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쟁이는 교환학생(12): MEP, 아니 에르노, 단골 바
우리 세대는 마비됐다.
"멋진 신세계"에서 마약으로 우울을 감기처럼 치료한 문명세계와 유사하게, 우리는 스마트폰 화면을 살짝 만지기만 해도 스위치를 켜듯 손쉽게 강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뉴스를 보면 끔찍한 범죄, 전쟁이 우리를 흥분케 한다.
인스타그램 돋보기 속 매일 다른 미인들과 사랑에 빠진다.
유튜브의 짧은 드라마 클립들을 넘기며 싸구려 눈물을 흘린다.
짧은 주기로 전두엽을 때리는 강렬한 도파민 자극.
수잔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실제 일어난 현실, 그리고 그것을 이미지를 통해 재현한 인공적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간극을 폭로한다.
그녀는 인공적 현실 속 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됨으로 인해 그것을 소비하는 대중이 무감각해졌다고 비판했다. 공포 영화를 보고 안도하는 관객처럼, 우리는 편집된 현실 세계의 피 흘리는 피해자와 자기 자신을 비교하며 안도하게 된다. 너무 비겁하게.
이번 전시회에서 아니 에르노의 글은 손택이 비판한 간극을 개인적인 차원으로 재해석한다.
MEP (Maison Européenne de la Photographie)에서 2022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의 Extérieurs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 전시회를 작품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면:
Saint-Lazare station, on a Saturday: a couple are waiting in line for a taxi. She looks lost and leans on him for support. He keeps repeating: "You'll see when I'm dead." Then: "I want to be burned, you know, I want to be burned from head to toe. It's horrible, that thing." He clutches her to his chest; she is panicked.
생-라자르 역, 토요일: 한 커플이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길을 잃은 모양이다, 그의 몸에 기댄다. 그는 반복해 말한다: "내가 죽으면 너도 알 거야." 그다음에: "난 화장당하고 싶어, 난 머리부터 발끝까지 태워지고 싶어. 그건 정말 혐오스러운 거야." 그는 그녀를 가슴에 기대게 한다; 그녀는 당황한다.
I am visited by people and their lives-like a whore
나는 사람들과 그들의 인생들에게 방문된다-마치 창녀처럼
Extérieurs서 발췌한 텍스트들에서 에르노는 85년부터 92년까지의 파리 근교 Cergy-Pontoise를 묘사한다. 이 전시는 아니 에르노의 텍스트들과 MEP 콜렉션의 사진들을 동등하게 취급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이미지를 생성하듯이 글을 쓴다. 그녀와 스친 인생들의 미스터리와 불투명성을 보존하기 위해. 에르노의 글들은 일시적인 순간들을 영원하게 만든다.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하게 자란 사람들도 같은 걸 보고 제각각 다르게 해석하는 게 참 신기하다.
헤어진 커플의 이별 이야기를 각자의 입장에서 듣는 것만큼 어지러운 경험도 잘 없다. 과연 남자친구가 회피형이었을까, 여자친구가 집착이 심했던 걸까? (대게는 둘 다 어느 정도 사실이다!)
말보다도 본질적으로 솔직할 수밖에 없는 사진이라는 도구조차 누가, 언제, 어디서 찍고 무엇을 선택해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작가의 주관이 담긴다. 에르노의 과거 경험, 지나치는 대화들에 대한 의미 부여, 사회적 코멘테리로 점철된 텍스트가 사진만큼 진실되지 않다고 확언할 수 없는 이유다.
시선을 거친 관찰과 포착, 묘사를 통해 우리가 필사적으로 찾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의미일까?
시간이 흐르는 만큼 쉼새 없이 변하는,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의 말과 움직임은 가변적이지만 거기서 자극되는 내 감정은 진짜다. 사람을 만나고 관찰하고 경청함을 통해 모르는 얼굴에서 익숙한 나를 발견한다.
에르노를 인용하자면:
지하철에서 누군가와 마주 보고 앉았을 때, 나는 나에게 자주 묻는다, "왜 나는 저 여자가 아닐까?"
파리에 단골 빵집과 단골 바를 하나씩 만들고 싶었다.
단골 빵집은 이미 발견했다 - 우리 동네에는 2018년에 파리에서 3번째로 맛있는 뺑오쇼콜라 상을 받은 Lorette이라는 불랑제리가 있다. 여기 치즈케이크는 정말 고소하고 푹신하고 적당히 달콤하다.
단골 바를 어디로 할지는 비교적 최근에 정했다. 주거지역인 15구, 나의 동네에 위치한 허름하고 귀여운 바다. 관광객들은 한 명도 안 보이고, 바텐더와 농담 따먹기 하는 동네 주민들이 하루 일과를 끝내고 3유로짜리 와인과 양이 푸짐한 파스타를 먹는 정겨운 곳이다.
와이파이가 되는 곳이라 노트북을 들고 왔다. 과제도 하고, 글도 쓰고.
두 번째 방문인데도, 바텐더가 날 알아보고, "Ah! Coréenne!" 했다.
"Oui, Bon soir!"
샤도네이 하나를 주문했다. 공짜로 주는 프레첼은 건빵처럼 건조해서 한 입 물면 입 안이 텁텁해진다. 와인 한 모금과 조합이 좋다.
과제 페이퍼를 작성하고 있는데, 갑자기 바로 옆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쳐다봤다. 초보 운전자였는지 까만색 차량이 길가의 조형물을 들이박았다.
바의 주인과, 저녁식사를 하던 커플, TV를 보던 아저씨 모두 문 쪽으로 이동해 사고 현장을 보며 웅성였다.
차에서 나와 사고의 경중을 확인하는 운전자의 당혹스러운 움직임에서 어렸을 적 학원으로 가는 버스를 놓쳤던 내 표정이 연상됐다.
웅성이는 무리 중 아무도 경찰을 부르거나 운전자를 도와주려고 다가가지 않는 모습에서 초개인주의적인 프랑스인들의 문화가 엿보였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생경했다.
"왜 나는 저 여자가 아닐까?"