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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파리 Aug 27. 2021

52살 나는 여전히 건축설계 노동자입니다.

내게 건축적 재능이 없다는 건 진작에 알았다.

이미 학교 때 옆에 있던 동기들이 매번 아이디어와 센스가 넘쳐 나는... 나와는 차원이 다른 설계를 하는 걸 보면서 진작에 설계 쪽으로 재능이 없다는 걸 알았다.


당시에는 졸업식 전까지 무조건 취업을 하던 때였다.

항상 자신감이 없던 나는 애초에 대형 사무실로의 취업은 생각도 하지 않았고

졸업식 직전에야 20여 명이 되는 설계사무실에 간신히 취업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십만 원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며 건축설계를 시작한 지 27년째...

어느덧 52살이 되었다.


재능도 없는 것 같고 가방끈도 짧았던 나는 

서른 살 때부터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것 같았지만

이미 그 나이부터 혼자 애를 키우며 월세집에서 살아야 했으니 돈을 벌기에는 그나마 하던 일이 나았다.

갑자기 다른 일을 알아보거나 다른 꿈을 꿔 보는 건 사치였다.


지금도 어디 가서 직업란에 건축설계라고 쓰면 부러워하는 분들이 있지만 건축은 줄곧 내게 노동이었다.

사무실에서 집중을 하다가도 문득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귀를 때릴 때면 여기가 공장이 아니고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성격이 이 모양인지라 사람 만나는 게 두렵고 잘 치고 나가질 못했던 나는 늘 누군가의 조력자로 일을 하며 

도면 그리는 기계가 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남들처럼 회사에 영혼을 갈아 넣으며 27년 동안 죽도록 일을 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앓는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다.

인생에 변곡점이 여러 번 있다 보니 살기 위해 중간중간 쉬어간 기간도 많았고

너무 프리하게 일을 해서 잔소리를 들은 적도 많다ㅎㅎ'


생계는 유지해야 했고 가진 건 없으니 이렇게 계속 노동으로만 살아왔는데

어느덧 주위를 둘러보니 이 나이까지 실무를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안 보이기 시작했다.


졸업을 하고 유학 갔던 동기들은 돌아와서 전국 각지에서 교수가 되었고

재능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능력 있는 동기들은 사무실을 차려서 이름을 꽤 날리고 있었다.


간혹 밀려나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세상을 탓하며 살지는 않았다.


그나마 문득문득 떠오르는 건 이 노동이 정말로 하기 싫었다면 내가 과연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건축을 해왔을까?!...라는 생각. 그렇게 놓으려고 애를 써도 결국 할 수밖에 없었던 건 나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처음 설계사무실에 들어갔을 때는 설계업무를 배우며 학교 수업보다 즐거웠고

그림이 아닌 실제 지어지는 것의 도면을 그리는 일이 세상 재미있었다.

현장에서 어떻게 시공되는지가 너무 궁금하여 기회가 되면 현장 경험을 하려고 노력을 하였고

경력이 쌓이면서 더욱 나만의 희열을 찾아갔다.

설계도면이 마무리가 될 때쯤이면 협력업체 도면까지 모든 관련 도면들이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질 때.

한 장의 도면이 마치 예술가의 작품처럼 마음에 들게 그려졌을 때.

현장에서 시공자와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을 풀며 의논할 때.

이 자체가 좋아서 희열을 느끼고 이 때문에 결국은 건축을 놓지 못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것도 나이 앞자리가 5자로 바뀌니 모든 게 쉽지 않아 졌다.

작은 사무실들에서는 이런 경력자를 쓰기가 부담스러워졌고

나 또한 도면 검토라도 할라 하면 눈이 잘 안 보여서 안경을 바꿔 껴야 하고

예전만큼 CAD 도면을 계속 들여다보는 거 자체가 힘이 든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그리는 도면은 더더욱 에너지가 없어서 이제 하기 힘들어졌으니

그나마 갖고 있던 능력도 쓸만한 기회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젊었을 때 잠시나마 꿈꾸었던 오랜 경력자의 모습은 실제 이 나이가 되니 여전히 불가능했다.

20년쯤 지나면 우리나라도 이렇게 되어 있겠지! 라고 생각했던 모습은 오지 않았다.

외국에서는 이렇더라! 라고 전해 듣던 모습.

건축가의 디자인을 구체적인 설계로 근사하게 풀어 주는 엔지니어들이 동등하게 인정받는 모습.

우리나라처럼 실시설계라고 하면 싸게 외주를 줘서 맡기는 그런 분야로 여기지 않고

계획단계부터 협의하여 능력자로 인정해 주는 그런 모습은 여전히 불가능해 보였다.


일단 설계비부터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똑같으니...

무엇부터 바뀌면 혹시 가능할까 꿈꾸어 보려고 해도 너무 골이 깊고 어려운 이야기라 파고들 엄두가 안 나는 일이다.


'최근에 실무 가능한 능력자들의 몸값이 내가 한창 일 했을 때는 상상도 못 했던 금액으로 높아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건 내가 바라던 게 단지 보수에 관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작년에 1인 사업자로 사무실을 내었다.

이 건축사사무소로 나의 설계를 이제 본격적으로 해야지...라는 생각은 아니었고

나이 때문에 밀리고 밀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어딘가 '적'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친구 사무실의 책상 하나를 빌려 사무소를 개업하고 명함도 만들었다.

여전히 나는 대표이자 노동자이다.

설계의뢰가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노동력과 간혹 이런 나를 인정해서 찾아주는 선배, 동기들의 일을 도와주는 노동력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나마 쥐꼬리만 하던 수입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는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지 매일 고민에 쌓여 가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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