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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킴 Aug 20. 2021

대체 누굴 닮아 그러니?

집안 곳곳을 어지르는 아들에 대한 고찰





분명 돌연변이일 거야!


학교에서 막 돌아온 시현이의 동선을 따라, 책 가방, 교복, 운동복 등이 거실 여기 저기에 죽 깔린다. 시현이 방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방 바닥부터 시작해서 책상과 침대 위에도 책과 양말 등 온갖 옷가지들이 널려 있다. 먹고 난 간식 그릇은 먹은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다. 가는 곳 마다 시현이가 어질러 놓은 것들을 목격한 나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넌 대체 누굴 닮아서 이렇게 뒷정리가 안되는 거니?’


시현이 아빠는 결혼 전 혼자 살 때도 또 결혼 후에도 굉장히 깔끔했다. 외출 후 집에 오면 가장 먼저 옷을 갈아 입었고, 입었던 옷은 바로 옷장이나 세탁기로 넣어 놓았다. 집이 지저분하면 알아서 청소도 했다. 나 역시 스스로 깔끔치 못한다 거나 정리 정돈을 못한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반드시 흔적을 남겨 놓는 시현이의 버릇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읽던 책을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서 물어보는 것은 일상사요, 책 가방에서 꺼낸 필통을 쓰고 나서 다시 가방으로 넣어 놓을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대로 두면, 며칠이고 필통 없이 학교에 다니면서 핀잔을 들어가며 친구들 것을 빌려서 해결한다. 옆에 있는 시후와 내가 애가 닳아서 챙겨줄 정도이다. 이런 시현이 모습을 나와 시현이 아빠 어느 쪽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나는 마침내 시현이를 돌연변이로 생각하자고 나름 마음의 정리를 했다.  







그러다 며칠 전, 방과 후 어김없이 자신의 물건들을 거실 전역에 진열(?)하고 있는 시현이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너는 대체 누굴 닮아서 이러냐?’는 소리가 또 한 번 습관처럼 나왔다. 


시현이는 곧바로 자기 방어를 시작했다. 시현이는 뭔가를 지적당하면 내가 한 말을 그대로 내게 되돌려주며 나를 웃게 만들어 상황을 모면하곤 하는데, 그 날도 ‘내가 봤을 땐 엄마를 닮아서 그런 것 같아’ 하고 말을 시작했다. 


바로 그때, 시현이 눈에 소파에 놓인 내 재킷이 걸려 들었다. 그리고 곧 식탁 위에 놓여 있는 내 커피 컵도 포착했다. 이어서 책상 밑에 널브러져 있는 나의 가방과 거실 탁자 위에 놓인 책도 발견했다. 소 뒷걸음치다 뭐 잡는다고, 내게 농담으로 대꾸하며 두리번거리던 시현이 눈에 공교롭게도 내가 그날 어질러 놓은 것들이 들어온 것이다.


‘봐, 엄마! 내가 엄마 닮았다니까… 저기 봐, 엄마 재킷, 컵, 책, 가방. 다 제자리에 안 가져다 놨고, 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네? 엄마 여기서 커피 마시다 책 좀 읽었고, 밖에 저 재킷 입고 나갔다 와서 소파 위에 벗어 놓고 가방도 저기 놓은 거네. 와, 엄마가 오늘 뭘 했는지가 다 보이네, 진짜로.’ 


머쓱해진 나는 그저 웃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나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솔직히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나는 일단 일어나면 침대 정리를 하지 않고 부엌으로 직행한다. 식사가 끝나면 바로 정리나 설거지를 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둔다. 입고 난 재킷은 옷장에 걸어 두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의자 뒤에 걸쳐 놓는다. 가방은 거실, 부엌과 침실 등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고, 책도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아, 나도 상당히 뒷정리가 안되는구나...!'





해질녘이면 청소를 했던 어린 시절


평생 믿어온 것과는 다르게 내가 그리 깔끔한 성격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나는 왜 내가 천성적으로 깔끔하고, 혹은 집안 정리를 잘 한다는 오해를 했을까? 


이 질문은 나를 어린시절로 데려간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때부터 집안 일을 시작했다. 특히나 청소는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전적으로 나의 일이었다. 찬찬히 돌이켜 보니, 나에게 이 청소는 ‘긴장과 불안’이라는 감정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또 그런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엄마는 상당히 깔끔하신 분이셨는데, 생계를 해결하느라 음식 외에는 다른 집안 일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집안이 깔끔한 것을 좋아하셨기 때문에 일을 다녀와서 집안이 어질러져 있으면 자연스레 청소를 도맡고 있던 나를 꾸짖었다. 


그래서 엄마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해질녘이면 나의 마음은 긴장감으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다가 집에 들어서다 청소를 안 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는 야단 맞을 것을 걱정하며 서둘러 대충 눈에 보이는 곳만 정리를 하곤 했다. 


