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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파리 Dec 17. 2021

21년 전에 건축사 시험 본 썰

건축사 시험의 합격에 관해 뭔가를 기대하고 들어온 사람들은 바로 나가 되겠다.


이것은 그냥......건축사 시험에 관한 추억팔이 이야기이다.

막상 따 놓고 보면 별로 쓸 데가 없으나

일찍 따 놓고 보면 심리적 안정을 얻게 되는 그런 자격증.


게다가 내가 굉장히 옛날 사람이란 걸 밝힐 수밖에 없는 오래전 시험의 이야기이다.

오전에는 법규에 관한 객관식 시험을 보고

오후에는 조건에 맞는 설계를 해서 A1 도판 한 장에 모든 도면과 투시도까지 다 그리던 시절.

그 오래된 시절의 이야기라 요즘 시험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5년제 학인증 건축학과란 것도 없었고

시험을 보려면 졸업 후 건축 실무 경험 5년이 필요했으며

엄청나게 낮은 합격률을 자랑하던 5지선다형의 예비시험을 합격해야

건축사 시험을 치를 수 있었던 시절의 이야기.

(예비시험뿐 아니라 건축기사도 가능하긴 했지만 어쨌든 4지선다도 아니고 5지선다형의 예비시험이 잠시 존재하던 때...ㅠ.ㅠ)


대학 때 건축기사 시험을 2번 본 적이 있었다.

뭐든 근본을 좀 중요시하는 성격이라......

시험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교재의 앞부분만 새까맣게 공부를 하고 봐서

보기 좋게 2번 다 낙방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렇게 시험이란 제도와 안 맞았던 나는 이번에는 학원을 좀 열심히 다녀 보기로 했다.

(그렇지! 내가 시험에 떨어진 건 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랑 제도랑 안 맞았기 때문인거지!!!ㅋ)


그것도 잘 다니던 사무소를 그만두고 준비하기로 했다.

회사까지 그만두고 시험 준비를 하다니 세월 좋네~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럴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게 아니다.

아니 오히려 시험 준비기간을 오래 끌고 갈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나에게는 없었다.


당시 거의 혼자서 양육을 하고 있던 아들의 나이가 세 살이었는데

사무실을 다니며 혼자 아이를 보며 공부를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애는 그냥 옆에 놔두고 공부하면 되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분명 육아를 홀로 책임져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기어 다니고 잠만 자는 갓난아이도 아니고

걷고 뛸 줄은 아는데 말귀는 잘 못 알아듣는...

혼자 놔두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가장 위험한 나이! 세 살의 아이였다.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은 주로 법규 공부를 하고

아이가 돌아오면 같이 시간을 보내다가 잠이 들면 겨우 밤에야 차분하게 설계 시험을 준비했다.

일주일에 두 번 종일반의 학원을 가는 날이면 엄마를 포함해 주변의 지인들에게 이리저리 아이를 맡기러 다녔고 그러면서 나는 이 짓을 두 번 다시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조건 한 번에 붙어야겠다는 생각을 아들 덕에 했다.)


5월의 예비시험은 다행히 한 번에 합격했지만

9월에 있을 건축사 시험을 위해 또다시 학원에 간 첫날.

나는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자만심에 가득 찬 얼간이였다.

강의실의 기둥 뒤쪽 제일 잘 안 보이는 곳에 혼자 팔짱을 끼고 앉아

열변을 토하는 강사의 오리엔테이션을 건성건성 들었다.

삐딱하게 앉아 있던 나의 자세는

당시 내 마음의 상태를 잘 대변해 주었던 것 같았다.


'설계를 어떻게 시험으로 평가해?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지 않겠어?!

뭐 이런 이야기까지 들어야 하는 건지~~~'

이런 건방진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두 번째 시간에 나는 과제도 다 해가지 않았다.

강사분이 과제 검사를 하는데 대충 하다가 만 과제를 당당하게 내밀었다.

창피하거나 미안한 마음도 없이 성의 없는 과제를 더 성의 없는 태도로 내밀었다.

나의 하다가 만 과제를 보고 강사분은 한숨을 쉬듯이 안타깝게 한마디 하셨다.

결코 화를 내거나 혼을 내지는 않았지만 단호하게 하셨던 그 한마디에 나는 이후 모든 게 바뀌어 버렸다.


"OO 씨는 나아질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노력을 안 하시냐고

다른 분들을 보라고 얼마나 절박하신지........"


얼.마.나.절.박.하.신.지.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절박하신지!

.

그제사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눈에 보아도 제도가 많이 힘들어 보이는 분들이 잘 안 되는 제도를 열심히 하시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절박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당시에는 시험 자격이 좀 달라서 설계 전공이 아니어도 응시를 할 수가 있었다. 어렵게 다른 건축 일을 하시다가 이 자격증이 꼭 필요해서 생존을 걸고 준비하는 분들이 강의실에 꽤 있었다.)


갑자기 그분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내 모습이 너무나 창피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뭐가 잘 나서......

시험을 준비하러 왔으면 시험제도에 나를 맞춰야지!

진짜 뭐가 잘 났다고 이렇게 거만하게 앉아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인가.

부끄럽지도 않은가 이렇게 절박한 사람들 앞에서.


강사분이 옆에서 이런저런 말씀을 계속 하시는데 그 앞에서 그만 눈물이 와락 나와 버렸다.

.

너무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그 시간 이후부터 나는 180도 다른 사람이 되었다.

과제를 꼬박꼬박 열심히 다 해 간 것은 물론이고

강의실에도 일찍 도착해서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았다.

내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강의실의 맨 앞자리!!!


그렇게 3개월을 다른 사람이 되어 미친 듯이 이를 악물고 준비한 덕에

한 번에 건축사 시험에 합격할 수가 있었다.

운이 좋았다.

A1 도판 하나로 평가를 받던 시절이니 어느 정도 기준에 충족이 되면 합격점수가 나왔던 것 같다.


내 인생에 시험운은 이때 다 쓴 것 같다.

한 해에 예비시험 보고 건축사 따고 또 겨울에는 미뤄두었던 운전면허도 따고

(이것 또한 이론+실기+주행이 다 있던 시절...ㅠ.ㅠ)

한 해에 국가시험을 3개나 통과했으니 다음 해에는 고시공부를 해야 하나

뭐든 하면 다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건축사를 딴 것보다 기뻤던 건 무언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던 내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이 내게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입시공부도 대학공부도 그렇게 절실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런 경험이 처음이었다.

너무 구태의연한 말이지만 뭔가 목표를 향해 끝까지 해 낸 경험은 그 자체로도 인생에 커다란 선물 같았다.


그렇게 21년 전에 선물같이 받았던 쓸모없는 건축사는 상당히 오랜 기간 책상 서랍에만 있었다.


사무소를 개업할 능력은 안되니 별로 쓸모는 없었지만

매년 "엄마는 왜 여름마다 공부를 해?" 라는 말을 안 들었으니 좋고

일을 구할 때마다 구차하게 경력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좋고

20년 동안 시험이란 걸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았으니

그 자체로도 충분했다.




건축가라는 말은 나에게 맞지 않는 거 같아 늘 스스로 건축설계 노동자라고 부르는데

그나마 공식 명칭을 하나 고르라면 차라리 건축사가 낫다.


그런데 왜 브런치에는 건축설계 종사자가 고를만한 적당한 명칭이 없냐.

건축가는 레벨도 안 되고 꺼리는 표현이라 고를 수가 없고

디자이너는 그만큼 디자인 능력이 안 되는 것 같아 고르기가 그렇고

정말 마땅한 게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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