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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킴 May 28. 2021

이야기의 힘 (The Salt Path)



바람이 우릴 데려가는 곳으로



A : “우리는 집이 없는 홈리스예요. 남편의 친구가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고, 그에게 속아 집을 잃었어요. 이 길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지 모르지만 그냥 걷는 중이랍니다.” 


사람들은 당황해 한다. 어떻게 반응할 지 몰라 서둘러 대화를 끝내고 자기 갈 길을 간다.  


B : “우리는 홈리스예요. 집을 팔았거든요. 중년의 모험을 좀 해보기로 했어요. 바람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으로 가는 중이랍니다. 지금은 바람이 이쪽 방향으로 우리를 데려오니 이 길을 따라 걸어요. 이 길이 끝나면 어디로 갈거냐고요? 모르죠. 그저 바람이 향하는 곳으로 가게 되겠죠?”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와우, 정말 멋있어요! 감동이예요!’ 라고 반응한다. 대화는 즐겁게 진행되다가 서로의 행운을 빌어주는 것으로 끝이 나고, 다시 길을 걷는다. 




위 A와 B는 동일인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50살의 중년 여자. 남편의 절친한 친구의 사기와 배신으로, 평생동안 일구어 온 삶의 터전을 잃는다. 오랜 법정 싸움으로 가진 돈마저 잃었는데, 설상가상 집에서 쫓겨나기 몇 주전 남편은 다리 근육부터 시작하여 목 근육이 굳어지며 죽어가는 불치병 판정을 받는다.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이 부부가 선택한 것은 영국 남서쪽 해안을 따라 만들어진 630 마일 (약 1,000 킬로미터)의 길을 걷는 것. 길 끝에 무엇을 있을 지 모르지만 일단은 걸으면서 생각하기로 한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안부 인사처럼 얼마나 오랫 동안 트랙킹을 할 것인지, 목적지가 어디인지, 생업이 무엇이기에 그리 긴 여행을 할 수 있는지 등등을 묻는다. 처음에는 솔직하게 A처럼 답을 주었다. 그러다, 듣는 이들의 반응에 무안해진 이 커플은 ‘집을 빼앗겼다’를 ‘집을 팔았다’로 살짝 각색했다. 그것이 B이다. 반응은 천양지차다. 


단어 하나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사뭇 다른 대화의 풍경. 이후로는 다른 트랙커들을 만나면 계속해서 B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기하게도 각색된 이야기를 반복하다 보니 마음에 가득했던 슬픔이 작아지는 경험을 한다. 그래서 자문한다. 만약에 이 꾸며낸 이야기를 계속 하다 보면, 상실감이 없어지고, 마침내 고통 없이 현실을 마주할 수 있을까? 하고. 남편이 죽어가는 상황에 대해서도 이 아내는 같은 맥락으로 생각한다. 혹시 의사가 오진한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 읽고 있는 책 <The Salt Path> (Penguin Books - Raynor Winn 씀)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찾아보니 한국에서는 올해 3월에 ‘쌤앤파커스’ 출판사에서 <소금길>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위 A와 B의 나레이션은 영어 원서에서 그대로 가져와 내 임의대로 한국말로 옮겼다.)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실제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중년 부부의 630 마일의 걷기 여정을 그 아내가 기록한 글이다. 책은 아직 중간에 못 미쳤다. 더불어 그들의 걷기 여행도 그 길의 중간 즈음에 이르렀다. 





스스로를 설득시키는 이야기의 힘


같은 상황에 대한 다른 해석이 불러오는 내외부의 반응이 흥미롭다. 상황을 어떻게 보고, 어떤 이야기를 구성 하느냐에 따라서 세상은 다르게 반응한다. 세상뿐이랴. 그 이야기를 지어낸 사람조차 지어낸 이야기가 만들어 내는 분위기에 설득 혹은 전염된다.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힘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신체적으로 약체임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서 최종 포식자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들의 이 ‘이야기 구성 능력’에 있었다고 유발 하라리 (Yuval Harari: 역사학자, 철학자)는 책 <사피엔스>에서 말했다. 그들은 이야기를 짓고, 전달하고, 다시 재구성하는 이 능력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와 ‘적’에 대한 개념을 만들어내고, 적과 싸우기 위한 대의명분을 만들어 하나로 뭉쳤다. 그리하여 인류는 개개인의 연약함을 뛰어넘는 집단적 힘을 창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는 작동되지 않은 냉동고에 갇힌 사람이 다음 날 아침에 얼어 죽은 채로 발견된 안타까운 사례는 우리의 마음속 나래이션(이야기)이 어떻게 현실화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실온 10도의 작동되지 않는 냉동고에서 ‘냉동고에 갇혔으니 얼어 죽겠구나’ 하고 절망했다.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이 아닐 수 없다.  