특히나 엄마가 고흥이나 순천의 5일장에서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엔 그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겨울이면 엄마는 매생이와 파래를 순천이나 고흥 5일장에 내다 파셨다. 엄마는 새벽 두 세시에 일어나서 그 전날 동네 아주머니들로부터 사들인 매생이와 파래를 손질했다. 아버지와 함께 일일이 손으로 짜서 모양을 잡았다. 그렇게 해서 보통은 대여섯개의 큰 대야에 쌓아 올렸다. 많을 땐 그 대야가 열개에 달하기도 했다. 아침 첫 버스가 도착하면, 아버지와 오빠들이 엄마를 도와 버스에 그 대야들을 실었다. 


버스에 오르고 난 후 부터는 그 일이 모두 오롯이 엄마 혼자의 일이 되었다. 버스가 선착장에 도착하면 엄마는 둘이 들기에도 무거운 대야들을 버스에서 내리고, 다시 그것들을 철선(배)에 실었다. 철선에서 부두로, 부두에서 또 다른 버스 정류장으로 그것들을 옮긴다. 그리고 매생이들이 으깨지지 않도록 짐 칸에 잘 실어 주기를 부탁하며 버스 차장에게 웃돈을 주고서 5일장이 서는 곳으로 향한다. 


장이 서는 곳에 도착하면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그 짐들을 리어카에 싣고 달린다. 추운 시장 바닥에서 한 접 두 접 그 많은 매생이와 파래를 모두 팔아야 한다. 이 고단한 과정을 모두 끝낸 엄마는 육체적으로 지친 상태로 집안으로 들어오셨다. 배도 고프고 춥고 몸은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상태이니, 집안 꼴이 엉망이면 당연히 화가 날 만도 하다. 


엄마가 화를 내는 날에는 온 집안이 그야말로 꽁꽁 얼어붙었다. 그런 날이면, 찬 바닷바람보다 춥게 느껴지는 집안 분위기 속에서 나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는 쓸쓸함과 외로움으로 물들어 갔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화를 내는 상황을 최소화해보려고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했다. 


저녁 때가 되면, 밥을 짓는 것과 동시에 나는 온 집안 청소를 했다. 창틀에 먼지도 닦고 방 구석 구석 청소를 했다. 연탄 보일러가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우리 집은 한 번도 후끈후끈 따뜻한 적이 없다. 구들을 잘못 놓았기 때문인지, 구멍을 확 열어 연탄을 때고 또 때도 방은 늘 찼다. 


나는 방을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할 요량으로 밥을 하고 난 솥에 물을 더 붓고 군불을 땠다. 하루 종일 추운 날씨에 몸을 떨고 들어온 엄마의 몸도 마음도 그 온기로 녹이고 싶었다. 청소 후에는 아랫목에 담요를 정갈하게 깔아 두었다. 


그 노력이 얼마나 엄마를 기쁘게 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청소를 안 했을 때의 파급효과는 매우 컸다. 


장사가 잘 된 날에는 집안의 청소 상태와 상관없이 엄마는 기분이 좋으셨다. 이문을 남겼다는 사실이 고단함을 모두 씻어 내렸던 것이다. 반대로 장사가 잘 안되었거나 손해를 본 날에는 집이 아무리 깔끔하게 정리정돈 되어 있어도 엄마는 기분이 좋지 않으셨다. 그런 날에 청소까지 안되어 있으면 그날은 큰소리가 나고 야단을 맞는 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청소를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해질녘이면 늘 엄습해 오는 불안과 긴장감에 가슴이 조여 들었다. 그렇게 청소는 내게 엄마의 고단한 일상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생계를 위해 밖으로 나선 엄마 때문에, 집안 일을 피하려고 잔꾀를 부리거나 투정을 부리는 일은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청소의 이행 여부에 따라 나의, 아니 우리 가족 전체의 평화로운 저녁 시간이 달려 있는 일이 많았다. 


어렸고, 또 친구들과 놀기 좋아했던 나에게 그것은 상당히 무거운 짐이었던 것 같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 동안 나는 청소가 되어 있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선천적으로 깔끔하고 정리 정돈을 잘하는 성격이기 때문이 아니라, 치우지 않으면 불안하니 열심히 청소를 했던 것이다.





아들의 속도에 맡겨보기


어쨌거나 나의 오해는 풀렸다. 시현이는 나를 닮아서 정리정돈이 안 되는 것이었다. 이제는 나의 긴장과 불안을 아들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시현이에게 ‘대체 누굴 닮아서 그런 것이냐’고 묻는 어리석은 행동은 당연히 그만두었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 아이들 방 청소를 각자에게 맡긴 지 오래다. 먼지가 쌓이면 시현이는 스스로 청소기를 들고 청소를 한다.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불편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날, 시현이는 정리 정돈도 시작할 것이라 믿는다. 


당연히 물건들은 제자리에 놓는 것이 맞고, 집안은 가능한 청결을 유지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습관이라도 그것이 우리 영혼의 안녕보다 더 우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내 아들들이 집안을 정리 정돈하고 청소하는 일이 내게 야단을 맞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나 혹은 남의 눈치를 보는 데서 기인한 행동이 아니었으면 한다. 자신의 공간을 돌보는 일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샤워 후에 상쾌함을 느끼듯, 청소를 하며 마음이 맑고 가벼워지는 유쾌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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