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원하던 브런치의 작가로 선정이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작가 소개를 채우는 것이었다.
적당한 사진을 하나 골라서 대문에 올리고 내용을 채우기 위해서 프로필 편집에 들어갔다.
문장으로 소개할 수 있는 공란이 하나 있었고 키워드를 통해 나를 소개할 수 있는 키워드 선택란이 있었다.
글 주제에서 최대 3개.
직업에서 최대 3개.
글 주제는 대략 고를만한 것이 적당하게 3개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직업이었다.
내가 직업을 직접 입력을 할 수는 없었고 무조건 직업 중에 3개를 고를 수가 있었는데
음.........
주부... 그래 주부는 고르자.
늘 일을 하며 살아왔지만 주부라는 정체성은 항상 가지고 가는 거니까.
이제는 다 컸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식을 키워 왔고 살림은 늘 하면서 살고 있는 거니까 주부는 적당하다.
그다음이 문제다.
건축가... 건축설계를 하고 있긴 하지만 건축가는 아니다.
평소에도 건축가라는 명칭은 아무에게나 붙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건축가란 이름을 붙일 수는 없었다.
(실은 한동안 건축가를 키워드로 해 놓은 적이 있다. 마땅히 건축 쪽에 다른 직업명이 없기도 했고
브런치가 확실히 전문성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호기를 부려 보았었다...)
아니다.
아무래도 건축가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럼 디자이너?!
나는 실무를 열심히 하는 노동자에 가까운 사람이라 디자이너라는 명칭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이것도 좀 그렇다.
그럼 1인 사무소를 하고 있으니까 자영업자?!
이것도 아직은 사업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해당사항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고른 게 최종적으로 프리랜서.
그러고 나서 남은 하나의 직업을 더 고를 수가 있는데 마땅한 게 없다.
나의 정체성은 상당히 다양한데 고를 게 없네......
싱글맘 겸 워킹맘.
졸업한 지 오래되었지만 대안학교의 학부모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매우 영향력을 미친)
언제 그만 둘 지 모를 (대학) 강사.
한 때 제품도 만들어서 팔았던 비즈공예가.
여행가 (라고 하기엔 많이 모자란 여행자)
사진가 (라고 하기엔 그냥 건물 찍기 좋아하는 사람)
작가 (라고 하기엔 작가이고 싶은 사람)
그리고
... 또 앞으로 채워질 게 많고 싶은 사람
참 적당한 게 없네.
브런치에 들어올 때마다 매번 자기소개를 고치고 고민을 해보지만
적당한 문구도 키워드도 찾지를 못해서 계속 채우지를 못 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이런 생각이 든다.
꼭 채워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겠냐고.
한 자락 비워 놓는 것도 나를 나타내는 하나의 방법이지 않겠냐고.
브런치의 키워드로는 채울 수 없는 나만의 영역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