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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킴 Jun 12. 2021

장상맞은 내 외모 수난사





할머니가 물려줘 놓고!


나의 외모 수난사는 그 역사가 매우 깊을 뿐 아니라, 얽힌 스토리도 다양하다. 어린 시절 나는 눈이 매우 작았다. 눈두덩이에 지방이 볼록 올라와 있어서 그렇지 않아도 작은 눈을 더 작게 만들었다. 내 눈에 얽힌 에피소드는 할머니께서 자주 애용하셨다.


내가 태어날 때 나를 받아주신 할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나는 태어나서 일주일동안 강아지 새끼가 막 태어나면 눈을 못 뜨는 것처럼 그렇게 눈을 뜨지 못했다고 한다. 하루 이틀이 일주일이 되어가자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일주일 정도 후에 실눈 같은 눈을 떠서 안도했다면서 주변 분들과 깔깔거리고 웃으셨다.


20대가 막 되어서 아버지의 고등학교 앨범을 본 적이 있다. 헉! 놀랬다. 젊은 아버지의 눈은 내 눈을 빼다 박아 놓은 듯 똑 같았다. (아버지 눈은 성인이 되신 후에 지방이 빠져 내 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눈을 찢어진 매의 눈으로 살펴보았다. 그랬다. 내 눈은 할머니와 아버지의 계보를 잇고 있었다‘할머니, 내 눈은 할머니가 물려주신 거잖아요!’


내 눈만 수난을 당한 것은 아니다. 내 코는 일명 ‘방석코’이다. 좌우 콧망울이 크고 가운데도 넉넉하게 넓어서 어른들은 에둘러 ‘복코’라고 불렀고, 내 오빠들은 ‘돼지코’라고 놀렸다. 내 코는 내가 볼 적에 할머니코를 닮았다. 할머니는 내 코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늘 내 코는 할머니코보다 더 크다고 이야기하셨다. 은근히 할머니 코는 내 코에 비하면 좀 더 낫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 하셨다. 


그 파릇파릇한 나이에 나는 할머니 외모에도 밀렸다. 어흑!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내가 자주 듣던 말이 있다. “우리 딸은 장상맞게 못생겼는데 공부는 맨날 1등 한당께.” 엄마가 딸인 내가 학교에서 성적 우수상 등을 타오면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하면서 애용하시던 문장이다. 학창 시절 내내, 상을 타고 성적이 잘 나올 때 마다 들었던 말이기도 하다. ‘장상맞게’는 전라도 사투리 중 하나로 ‘매우, 정말’ 등의 뜻을 가진 말로 뒤에 나오는 말의 정도를 꾸며주는 말이다.


내가 얼마나 공부를 잘하는지를 강조하고 싶었던 엄마의 전술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공부 잘한다는 소리보다 ‘장상맞게 못 생겼다’는 말만 내 마음에 장상맞게 꽂혔던 것이다. 엄마는 나 공부 잘하는 것만 자랑하실 것이지, 왜 나의 생김새까지 자랑(?)하셨을까?


아직 끝이 아니다. 내가 초등학교 5~6학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나보다 세 살 많은 막내오빠가 엄마한테 한가지 제안을 했다. 내가 공부도 잘하고 나름 똑똑한데, 외모가 너무 멍청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수가 없는 안경이라도 씌워 줘서 좀 똑똑한 이미지를 만들어 주자고 했던 것이다.나는 그때 ‘아, 이제 나는 실눈에 돼지코에 멍청해보이기까지 하는구나’ 생각했다.


에구, 안경은 무슨 소용이었을까? 


그때 그냥 오빠가 ‘내 동생은 얼마나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줄 알아?’ 라고 친구들한테 몇 번만 자랑해 주었으면, 안경 없이도 오빠가 바라던 일이 이루어졌을 텐데. 오빠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어쩌면 속으로 ‘멍청해 보이는데, 사실은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는구나!’라는 생각을 저절로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전의 매력, 뭐 그런 거 있쟎은가?





