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사라고사
사라고사를 가기로 한 건 순전히 비행기가 타고 싶지 않아서였다.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한 번에 가려면 비행기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정말 비행기가 싫다. 대륙을 건너가는 거 이외에는 정말 비행기가 타기 싫었다.
어차피 긴 여행이라 시간도 많으니 버스를 타고 가보기로 했다. 안 가 본 스페인 북부를 가로지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기 때문에...
나의 경로는 그렇게 포르투 - 살라망카 - 사라고사 - 바르셀로나로 정해졌다.
여행 중에 경로가 정해졌으니 정보를 검색할 시간도 많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슬슬 모든 게 귀찮을 시점이었다. 다시 또 새로운 도시의 볼거리와 가 볼 만한 곳을 찾아보고 거기 가는 법과 교통편을 알아보고 일정을 짜고 하는 것들이 너무 귀찮아졌다.
그냥 쉬어가는 도시로 생각하고 도착해서 발길 닿는 대로 가보기로 했다.
그게 또 여행의 묘미니까!
그렇게 포르투에서 6시간 20분 버스를 타고 살라망카에 도착... 2박을 하고
살라망카에서 2시간 버스를 타고 마드리드에 도착 후 환승을 하여 또 4시간 버스를 타고 사라고사에 도착하였다.
(살라망카에서 사라고사까지 직행버스도 있었는데 7시간이라는 시간이 부담스러워 일부러 환승을 했건만 이것이 실수였다. 표를 예매하고 보니 환승하려는 터미널이 다른 곳이었던 것! 마드리드에 내려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 후 다른 터미널에 가서 사라고사로 가는 버스를 타느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썼다.)
어쨌든 여기 사라고사에 도착해서 2박 3일을 머무르기로 했다.
스페인의 사라고사는 정말 큰 도시였다.
버스터미널이 같이 있던 기차역의 스케일이 남달랐다. 최근에 완공된 거처럼 보이는 기차역은 굉장히 크고 내부가 깔끔했으며 슈트와 정장 차림의 비즈니스 이용객들이 많았다. 이 역에서 구시가지까지 버스를 타고 30분 이상 걸릴 만큼 큰 도시였고 가는 길에 보이는 도시의 모습은 굉장히 현대적이었다.
숙소는 일단 올드타운 광장 근처로 잡았다.
오랜만에 호스텔의 1인실을 방으로 잡았는데 쏘~ 스윗한 호스텔 주인장이 주변에 가까운 맛집들을 알려 주었고 덕분에 나는 그날 저녁 정말 맛있는 로컬 타파스 집을 갈 수 있었다. 맥주잔과 타파스가 내 머리 위로 왔다 갔다 하고 퇴근길의 수다를 떨며 서서 한 잔 하는 현지인들에게 완전히 둘러싸여 bar에 혼자 앉아 있던 나는 애써 태연한 척을 했다. 그렇게 태연한 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거기에 있던 사람들 중 아무도 내가 그 속에 있는 걸 이상히 여기지 않았고 주인장도 활짝 웃으며 여기 온 걸 환영해~라는 느낌으로 신경 써서 대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쭈뼛쭈뼛 어색해하면 정말 분위기가 이상해질 정도였다^^
일단 무작정 구시가지의 광장으로 갔던 다음 날.
유명한 <필라 성모 대성당> 앞에 있는 안내센터부터 들렀는데 버스 시스템에 관해 물어보러 들어갔다가 정말 매우 매우 훌륭한 지도와 팸플릿을 받았다!
요즘엔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를 얻으니 안내센터에 들러 지도나 팸플릿을 잘 안 챙기지만 옛날에는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현지 지도부터 받는 게 국룰 아니었던가?!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지만 여전히 아날로그적 방법을 종종 이용하는 나는 이런 발견이 너무나 즐겁다.
지도에는 볼거리들이 그림과 번호로 지도에 잘 표시되어 있었고 각각 볼거리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적혀 있었는데 놀라운 건 지난번 포르투의 마토지뉴스에서처럼 가볼 만한 건축물들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지도를 살펴보면 이슬람 양식의 알하페이라 궁전만 좀 떨어져 있고 문화유적과 미술관 박물관등이 타원형의 구시가지에 다 몰려 있었다. 그런데 저 작은 구도심안에 볼거리가 어찌나 많은지 정말 깜짝 놀랐다.
