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중인 대학에서 몇 년 간 <기업가 정신과 창업>이라는 교양 과목을 강의하면서 기업가 정신을 프런티어(Frontier), 탐험가(Explorer), 그리고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이라고 말하곤 했다(지금은 필자가 아닌 다른 교수님께서 강의 중이다).
기업가는 목표에 닿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요구되므로 '탐험가'라고 할 수 있고,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을 겪어내야 하기 때문에 '프런티어'다. 그리고 특히 IT분야에서는 어마어마한 상대를 만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다윗'이기도 하다. 하지만, 열정 하나로 용감히 뛰어든다고 프런티어가 되고 다윗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윗은 물맷돌을 원하는 대로 던질 수 있었고, 영화 속의 탐험가는 채찍이던 권총이던 최소한의 무기는 가지고 다니지 않는가? IT분야의 기업가 정신은 자본력을 갖춘 프런티어, 탐험가, 다윗이어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자본력을 갖출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수 있을까?
결국 기업가 정신은 철저한 준비가 요구된다. 흔히 쓰는 말로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오는 법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창업 자금을 혼자만의 힘으로 갖추는 것은 정말 극소수의 이야기다. 대부분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특히 가족과 친인척) 은행을 알아보게 되는데, 이게 말처럼 순탄하지 않다. 가족이라고 여유가 있을리 없고, 아무리 가까운 친척이라도 돈을 선뜻 내줄것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가끔 TV에서 친구에게 큰 돈을 빌리는 것으로 우정을 확인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실생활에서 창업자금이 우정으로 확보될리 만무하다. 그리고 가까운 지인 설득도 쉽지 않은 사업초기에, 지불 능력 검증을 요구하는 은행 문턱을 넘기 쉬울리 없다. 무엇보다 오늘날의 창업은 대부분 IT 기반이 없으면 안되니, 넓은 의미에서는 IT창업이라고 보아도 될 듯 하다. 즉, IT(정보기술)에 대한 이해와 활용 경험이 필수요소인 것이다.
IT창업에 호기롭게 도전한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문제를 겪었다. 내가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이미 누군가의 실현 목전에 있을 수도 있다. 또 머리속 구상으로는 너무 멋지고 획기적이지만 사실 현실 가능성이 없을 수도 있다. 방구석 아이디어는 사업이 아니다. 그 시장에 뛰어들어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이디어를 다듬어 구체화 시킨 후 설득력 있는 '사업 계획서'를 만들었때 시작되는 것이다. 누군가를 설득할 수준이 안되는 아이디어로 돈을 빌릴 수 있을리가 만무한 것이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냅킨에 끄적였던 창업 계획의 성공이 나에게도 일어날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IT비즈니스는 철저하게 기술의 비즈니스화(R&BD; Research & Business Development라고 표현한다)를 강조하는 분야임도 기억해야 한다. 창업자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만 그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력을 스스로 갖추고 있거나 최소한 기술적인 문제를 이해할 수준은 되어야 한다. 창업자 본인을 제외하면 사업 아이디어를 100% 현실화할 수 있는 개발자는 없다. 내가 직접 만들어 내지 않더라도, 창업자는 최소한 비상 상황에서는 개발자 혹은 기획자로 실무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창업자를 삼국지의 조조형 인물이라고 말한다. 조조는 중요한 전쟁에서 스스로가 전선에 나섰을 뿐 아니라, 언제라도 직접 병법을 풀어낼 준비가 되어있던 인물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창업자는 공부를 소홀히 하면 안된다는 점이다. 특히 경영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재무, 회계, 인사 등의 기본적인 경영학적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 때로는 아주 냉정하게 자신의 조직과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어야 한다. 당장의 매출이 아니라 예상 수익과 지출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재투자 타이밍과 기회비용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또한, IT비즈니스 창업자는 반드시 사업화 프로세스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기술 사업화는 내외부 환경의 분석과 사업 아이디어의 검토에서 출발한다. 유망한 사업을 발굴하고 이 중 실행 가능성이 높은 사업을 선별한 후 각 사업에 맞는 사업 전략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세워야 한다. 경영자는 이러한 사업화 프로세스에 대해 충분한 이해도가 있어야 한다. 누구보다 냉정하게 자신의 사업 평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많은 창업자들이 겪을 경험을 예고하고자 한다. 대다수 창업자들은 자신들이 받아든 투자 평가 성적표에 실망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다. 누가 아직 검증도 되지 않은 초기 창업자에게 필요자금 전액을 투자해 주겠다 나서겠는가. 이것은 외부에서 바라본 나의 사업에 대한 객관적 평가서다. 때로는 내 아이템이 인정받지 못함에 억울하거나 답답한 경험을 겪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 들 수록 왜 이런 평가를 받았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 다시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 봐서 평가절하된 사업을 어떻게 하면 매력적 투자 대상으로 바꾸어낼지를 고민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면 자신의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투자자'로서의 마음가짐으로 냉정하게 다시 한번 들여다 보길 바란다. 그리고 이 계획에 투자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평가를 받아보자. 정말로 매력적인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였는가?
* 이 글은 필자가 온라인 뉴스 매체인 파인드비(www.findb.co.kr)에 연재 중인 칼럼 중 2022년 1월 6일자 칼럼을 재구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