능력 있으면 되는 줄 알았더니


나는 일찌감치 ‘이런 멍청하고 못생긴 외모’로도 경쟁력이 있으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자각이 있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고, 내내 성적이 좋았던 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대학교에 들어갔다. 지성인들이 모인다는 그곳, 그래 그곳에서는 조금 다르겠지 생각했다.


드디어 나의 반짝이는 스마트함이 내 외모가 드리우는 달갑지 않은 기운(?)을 시원하게 날려 버릴 수 있겠구나 하며 입학을 기다렸다.


그 기대와 설렘은 얼마 못 가 박살이 났다. 대학교 1학년 가슴 설레며 기다리던 첫 축제 때였다. 늦은 봄이였나? 계절은 잘 모르겠고, 날씨는 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팔을 입었고 발가락이 보이는 여름 샌들을 신었다. 동기생 남학생 한 명이 내 발가락을 지적했다. 여대생 발가락이 왜 그렇게 생겼냐고 하면서 비웃음 같기도 한 이상한 웃음을 날렸다. 그때까지 멀쩡했던 내 발가락이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그나저나, 여대생 발가락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야 하는 거니? 물어볼 걸 그랬다.


그 친구 상당히 맹하다. 내가 여대생이었으니, 여대생 발가락은 내 발가락같이 생겼겠지!






대학을 거쳐 사회 생활을 하며, ‘여자는 예쁘고 봐야 한다’는 말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나는 나름 능력 있는 사회인이었다.하지만 나의 비즈니스가 성공하는 것을 본 일가 친척들은 여자가 그래봐야 소용없다고 했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하면서 예쁜 것이 장땡이라고 했다. 


이젠 짜증이 났다. ‘여자는 안 예쁘면 다른 것을 아무리 잘해도 안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진취적 성향과 뛰어난 비즈니스 감각은 별로 중요치 않았다. 급격히 남자이고 싶었다. 그럼 이런 소리는 안 들어도 되겠지 싶었다. 늦게 결혼을 했다. 이제 괜찮을까 했던 생각은 방심이었나? 이번에는 객관적 사회적 지표로 볼 때 남편보다 뛰어난 나의 능력이 문제가 되었다. 여자가 더 잘나면 남편의 기가 죽는다고 했다. 그래서 기가 죽었는지 전남편이 외도를 했고, 우리는 이혼을 했다.


그러자 또 다시 내 외모와 나의 적극성 등이 문제가 되었다. 나는 비즈니스 능력만 뛰어나고 남편을 배려치 못한 ‘지혜롭지 못한’ 여자가 되었다. 누군가는 내 성격이 ‘여자로서는’ 너무 ‘드세다’고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남편 간수도 제대로 못했냐며 나를 타박했다. 그러게 애교도 부리고 외모도 좀 꾸미지 그랬냐고 했다.


‘아, OO, 뭐 어쩌라고?’ 나는 속으로 육두문자를 날렸다





어쨌거나 자랑스럽다


거울을 본다.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도 내 미모는 빛이 난다. 어렸을 때 눈두덩이에 소복하던 지방은 참으로 내 귀여움의 원천이었다. 세월 따라 그 지방이 사라진 자리에 수술 없이 쌍꺼풀도 생겼다!


앞에서 보면 방석코라는 내 코는 옆으로 봐야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옆에서 보면 콧날이 우뚝 솟아 있어, 나름 높은 콧대를 자랑한다. 목젖이 보이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 호탕하게 웃는 나의 웃음은 다른 사람들도 덩덜아 웃게 만들 정도로 전염성이 강하다. 일명, 백만불짜리 웃음이다.


갖은 수난에도 내 미모는 여전히 건재하다. 더불어 나는 남들이 말하는 ‘못생긴’ 외모를 뛰어 넘느라 다른 삶의 기술들도 터득하고 연마했다. 어쨌거나 자랑스럽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예쁘다! 하하하!






이미지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fn_pMME7M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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