조금 자료를 찾아보니 사라고사는 스페인 북동부의 주요 도시이며 이름도 멋진 아라곤 자치지방의 수도라는데 역사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곳이었다. 찾아본 정보로 몇 자만 적어 보면 로마가 이베리아 반도 북부를 점령하였을 때 여기를 군사기지로 발전시켰기 때문에 로마 유적도 많고 이후에는 무어족의 지배를 받다가 또 이베리아 반도가 통일이 될 때까지는 이름도 멋진 아라곤 왕국의 수도였기 때문에 문화유적이며 박물관들이 널려 있고 게다가 화가 고야의 고향이어서 고야 박물관과 함께 미술관도 많은...... 그야말로 역사가 깊고 문화와 건축양식이 풍부한 그런 도시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나 같은 역. 알. 못이 몇 줄로 요약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문화와 역사를 가진 도시였다.
아무튼 첫날은 팸플릿을 보며 구시가지에 있는 볼거리 중... 몇몇을 선택해 유적지와 명소들을 하루 종일 돌아다녔고 이런 사진들을 남겼다.
가장 유명한 <필라 성모 대성당>
성모 마리아가 기둥을 주면서 이 위에 교회를 세우라고 했다는 그 성당.
지붕의 모자이크는 색다르게 이뻤고 이 성당 탑에서의 전망과 Puente de Piedra 다리에서의 전망은 장시간 버스여행으로 쌓여 있는 여독을 풀어 주려는 듯 선물과도 같았다.
팸플릿을 받았던 그날 나는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숙박을 하루 더 연장했다.
팸플릿을 체크하면서 본 건축물들을 하루를 더 투자해서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말 의외의 건축물을 하나 발견했는데......
응??? 자하 하디드 설계 작품이 여기에 있다고?! 그럼 또 안 보러 갈 수가 없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DDP(동대문 디자인플라자) 조차도 완공된 후 한참 있다가 볼 만큼 주류 건축가에 관심이 없다지만 자하 하디드 작품 중 하나가 이 도시에 있다니 하루쯤 더 시간을 내어서 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참 안 좋은 병인데 우리나라에 있는 건물은 안 찾아가면서 외국에서 여행하다가 발견하면 기를 쓰고 보러 간다는......ㅠ.ㅠ)
브리지 파빌리온
다음 날.
그래 여기를 가보자... 정보는 없지만 가서 일단 한번 보자! 라는 생각으로 가는 길에 팸플릿에 있던 다른 건물도 몇 개 보기로 했다. 하지만 가는 길에 보았던 건물들은 사진도 거의 안 찍을 만큼 인상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커피나 한 잔 하려고 들어갔던 카페에서 난 눈물이 날 뻔했다.
관광지 이외에는 동양인이 한 명도 안 보이고 영어도 잘 안 통하는 이 생경한 도시에서 나도 모르게 경직되어 있었는지 커피를 주문하려고 말을 꺼내는데 직원분이 벌써 내 마음을 잘 알겠다는 듯이 "괜찮아~ 어려워하지 말고 이야기해~"라는 표정으로 너무나 다정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눈빛과 표정으로 토닥토닥해주는 느낌! 주문을 받고 거스름돈을 줄 때에는 잔돈을 내 손에 꼭 쥐어 주면서 또 따스한 미소를 지어 주는데 정말 갑자기 울컥해서 눈물이 날 뻔...ㅠ.ㅠ
어제 타파스 집에서도 그렇고 내가 운이 좋았던 건지 어쨌든 이 사람들 왜이케 나를 감동시키는지!
덕분에 사라고사는 지금도 나에게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도시로 남아 있다.
그렇게 카페 언니에게 힘을 받고 이제 버스를 타고 자하 하디드 설계의 보행자 다리로 향한다.
가는 법 : 사라고사 기차역에 가까이 있어 걸어갈 수 있지만 나는 시내에서 34번 버스를 타고 제일 가까운 정류장에 내려서 걸어갔다. 간혹 구글이 안내해 주는 도보길이 차로를 막 지나가야 한다거나 걷기 어려운 길을 안내해 주는 경우가 있어서 걱정했는데 버스정류장에서 굉장히 가까웠고 기차역에서도 큰 도로를 건너가야 했지만 안전하게 갈 수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 조금 걸어가니 다리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거 뭔가 좀 이상하다.
