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너는 무엇을 빼앗겼니?
들어가며
엄마와 딸의 대화 형식으로 글을 썼습니다. 10대에서부터 20대, 30대, 40대를 통과하는 딸이 인생의 시즌마다 엄마와의 대화를 거울삼아 자신의 내면을 비추며 관계를 조명합니다. 현실에 기반한 자전적 소설로, 이 딸은 때론 마주하고 싶지 않은 저 자신이자 제 안에 있는 모든 질문들입니다. 그리고 답이 없는 제가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빼앗기는 자와 찾아오는 자
열여섯의 은서는 오늘도 캄캄한 집으로 혼자 돌아오자마자 멀리 있는 엄마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집에는 컴퓨터도 없고 우편으로 부치자니 닿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팩스 머신으로 드르륵드르륵 편지를 밀어 넣었다. 신호음이 가고, 위로 빨려 들어가 아래로 똑같은 편지를 뱉어내는 팩스기는 ‘이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역시 없다'라고 놀리는 것 같았지만 은서는 엄마의 답장을 기다렸다.
엄마, 좋은 하루 보냈어? 오늘도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누가 나한테 말 시킬까 봐 음악도 안 나오는 이어폰을 꽂고 창밖만 바라보고 왔어. 누가 한마디라도 시키면 울어버릴 만큼 마음이 바닥이었거든. 있잖아, 엄마. 나는 정말 끔찍한 인간인 거 같아. 지난번에 말했던 학교 프로젝트 있잖아. 되게 중요하다고 했던 거. 그걸 내가 몇 날 며칠을 고심하다가 되게 좋은 아이디어가 생겼거든? 근데 친구들과 나누지를 못하겠다는 거야. 왠지 내 아이디어를 다 빼앗기고 도둑맞을 것만 같았어.. 지난번에도 몇 번 그런 일 있었잖아. 그래서 내가 다시는 병신 짓 안 하겠다고 다짐했거든… 그래도 이건 그룹 프로젝트니까 친구들하고 공유하고 더 발전시켜 나가야 좋다는 걸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에서는 자꾸 방망이질을 쳐대. ‘넌 이용만 당할 거야. 결국 판만 깔아주고 끝날 거야. 또 뒤통수만 맞게 될걸?’ 이런 마음이 자꾸 들어. 나쁜 친구들도 아닌데, 나 왜 이런 걸까?
엄마 나는 있잖아. 어떨 땐 내가 겉으로는 고고한 척하는 얼음장 같은데, 속으로는 불덩이가 활활 타오르는 화산고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 화력 높다는 파랗고 하얀 불 있잖아. 잔뜩 날을 세운 하얀 불. 이 차갑고 칼날 같은 불이 자꾸 나에게 속삭여. 내가 무엇을 빼앗겼는지 세어보라고 하는 거야. 그렇게 자꾸 계수하다 보면 내가 그 칼날에 베이던지 베어 버리든지 할 거 같아. 내가 하는 생각이 백 퍼센트 사실은 아닐 텐데 왠지 모르게 ‘모든 것이 부당했다'는 억울함과 계속해서 빼앗길 것만 같다는 두려움이 나를 꽁꽁 묶어 놓는 거야. 도대체 왜 그러는 거지? 미친 걸까?
은서는 아프지 않지만 깊은 잠이 들고 싶어 어른용 종합감기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아마 3시간 정도는 깊이 잘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죽음 같은 잠에서 깨어나고 나면 모든 감정은 다 희미해져 있을 것이다. 강도에게 쫓기는듯한 조급함도, ‘너 정말 별로야' 스스로 비웃는 자책감도, 바닥을 드러낸 인색함도.
그리고 은서가 잠에서 깨어날 즈음, 기다리기라도 한 듯 드르륵거리며 팩스기는 종이 한 장을 뱉어냈다. 이 편지를 누가 보기나 할까 알 길이 없던 그 수취인 불명의 편지가 정말 엄마에게 가서 닿았고 엄마는 엄마의 시간에 답장을 보내왔다.
은서야, 오늘 하루 고생 많았지? 은서가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문을 열어주면 참 좋았을 텐데, 텅 빈 집으로 혼자 들어오게 해서 미안해. 그래도 엄마는 오늘도 은서 덕분에 주저앉지 않고 잘 일할 수 있었어. 우리 은서도 오늘 전쟁터에 나가 있을 텐데, 엄마도 오늘 열심히 해내야지 생각하면 배고픈지도 모르겠고, 거절 같은 거 당해도 창피한 것도 없더라. 은서야, 네가 느끼는 감정들 있잖아. 왠지 모르게 계속 빼앗길 거 같아서 나누기 싫은 마음. 그런 마음을 들여다보았을 때 드는 자책감. 왜 이러는지 이유를 모르겠으니 미친 사람 같기도 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답이 안 나오니 더 두렵기도 하지.
