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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킴 Sep 06. 2021

영어의 숲에서 길을 잃었네




엎어진 사업, 개점 휴업!


뉴질랜드 국경은 작년 3월 봉쇄 조치 이래로 지금까지 1년 6개월이 넘게 여전히 굳게 닫혀 있다. 내년 2022년에는 국경이 열릴 것으로 기대했으나 최근 새롭게 발견된 델타 변이와 이 곳의 생각보다 느린 백신 접종율로 인해 그 가능성도 희미해지고 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새로운 사업은 끝을 알 수 없는 개점 휴업 상태에 돌입한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새롭게 시작한 사업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경이 열려 있어야 가능한 사업이다. 내년에도 국경이 열릴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나는 또 다시 앞으로 일년 여의 시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에 들어갔다.


잠시라도 파트 타임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이 기간을 휴식과 충전 시간으로 쓸 것인가? 파트 타임 일은 일단 당장의 마음 속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약간의 돈을 버는 것을 제외하곤 큰 매력이 없다.


결국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기대하며 여러모로 잘 준비되어 있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유익할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기왕에 엎어진 거라면 일어날 때 뭐 하나라도 손에 잡고 일어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어의 숲에 무작정 뛰어들다


지금보다 더 나은 영어 실력은 무난함을 넘어선 새로운 기회를 가져올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어떤 가능성을 만들고 높이는 일은 '남는 장사'로 보인다. 하물며 그것이 평생의 커리어와 깊이 연관이 되어 있고 또한 내가 깊은 열망을 가지고 있는 일이라면 고민할 것도 없다.


그래서 일명 ‘영어 공부 1만 시간 챌린지’를 시작했다. 1만 시간 동안 무엇인가를 하면 그 분야에 달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소위 ‘1만 시간의 법칙’이다. 시간이 넘쳐나는 지금 나에게 딱 맞는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영어에 노출되어 살아왔는가부터 계산해 보았다. 그 시간을 측정한다는 것이 좀 애매하지만, 그래도 대충 어림 짐작이라도 있어야 다음 목표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영어 강사로 일한 시간과 뉴질랜드 초기 4년의 시간을 더하여 대략 8천여 시간을 들였다고 대충 계산을 해보았다.


1만 시간을 채우기 위해선 2천 시간이 더 필요한 셈이다. 2천 시간을 채우려면 내년 연말까지 대충 5백일 동안 하루 네 시간 정도씩 공부를 하면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리 어렵게 보이지 않아서 일단 시작을 했다. 구체적으로는 일주일에 적어도 한 권의 영어 소설책 읽기, 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따라 연습하기, 무작정 집 밖으로 나가 현지인들에게 말 걸기 등의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챌린지를 시작하고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나갔다.


네 시간을 채우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은데, 그것을 매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특히나 주말에 하루 네 시간 공부는 꽤나 달성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또 집안일도 좀 하고 나면 어느덧 저녁때가 되고, 저녁에는 공부를 하기에는 에너지가 너무 부족했다. 한 가지를 꾸준히 하는 일의 어려움을 새삼스레 느꼈다.



 


다시 길을 찾다


어쨌든 미래에 대한 불안을 딛고 시작한 일이기도 하고, 나 자신과 한 약속이기도 하기에, 매일 하루 네 시간 영어 공부를 완수했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영어공부를 하다 보니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먼저는 공부 시간을 기록하는 일의 중요성이다.


기록 자체가 중요하기 보다는, 공부하는 시간을 기록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실질적인’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꽤 크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뉴질랜드에 온 이래로 나는 나름대로 영어 공부를 꽤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꾸준히 영어 뉴스와 책을 읽고, 텔레비전도 보고 있었고, 현지인들과의 대화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시간을 측정해보니 그것은 그저 나의 느낌일 뿐이었음이 드러났다. 내가 영어 공부에 꽤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은 그 물적 증거가 터무니없이 부족한, 한 마디로 ‘환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두번째로 알게 된 것은 내가 그동안 해온 영어 공부의 맹점 같은 것이다.


모든 언어 학습은 크게 인풋(Input: 읽기와 듣기)과 아웃풋(Output: 말하기와 쓰기)으로 나뉜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나오고, 인풋 한 대로 아웃풋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 인풋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이번 챌린지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소설 읽기이다. 날마다 부담 없이 재밌게 읽어야 꾸준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매주 한 권씩, 대여섯 권의 소설책을 읽고 나니 저절로 깨닫게 된 것이 있었다.


바로 그동안의 내 영어 ‘인풋’의 문제점이다. 나의 읽기와 듣기는 거의 모두가 뉴스, 강연, 논문 등이었다. 책마저도 소설보다는 논픽션을 주로 읽었다. 그런 것들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리 된 것이었고, 내게는 그것이 영어 강사 시절부터 너무나 당연한 습관이었기에 현지인들이 나의 영어를 상당히 ‘formal (격식체 같음)’하다고 했을 때,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함의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내 영어 말하기의 부자연스러움은 영어 공부 시간의 부족함 보다는 한쪽으로 치우친 인풋으로 인해 발생한 현상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알게 된 것은 말하기와 쓰기, 즉 아웃풋을 의도적으로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충분한 인풋이 있으면 저절로 아웃풋이 따라온다는 가설은 나이가 들어 외국어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음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열심히 외운 단어나 표현은 돌아서기 바쁘게 잊어버리기 일쑤다. 심지어 한국말도 때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한참 뜸을 들이는데, 영어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새로 배운 표현들이 과연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적재적소에 나올 것인가에 대해 의구심이 끊임없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이나 학생들처럼 영어라는 언어에 노출시키면 자연스레 귀가 열리고 입이 열릴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의도적 말하기 연습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필요함을 느낀다.






국경이 닫혀 있는 덕분(?)에 새롭게 시작한 이 챌린지가 고맙기도 하고 은근히 재밌기도 하다.


자칫하면 열리지 않는 국경을 보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하는 무기력감에 빠져 있을 수도 있었다. 열정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곳을 발견해서 참으로 다행이다. 또한 평생 맺어온 영어와 인연을 더 깊이 제대로 다져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니 ‘다행’을 넘어서 어쩌면 ‘행운’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외국어 하나를 마스터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생각에 감사하고, 이 기회를 잘 활용해 보리라 다짐도 하게 된다. 공부하는 동안 새롭게 만나게 될 깨달음들과 또 새롭게 발굴될 나 자신에 대한 기대감에 마음이 설렌다. 그 기대감으로 오늘도 영어의 바다에 빠져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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