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촬영장에 그림을 들고 간다. 마포구에 같이 일하는 출판사가 많아 편집부에 부탁해도 될 때가 있는데, 그래도 상황이 되면 내가 일부러 간다.
몇 년 전에 계약해 두고, 러프스케치를 다듬고, 채색이 끝나는 그 지난한 과정이 마무리되는 기분을 혼자서 이런 식으로 기념하나 보다. 그림을 들고 전철을 타고 지나가다가 바뀐 커다란 광고판의 새 얼굴을 보니 내심 아쉽다. 크게 있을 때 사진 찍어둘걸. 신기했는데.
충무로역에서 4번 출구로 나와 경찰서를 지나 낡은 빌딩 6층까지 올라가면 늘 한결같이 이런저런 질문과 정보를 주시는 오작가님이 계신다. 내 그림의 질감과 색을 잘 잡아주셔서 몇 년 전부터 여기서만 촬영하고 있다. 너무 가을옷을 입고 갔는지 춥기도 했고 새벽에 일찍 깨서 인지 촬영 지켜보면서 책 읽다가 갑자기 잠이 들어버렸다.
(언제 시간 넉넉하게 잡고 가서 포토샵 강의 듣고 싶습니다.)
충무로 역 근처 돌아가는 길, 늘 출구 앞 파바에서 혼자 차를 한잔 마시던지 무언가를 먹는다. 일부러 아침 열 시에 갔고 덕분에 12시 전에 끝났다. 큰 유리창 너머로 점심 먹으러 나온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우물거렸다. 참 아무것도 없고 조촐하지만, 나름 프로젝트 하나가 끝나면 늘 소소하게 이런 의식을 혼자 반복한다.
이런 시간들이 허락되다니 참 감사하다.
오작가님, 건강하세요.
#제로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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