위 책 속의 커플이 현실을 비틀어 만든 이야기. 이 ‘이야기’에 진심을 더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제일 먼저는 그들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던 무겁고 어두운 마음이 사라질 것이고, 이야기 속의 여행객이 되어 걷는 발걸음은 스프링을 단 듯 가벼워질 것이다. 나아가, 중년의 나이에 아무나 도전하기 힘든 멋진 모험을 하고 있는 자신들이 무척 자랑스러울 수도 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경외에 찬 표정을 볼 때면 오랜 걸음으로 지친 다리에 새로운 힘이 돋아 날 것이다. 또, 딱딱하고 추운 텐트 속에서 잠을 자고, 며칠씩 맛없는 국수로만 연명하는 것이 하나의 영웅담이 되어 그들의 마음을 크고 굳세게 할 것이 분명하다. 630 마일의 아름답지만 험한 여정에서 육체적으로 힘들고 돈 없이 가기는 집을 잃었든 집을 팔았든 매 일반이다. 집을 판 돈이 어딘가에 있다고 믿으며 마음의 살을 찌우고 걷는 다리에 힘을 주는 편이 훨씬 지혜로운 일이다.  





꿈을 꿀 때 이야기는 현실이 된다


이혼과 사업 실패로 휘청거릴 때, 나 자신에게 물었던 하나의 질문이 당시 나를 살렸고, 지금의 나로 이끌었다. ‘만약 내가 안정된 가정과 직장/사업체를 가지고 있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때 얻은 답은 ‘책을 읽고 여기 저기 자연의 아름다움을 따라 걷는 것’이었다. 


실행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독서 모임에 참여하면서 책을 읽었고, 틈나는 대로 걸었다. 


모든 것이 안정되었을 때 (당시에는 ‘안정’이 키워드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지금’ 하고 있는 것에서 오는 심적 평화는 매우 컸다. 일단,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힌 것 같은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현실에 허덕이다 나이가 들고 말 것 같았던 불안감이 옅어져 갔다. 그리고, 그것들은 내 삶의 ‘우선 순위’가 되어, 방향을 잃을 때마다 길라잡이 역할을 충실히 해 주었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며 즐거웠고, 걸으며 행복했다.  


꿈을 꾸면, 미래의 상상하는 일을 현실로 가져올 수 있다. 생생하게 꿈을 꾸고 그 꿈을 믿을 때, 그때부터 우리는 다른 현실을 산다. 바라는 일이 이루어진 것을 상상하면 가슴은 부풀어 오르고 온 몸 구석 구석 핏줄을 따라 생기가 흐른다. 꿈을 이루었다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이미 꿈을 이룬 사람 특유의 자신감과 여유가 넘친다. 세상은 살 만하고 아름다운 것이 되고, 스치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너그러워진다. 


그래서 상황이 절망적일수록 반드시 꿈을 꾸어야 한다. 지친 몸을 벌떡 일으켜 앞으로 나아가도록 추동하는 ‘강력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자신이 만든 꿈에 스스로 설득되도록, 또 당연하게 믿어질 정도로 정교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몸과 마음에 늘 생(生)의 에너지가 차고 넘치도록 해야 한다. 




“We do not need magic to change the world, we carry all the power we need inside ourselves already: we have the power to imagine better.” J. K. Rowling.  
“우리는 세상을 바꿀 기적이 필요치 않다. 우리는 이미 우리 안에 모든 힘(능력)을 가지고 다닌다: 우리는 더 나은 것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조앤 롤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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