엄마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까? 엄마 어렸을 때 말이야, 시골 살았잖아. 다섯 살 때인가 그랬는데. 농사철에 할머니 할아버지랑 동네 어른들이 다 밭일하러 나가셔야 해서 어린 엄마를 봐줄 사람이 없는 거야. 그래서 할머니가 엄마 허리춤에 기다란 줄을 하나 매어놓고는 마당 말뚝에 그 줄을 묶어 놓고 나가셨어.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옛날 시골에서는 종종 그랬다? 나는 처음엔 내가 말뚝에 묶인 줄도 모르고 말뚝 근처에서 빙빙 돌면서 꽤 오래 놀았어. 돌멩이랑도 놀고, 땅에 그림도 그려가면서. 근데 좀 지나니까 하늘이 보이는 거야. 그리고 앞마당 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감도 보이고, 그걸 먹는 새도 보이고. 순간 그 감을 따 먹어보고 싶어서 나무에 올라가려 했더니, 턱! 하고 그 줄이 엄마 허리를 잡더라. 생각보다 줄이 엄청 짧았던 거야. 그러다 대문 밖에서 동네 언니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저 뒷동산에를 오른다는 거야. 그래서 또 나도 따라가려고 힘껏 뛰었더니 또 턱! 하고 줄이 엄마를 잡아다 앉혔어. 나도 언니들 따라 뒷동산에도 가보고 싶고, 저 산 너머 옆 마을에도 가보고 싶었는데. 날 놓아주지 않던 그 짧은 끈과 단단한 말뚝이 어찌나 매정하던지 한참을 울었다. 봐주는 사람도 없긴 했지만….
은서야. 우리 삶엔 다 그런 말뚝이 있어. 우리 삶을 계속해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고, 같은 곳을 빙빙 돌게 만들고, 헛수고하게 하는 어떤 습성, 패턴, 사이클이 있단다. 예를 들면 네가 말한 그런 거지. 별것도 아닌데 자꾸만 움츠러드는 손길과 도둑맞을 것 같은 불안함이 너의 일상을 발목 잡는 말뚝인 거야. 이 말뚝. 즉, “안되게 하는 힘"은 언제 나타나는지 아니? 바로 뭔가 시도해 보고, 꿈꾸어 보고, 살아 보고, 일어나 보려고 할 때 비로소 나타난단다. 내 허리춤을 딱 잡아서 못 가게 하는 어떤 힘으로 말이야. 참 신기하지? 그 말뚝에 묶일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니? 삶이 소중히 여겨지지 않고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다'라는 황량한 마음이 들어. 말뚝에 묶여 문밖만 바라보며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삶은 정말 지루해서 차라리 하루가 얼른 저물어버렸으면 하거든.
근데 은서야, 그런 말뚝에서 어떻게 풀려나는지 아니? 그렇게 빼앗긴 마음이 들고, 앞으로도 계속 삶의 불운에, 관계의 상처에 모든 걸 빼앗기고 말 것 같은 마음이 들 때 말이야. 그래서 내 삶이 인색함으로 똘똘 뭉쳐있을 것만 같고 그런 나 자신이 경멸스럽지만 달리 어찌할 바를 모르겠을 때. 그럴 땐 말이야, 기억해야 해. 원래 처음부터 내 것은 없었다는 것을. 내가 무언가를 잘해서, 무언가를 받을 만해서 받았던 건 하나도 없었어. 내가 내 삶에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 - 우리가 숨 쉴 수 있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고. 꿈꿀 수 있고. 우리에게 선한 것을 택할 수 있는 용기가 있고, 우리가 진리와 아름다움 가운데 살 수 있고, 우리가 몸을 일으켜 움직일 수 있는 것 - 우리 삶에 있는 모든 선의와 모든 좋은 것들은 사실 우리가 받을 만해서 주어진 것들이 아니라는 거야. 엄마가 딸로서 살 수 있었던 것과 너의 엄마가 될 수 있었던 것. 누군가의 친구가 될 수 있고,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누군가를 일으켜 줄 때도 있고, 누군가의 손길을 구할 수도 있다는 것.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모든 건 사실 하나도 당연한 게 없어. 그러니까 원래도 내 것은 하나도 없었던 거고 그러므로 빼앗길 것도 없는 거야. 은서야, 계수하지 마. 세어보지 마. 계산하지 마. 원망하지 말고 움켜쥐지 마. 세상엔… 다르게 셈하는 방법이 있단다.
말뚝에서 풀려나는 방법이 하나 또 있다? 그게 뭐냐면, 친구를 구하러 달려가는 거야. 저기 저 나무에 달린 감을 따 먹고 싶을 땐 말뚝에서 풀려날 힘이 안 나와. 언니들이 뒷동산에 놀러 가는 걸 따라갈 때도 말뚝에서 풀려날 만큼의 힘이 안 생기지. 근데 만약에 네 눈앞에 너의 제일 친한 친구가 물에 빠져서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걸 보고 있다고 생각해 봐. 그럴 때 너에게는 초인적인 힘이 생길 거야. 줄이 풀리는 게 뭐야, 말뚝이 뽑혀라 달려갈 힘이 생겨. 그때는 풀려나는 게 아니라 부수고 가는 거지. 친구를 구하고 나서 너는 알게 될 거야. 네가 자유로워졌다는 걸. 빼앗긴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친구를 구할 수 없어. 친구에게 빼앗길 것 같거든. 하지만 너는 쫓아가서 빼앗긴 걸 다 찾아올 사람이야. 생명을 구할 사람이지. 너는 그렇게 말뚝에서 풀려나 자유로워진 사람. 그게 바로 내 딸 은서야.
은서는 엄마의 편지를 품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하얀 불이, 베어버릴 것 같은 불이 다 사그라들고 따뜻한 온기만 남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말뚝에서 정말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 길로 가고 싶다 되뇌었다. 은서의 마음 안에는 원망과 불안과 질투와 분노와 조급함의 오물로 가득 찬 바닥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바닥이 어떤 맑고 투명한 강물로 덮어짐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넉넉하게 잠길 만큼 깊고 안전한 강물이었다.
• Soli Deo Gloria •
* 본 콘텐츠는 창고살롱® 레퍼런서® 이윤승님과 창고살롱이 공동 기획, 편집하여 유료서비스 <레퍼
런서의 글> 구독 콘텐츠 서비스로 게재된 글입니다. 원 제목은 <관계라는 거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