이 더 많다면 보증인원을 그에 맞춰서 꼭 늘리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식사 준비가 제대로 안될 수 있습니다.”하고 재차 강조했다. 우리는 비장하게 끄덕였다. 아무렴 식사를 못하고 가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되지. 그러고 나서 10개월 정도는 잊고 살았다. 반지도 맞춰야 하고, 집도 알아봐야 하고 이모저모 준비할 게 태산이라 정신이 없었다.


결혼식 한 달 반 전에 예식장 매니저에게 전화가 왔다. 이런 연락은 늘 여자 쪽에 하는 모양인지 통화가 힘들어 현상에게 연락해 달라고 해도 굳이 내가 되는 시간에 맞추어 다시 전화하겠다 했다. 대부분의 결혼식의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전화로 이모저모를 설명하시고선 <최종 체크리스트>라는 이름의 메일을 보냈다. 이제는 정말 보증인원을 결정할 때가 된 것이었다.


우리에게 허락된 오차는 +10% 까지였다. 200명을 최종 보증인원으로 잡으면 식사 제공은 220명까지만 안정적으로 가능했다. 현상은 설령 인원이 초과되더라도 식사를 못 하게 하진 않을 거라며 나를 안심시켰지만,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신경이 곤두섰다. 결혼식장에 왔는데 식사를 못 하고 가는 상황만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넉넉하게 잡자니 식대 부담이 컸다. 한 사람 당 식대가 약 7만 원, 열 명만 더 잡아도 70만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만큼 선뜻 보증인원을 늘리기가 어려웠다.


양가의 부모님들께 예상되는 손님의 숫자를 여쭙고 우리도 각자 손님 목록을 적어내려갔다. 아빠 친구가 30에서 50명 정도 올 것 같다는 말에 ‘아빠, 그렇게 하는 거 아냐...’ 하고 생각했다. 실제로 말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회사, 학교, 교회, 동아리 등 그룹을 나누고 목록을 추렸다. 1. 반드시 올 사람 / 2.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는 사람 / 3. 못 온다고 말한 사람. 참석 여부를 미리 말해주신 분들은 망설임 없이 분류할 수 있었지만 관건은 언제나 2번 그룹이다. 특히 교회와 회사 동료들이 누구까지 와줄지 잘 감이 잡히지 않았다. 꼭 와줄 것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혼자라면 안 올 것 같은데 단체로 온다면 같이 와줄 것 같은 사람도 있었고, 친밀도로 보면 와줄 것 같은데 결혼식에 같이 올 친구가 없을 텐데 혼자 오려나 걱정되는 사람도 있었다.


심플하게, 물어보면 되지! 하고 회사에 친한 분께 혹시 결혼식에 오시는지 여쭈었는데 아직 마음의 결정을 못 하신 상황인 것 같았다. 식사 준비 때문에 그러냐고, 아직 가족들과 얘기해봐야 할 것 같은데 일단 자신은 숫자에서 빼 달라고, 상황이 되면 결혼식은 꼭 가겠지만 그렇더라도 식사는 안 하고 갈 테니 걱정 말라고 하시기에 기겁했다. 아니라고, 그냥 못 들은 걸로 하시라고, 그렇게까지 부담드리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고 말씀드리면서 물러났다. 이렇게 여쭌 것은 그분이 처음이었고 마지막이었다.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믿을 것은 뇌피셜뿐이었다. 청첩장을 받았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기억해 내고, 참석 여부를 말했는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했다. 결국은 2번 그룹 중 70%가 온다고 가정하고 -라는 식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오차를 줄이기 위해 단톡방이 있는 친구들에게는 식사 준비를 위해 참석 여부를 하트로 눌러달라 부탁하기도 했다. 최선을 다해 인원을 헤아린 뒤 최종 체크리스트를 회신했다. 문득, 코로나 때 빡빡한 인원 제한 속에서 결혼한 사람들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싶었다. 참석 여부를 꼭 물어보고, 회신받고… 쉬운 일이 아니다.


결혼식 준비를 모두 마치고 이제 결혼식만 남았을 때까지도 보증 인원은 문득문득 마음에 걸려왔다. 이미 최종 보증인원을 정했지만 이후에도 참석 여부를 말해주는 분들의 정보를 업데이트하며 예상 인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지를 확인했다. 우리 뒷 순서에도 결혼식이 있으니 식사가 부족하지는 않을 거라는 일말의 믿음과, 혹시나 인원이 덜 올 경우 날아갈 생돈을 생각하며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결혼식 전날까지도 그랬다.


그래서 나는 또 다짐하고야 만다. 누군가의 결혼식에 가게 될 것이, 혹은 가지 못하게 될 것이 확정적이게 되는 순간 꼭 당사자에게 알려주자고. 이런 고뇌를 조금이나마 덜어 주자고.


결과적으로는 모두가 식사를 하고 가셨다. 오기로 한 사람이 못 오거나 가족들과 함께 오고, 이모저모한 사연으로 더하고 빼져서 결국은 보증인원에 딱 맞는 인원이 되었다. 먼저 결혼한 선배들이 그렇게 말할 때는 안 믿겼는데, 당일에 사연이 생기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오셨지만 밥을 안 드시기도 한다. 미리 다 알 수 없는 이유다.


여담이지만 넓디넓은 주차장도 결혼식장 선택의 한 요소였는데, 결혼식 끝나고 나서 들어보니 주차 공간이 부족해서 다른 건물에 주차하신 분들도 계셨다고 해서 놀랐다. 우리의 앞뒤 예식 손님이 많았겠거니 생각했다. 역시나 미리 다 알 수 없는 이유다.


미리 다 알 수 없는 이유들로 주최자의 마음은 전날까지 조마조마하지만, 다행히도 걱정했던 만큼 대단히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모쪼록 다른 이들의 잔칫날도 이모저모한 이유들에서 무사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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