이 적막감은 무엇인가... 어떻게 이렇게 인적이 없을 수가 있지? 의문을 가지고 다리 앞으로 갔더니 세상에나 무슨 보행자 다리가 운영시간이 있냐! 다리는 철창 같은 문으로 닫혀 있고 그 앞에 운영시간이 적혀 있었다. 오후 오픈 시간은 5시부터 저녁 9시까지! 하루를 투자해서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갈 수 없고 가까운 기차역에 가서 쉬고 놀다가 시간 맞춰 다시 오기로 했다.
기차역에서 놀다가 다시 다리를 보러 갔다. 단지 보행자 다리일 뿐인데 양 끝에 경비가 서 있었다. 내가 다리를 향해 걸어갈 때부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난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헛웃음이 나왔다. 이 다리가 뭐라고 나는 오픈 시간까지 기다려서 여기를 찾아왔으며 경비는 왜 나를 저렇게 째려보는 건지... 갑자기 현타가 와서 헛웃음이 막 나왔다ㅎㅎ
다리 내부의 모습은 상당히 유기체적이었는데 외관은 우주선 같기도 하고 내부는 에일리언 같기도 하고...
브릿지의 형태는 글라디올러스라는 꽃 모양을 시뮬레이션했다고 하는데 나는 왜 외계인의 몸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지ㅋ. 이 다리에 대해서 자료를 더 찾아보았으나 언제 지어졌고 규모가 얼마고 등등의 별로 의미 없는 정보밖에는 찾을 수가 없었다. 브릿지의 길이는 짧았고 이용자 수는 극히 적었다. 실제 이동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정말 어쩌다 한 명 지나갈까 말까 였다.
(지금은 아예 폐쇄 중이고 완전히 내부로 만드는 공사를 한 다음 모바일 센터로 이용하려 하는 것 같다.)
첫날 도착했던 기차역도 왜 그렇게 멋진가 했더니 여기가 바로 2008년 엑스포가 열렸던 곳이라고 한다.
<물, 고유자원 > 이런 주제로 당시 엑스포를 열기 위해 기차역, 브릿지 그리고 건너에 조성된 지구까지 전부 엑스포 때문에 개발된 곳이었다. 그래서 다리 중간에는 전시를 위한 공간이 있었는데 다른 섹션은 들어가 볼 수 없었고 중앙통로 이외에 이 전시공간만 볼 수 있었다.
참 이런 분위기의 공간을 만드는 데는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자하 하디드는...!
쉽게 볼 수 없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 하지만 역시나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실제로 이 다리의 공사비(3500만 유로)는 너무 비싸서 그 활용에 대해 논란이 있나 보다.
다리를 건너가 보니 이런 건물들이 등장해서 당시에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래 저 건물이 컨벤션센터였고 멀리까지 뭔가 조성되어 있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쓰레기가 굴러 다니는 것 같은 적막감... 내가 갔던 당시에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너무나 죽은 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돈을 많이 들였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는. 내가 가 보았던 엑스포 지구 중에 가장 활발했던 곳은 리스본의 엑스포 지구였다. 내가 갔던 날이 주말이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리스본의 엑스포는 도시의 온 가족이 나와서 즐기고 있는 듯한 그런 활발함이었다.
다리의 외관 형태는 이렇게 밖에 볼 수가 없었다. 외관의 사진을 찍을 때에도 양쪽의 경비분들은 나와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는데 다행히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좀 민망했을 뿐...
실제 비늘을 모티브로 설계했다는 저 외부 패널이 당시에는 금속인 줄 알았지만 섬유보강 콘크리트 패널이었네. 중간중간 삼각형의 유리가 끼어져 들어가 있고 외관의 형태는 처음 설계보다 단순해진 듯하다.
오전 오픈 시간이 지나고 도착을 해서 저녁에야 본 브릿지는 이날 하루를 전부 투자했는데 공친 시간이 더 많았다. 이젠 자하 하디드가 세상을 떠났으니 실제로 본 건축물이 하나 더 있다는 거에서 의미를 찾아야겠다.
우리나라에 있는 건축물들은 잘 찾아가지 않는 병도 좀 고치고 DDP나 한 번 제대로 찾아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